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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우리 처갓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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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처갓집

 

2011년 여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저는 제 운명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한국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처럼 터키에도 ‘한 번에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말처럼 저는 백번정도 찍을 수 있는 도끼를 준비하고 그 여자를 잡을 때까지 찍고 또 찍었습니다. 그 후 일 년 정도 열심히 찍었습니다. 결국에 그녀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성년이라 해도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큰마음 먹고 그녀의 아버지를 먼저 만났는데 예상과는 달리 지금의 장인어른은 저에게 몇 가지 약속을 확인하고는 쿨하게 승낙해주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장모님 이었습니다. 그때 장인어른이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그녀가 엄마에게 고민 있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가 사귀는 외국인 총각이 있는데 아빠가 아시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우리 결혼할 수 있도록 엄마가 아빠에게 잘 이야기 해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엄마(지금 장모님)는 큰 걱정 하시면서 자기도 모르게 우리 편이 되었습니다. 장모님은 어느 날 가슴 두근거리면서 장인어른께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 가시나가 외국놈을 사귄다는데 우야지요?” 장인어른은 성질이 급하고 뜨겁습니다. 장인어른은 큰소리로 화를 내었습니다. “가시나 다리몽디를 뿌라 뿔라마!” 장모님은 장인어른에게 매달렸습니다. “내 얘기 함 들어보이소” 장인어른은 장모님이 열심히 매달리자 조금 가라앉았다가 몇 일후 억지로 허락했습니다. 지금 장모님이 이 이야기를 아시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2014년 11월1일 경주향교에서 멋있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장모님의 훌륭한 솜씨로 경주향교는 정말 화려하고 수많은 관광객과 축하손님들이 섞여서 굉장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스탄불과 형제도시인 경주의 시장님이 결혼 기념나무를 향교 뒷마당에 심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서울 등촌동에 보금자리를 잡고 신혼생활을 시작한지 1년 정도 지난 2015년 12월 16일 우리는 예쁜 공주님을 얻었습니다. 너무 기뻤지만 둘이서 서울에서 아기 키우면서 일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포항에 있는 처갓집으로 들어와서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면서 레스토랑을 포항에서 한번 시작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오예~’ 하면서 포항으로 내려갔고 이제 삼 년째 넓은 처갓집에서 두아기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 같이 많은걸 이해하고 있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는 오해도 있었고 재밌는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 장인어른은 경상도 사투리가 특히 심하시고 빨리 말해서 꼭 다른 나라 말 같았지만 무슨 말인지 물어볼 수는 없고 뜻도 모르면서 그냥 히히히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야야 개안나?” 라고 하실 때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둥절해 있으면 “알았다마 개안타개안타” 하셨는데 이제는 제가 형광등을 바꿀 줄 모르는 장인어른에게 “아빠 몬해도 개안아요” 라고 할 만큼 잘 통합니다. 저는 장인장모님을 아빠엄마라고 부릅니다.

저는 한국에 산지도 오래됐고 한국여자와 결혼한 친구들에게 이야기도 들어서 한국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걸 더 많이 느꼈습니다. 신기한 문화가 진짜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퇴원하면 조리원을 가고 아기 엄마가 몸을 따뜻하게 옷도 두껍게 입고 양말도 신고 씻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아기 낳으면 조심해야 되는 게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뼈가 아프고 바람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안 해도 안 아픈데 왜 한국 사람들만 아프냐고 했다가 와이프에게 여기가 터키냐고 하면서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기에게도 조심해야 되는 게 많았습니다. 제가 딸을 보고 있으면 조심해서 만지라고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장모님께 계속 혼났습니다. 너무 너무 예쁜 딸인데 외국에 살면서 처음 생긴 아기인데 저에게도 소중한 딸인데 장모님은 왜 내가 조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까 하는 생각에 섭섭했습니다. 내 딸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한다고 오해했습니다. 처갓집에도 처음 생긴 아기라 온 가족이 안고 싶어 해서 저는 레스토랑이 끝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번정도 안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게 속상했는데 어른들이랑 같이 살면서 커가니까 딸이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동생이 일찍 생겼는데도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고 예뻐해 줍니다. 그래도 아기 질투가 나서 아기엄마가 동생 젖먹이고 있으면 찌찌 달라고 하면서 둘 다 엄마한테 붙어서 젖을 먹기도 합니다.

밤낮이 다른 터키의 부모님과 핸드폰으로 아기들을 보여줄 때 터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시면 우리 장모님은 문밖에서 눈물을 닦고 계십니다. 장인장모님은 우리만 아이들의 예쁜 못습을 보고있다고 터키부모님께 늘 미안해하십니다. 터키에 계시는 어머니는 귀가 안 좋으셔서 긴 시간 비행기를 못 타십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은 레스토랑을 두고 긴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터키에 갈 수 없습니다. 터키의 부모님께 아이들을 직접 보여드릴 수 없어서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나이로 4살 된 딸은 영어 쓰는 엄마(엄마는 영어를 잘합니다.) 터키말 하는 아빠, 경상도말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아서 말이 복잡해서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그런 걱정은 말고 자네는 딸과 이야기할 때는 꼭 터키말만 써라 하시면서 그래야 나중에 커서 터키말도 할 줄 알고 터키를 사랑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장인어른이 고마웠습니다. 장인어른은 우리 집에서 저와 제일 친합니다. 가끔 제 구두를 골프 치러 가실 때 가져가셔서 반질반질하게 닦아옵니다. 처음에는 장인어른이 제 신발까지 닦아 오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제가 구두가 반짝반짝하다고 좋아하면 엄청 즐거워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반짝반짝한 구두를 보면 더 열심히 좋아합니다.

우리 딸은 저와 터키말로 대화를 합니다. 딸은 우리 집 대장, 10개월 된 아들은 장인어른 장난감입니다. 이제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진짜 아들처럼 편하고 따뜻하게 해주십니다. 그래도 같이 사니까 아직도 불편한 점도 있고 죄송한 것도 많고 감사한 것도 많습니다. 가족이니까 서로 다르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 처갓집은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경상도 데릴사위라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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