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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마음의 고향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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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한국

이와타 사야

 

내가 어렸을 때 내 방 벽에 큰 세계 지도가 붙어 있었다. 퍼런 부분이 바다, 녹색 부분이 섬. 네모난 지도 주위에는 많은 국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크기도 모양도 다른 그 국가들이 신기했다. "왜 세계는 나라로 나눠지고 있어요?" 내가 물어본 그 질문에 부모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이 나라에는 이런 사람이 살고 있고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보거나, "이 나라는 일본 몇 배 넓이... … ." 그렇게 작은 손가락으로 나라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서 나름대로 세계의 넓이를 느끼고 있었다. 집 멀리 나가 본 적이 없는 작은 소녀는 언젠가 세계에 간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은 찾아왔다. 고등 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너, 한국에서 일하고 싶니?" 언니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어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 돌아가야 하게 되어서 언니가 일했던 그 박물관에서 대신에 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이미 일본 국내의 대학교 진학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가고 싶다" 고 대답하고 있었다. 세계를 향한 어린 시절의 동경이 마음 속에서 다시 북받치는 순간이었다.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언니의 상사와 면접도 하고, 학교를 진학을 포기하고 한국에 가기로 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하고 우선은 1년간 일하기로 했고, 나는 갑자기 일본에서 한국이라는 세계로 나갔다.

한국이라면 일본의 바로 옆에 있는 나라다. 외모만으로는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서 살고 생활해 보면 많은 것이 일본과 달랐다. 내 생각에는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의 큰 차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건 바로 "정"이다.

박물관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말을 잘 못 한 나는 평소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청소하거나 사무실에서 잡무를 했다. 그래도 물론 한국이라서 한국말이 필요해서 일이 끝나면 한국말을 공부해서 하루 하루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한국 사람 언니 두 명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대화하면서 언니가 "아, 덥네 여름이니까."라고 하셨다. 나는 마음 속에서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쌀쌀한 초봄이었기 때문이다. 왜 여름이라고 하셨는지? 내가 잘 알아듣지 못 한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네."라고 대답했더니 그 언니는 다른 언니에게 말했다. "아, 역시 이 아이는 한국말 못 하네. 여름도 모르면서 왜 여기 있나?" 나는 부끄러워지고 정말 분했다. 언니가 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사람은 왜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을 할까!

일본 사람은 남과 같이 행동할 때 그곳의 분위기를 소중히 생각한다. 그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도록, 평화롭도록 신경을 쓰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거나 하고 싶은 행동을 참는 일도 많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로 말하고 바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느 쪽이 좋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인간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것은 많이 있고, ‘내가 한국에 왔던 것이 잘못이었을까?’라는 후회와 같은 마음을 품기도 했다. 일본 대학교의 진학을 포기하고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프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매일 방에서 혼자 울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느껴졌던 사람들의 깊은 정, 사랑도 많았다.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용돈을 주신 분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했는데, 그 분은 그런 나를 보면서 웃으셨다. "너는 내 아이 같다는 말이야. 아무 신경도 쓰지 마라." 나는 받았던 돈을 잡으면서 울었다. 내가 경험했던 하나 하나를 돌이켜 보면 그 모두가 누군가와의 사이에 존재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과의 추억이 생각 날 때마다 내 가슴은 뜨거워진다.

그리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던 시간이 식사 시간이었다. 점심 시간이 가까이 되면 “밥 먹었어?” 이렇게 인사하는 사람들. 긴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면 “많이 먹어.”하고 자신의 식사를 나누어 주는 직원의 오빠 언니들. 많은 사람이 함께 큰소리로 웃으며 말하는 활기찬 식당은 뭔가 하나의 가족 같았다.

어느 휴관인 날, 아무 일도 못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나를 보고, 어떤 직원 언니가 박물관을 안내해주셨다. 사람이 없는 전시실에서 나는 완전히 그 박물관의 손님이었다. 언니는 신기한 색깔의 ‘파워 스톤’ 앞에 멈춰서고, 웃으면서 말했다. "파워 스톤 가까이에 있으면 힘을 받는다고 하니까 졸음이 오면 자주 여기에 오는 거야." 나는 그 농담을 들면서 나에게도 그 힘이라는 것을 주지 않을래? 라고 부탁해 보았다.

그 후에 언니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둘이서 나란히 먹었다. 언니는 내 일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조언하셨다. "너는 일 하나 하나에게 수동적이야. 좀 더 어른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 일을 찾아야 돼." 그 언니가 조금 화가 났다고 느꼈지만, 나를 위해 그런 말을 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언니가 말해도 아마 너는 거의 이해할 수 없구나." 라고 말했지만 "50% 이해했어요!" 라고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 같은 나를 키워줬던 곳이, 바로 그 박물관이었다.

순식간에 시간은 지나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 기한이 끝날 때, 나는 그 박물관에서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많은 분이 내가 나가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한국에서 지낸 1년의 기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한국을 더 공부해서 일본과 한국의 각각의 좋은 부분을 찾아 가며, 언젠가 한일 우호의 가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1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일본에 귀국한 나는, 열심히 일해서 한국 유학 비용을 모았다. 그리고 한국어 교육원에 와서 언어를 통해서 한국을 공부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박물관에서의 1년을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이 그립다. 마치 상대가 자기인 것처럼 접하는 깊은 정 관계. 아낌 없이 주는 문화. 함께 나눠는 문화. 나는 아직 한국의 깊이를 정확히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 사람이 그 자리의 분위기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마음을 끄고 사는 삶을 볼 때, 이제는 정말 안타깝다.

세계 지도를 펼쳤을 때 늘어서는 2개의 나라, 한국과 일본. 일본이 내 고향이라면 한국은 나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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