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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이제 저는 당당한 한국의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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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당당한 한국의 여성입니다

 

 

리뜨페이룬

 

남편을 캄보디아에서 처음 만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2009년 가을 20살 밖에 되지 않은 저에게 한국에서 온 남편은 너무 낯설고 오히려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거의 서른 살 차이가 나는 남편을 따라서 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식을 어떻게 치루었는지 그 때를 생각하면 제 스스로에게 잠시 위로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2010년 1월 겨울은 제가 태어나서 가장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외국이라고는 한국이 처음이었고 따뜻한 나라에서 자란 저에게 한국의 겨울과 나이 많은 남편은 저를 더욱 춥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게 한국생활은 그저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이 없이는 마트를 갈 수도 없고, 버스를 타고 한국어를 배우러 오고가는 길도 안그런척은 했지만, ‘버스 안에서 누가 말을 걸어오면 어쩌지, 실수로 내릴 곳을 놓치면 어떻게 하지..’ 하루도 마음 편하게 다니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고 한국생활에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지 두 달 만에 저에게는 첫 아이가 생겼습니다. 입덧도 했지만, 이게 입덧인지 버스 멀미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남편은 하루라도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계속해서 재촉을 했습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남편의 재촉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만삭이 되어서 아이를 낳기 일주일 전까지 여성회관에 나가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더 힘들어 질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 집에서 쉬면서 아이 낳을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친정 엄마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아이 낳을 준비를 하는 건지도 제대로 모른 채 그저 한국어 공부만 열심히 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계속 울고 저는 캄보이아어로 아이를 달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보는 남편의 모습이 편안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의 입장에서는 막 태어난 아이한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는데 제가 캄보디아어를 가르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다시 한국어공부를 하러 여성회관에 나갔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한국어를 빨리 배워야 아이와 함께 한국에서 잘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한국어 공부를 하러 갔고 아이를 어린이 집에서 데리고 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는 또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2년을 보내고 둘 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너무했나 싶고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미안해집니다. 하지만, 그 때 저는 어서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 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생각밖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한국어가 될 때 쯤 남편은 제게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저는 검정고시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도 않았고 캄보디아에는 이런 교육제도도 없었기에 때문에 안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남편은 아이가 더 크면 공부하기도 힘들고 지금 아이를 같이 돌 봐 줄 테니 자신을 믿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라고 계속해서 권유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어린 아이들과 뒤엉켜 살림과 공부를 같이 해야 한다는 겁이 났습니다. 검정고시는 시험을 보는 거라 합격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더 겁이 났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서 ‘그래, 캄보디아에서 하지 못한 공부를 한국에서 하는 거야!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공부하자!’ 라는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나고 정말 많이 두려웠지만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인정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했습니다.

 

공부하라는 남편의 권유가 잔소리처럼 핀잔처럼 들려서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다들 놀러 다니고 드라마도 보고, 고향에도 한 달씩 다녀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라는 생각에 스스로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하고 나니 공부하는 엄마를 심하게 울며 보챘던 아이들도 그런 아이들을 열심히 돌봐주었던 남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남편이 검정고시 공부를 하라고 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캄보디아 엄마로 자존감 낮게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 학점은행제라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생활에 힘들어하는 결혼이민자들과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해서 이민자인 우리 스스로가 한국의 고유한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정책, 상담 기술 등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대학교 공부를 한다고 너무 신나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 친구들을 만나도 ‘우리 엄마 대학생이다!’라면서 엄마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가 공부하는 시간에 방해를 하지 않는다고 텔레비전 소리도 작게 하고 만화를 봅니다.

얼마 전 남편은 퇴근길에 사회복지사 공부하는데 필요할 거라며 슬그머니 종이가방을 건넸습니다. 그 안에는 최신형 노트북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요즘 저는 결혼이민자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스스로가 이제는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일자리가 없다고 그저 집에서 앉아만 있을 수도 없고,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서빙과 설거지만 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좋은 교육제도 안에서 우리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우리도 할 수 있는 최선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당당한 엄마가 되자고 말합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이민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민자들을 위해서 이민자들이 힘들어 하는 사회적 문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건강한 마음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은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힘들었던 많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어를 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시간들, 남편과 소통이 되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간들,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어찌할지 몰라서 함께 엉엉 울던 날들.

 

지금 저는 너무나도 당당한 아이들의 엄마로, 한국의 여성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학기만 더 공부하면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일매일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공부하라고 늘 잔소리를 해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남편이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 봄날 하늘은 황사로 뿌옇지만 제게 대한민국은 매일매일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맑은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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