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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캄보디아 소년 르은이의 두번째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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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캄보디아 소년 르은이의 두 번째 심장.

 

2014년 4월 따스한 봄기운이 가득한 날,

결혼 후 첫아이를 품에 안은 날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날 아이는 온 우주를 품고 세상에 왔다. 그 이후 독박육아라는 험난한 시련이 있었지만 육아를 하면서 이따금 그리운 한 소년이 있었다.

 

2012년 4월 인천국제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던 날,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하던 소년 르은이의 첫 인상은 동그랗고 큰 눈의 11살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유치원생 같은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였다. 아이는 캄보디아 바탐방이라는 수상마을에서 무작정 배를 타고 씨엠립 프놈끄라움까지 아들을 살려보겠다는 부모의 간절함으로 배를 타고 수상 빈민촌에 있던 캄보디아다일공동체를 찾아오게 되었다. 심장병을 갖고 있던 이 아이는 현지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한국에 데려 와야 하는데 한국에서 행정적인 업무를 맡게 되면서 르은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의료적인 지식도 없지만 해외지원 부서에 있으면서 르은이의 입원과 치료 그리고 모금과 행정 전반적인 일을 하게 맡게 되면서 르은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처음 갖고 있던 낯설음도 곧 익숙함이 되어 장난도 잘 치고 그동안 다양한 음식을 접해 보지 못해 간장과 계란으로 끼니를 채우다 이것 저것 한식과 김치를 접하면서 점점 다양한 음식의 세계에 빠지더니 나중에는 마트 전단지를 들고 와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캄보디아에 가면 먹을 수 없다며 자신의 의사표현도 확실히 하는 명랑한 소년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하던 날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함께 병원 수속을 마치고 입원 대기, 큰 수술임은 알고 있었지만 긴 시간이 흘러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아이의 명랑함은 어디에 갔는지..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지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갓난아이까지 돌보아할 형제가 많아 보호자로 부모 대신 누나가 함께 왔고 누나도 어려 늘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병원 문턱을 집안 드나들 듯 드나들며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처음 겪었다. 그 후로도 두, 세 번 중환자실을 오고가며 힘든 시간을 버티고 소아병동에 온 르은이는 힘든 시간을 참 잘 버티고 건강을 차차 회복해 갔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외래 진료를 위해 당분간 출국 할 수 없어 비자 연장을 신청하고 재단과 한 건물인 다일작은천국(노숙인을 위한 웰다잉 하우스)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며 막내둥이의 예쁨을 한 몸에 받으며 건강을 회복해갔다. 워낙 밝고 명랑한 성격이라 재단의 누나들, 삼촌들 재단 이사장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한국어는 하루하루 일취월장하여 듣는 단어는 무조건 뱉어 내는 자신감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의 소식을 들은 후원자 분들도 직접 찾아와 밥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었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와 춤을 장기로 뽐내며 받은 사랑에 웃음과 기쁨으로 보답할 줄 아는 예쁜 아이였다. 이 아이와 만남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나뿐만 아니라 모두 하나의 장면은 참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작은 손을 꼬옥 움켜쥐며 왕방울만한 다이아몬드 인형반지를 손에 끼워 주는 로맨티스트 같은 면도 있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눈물도 어찌나 많은지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 아이는 한국에서의 약 1년 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참 특별한 존재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사랑을 안고 건강한 모습으로 캄보디아 가족의 품에 돌아갔다. 르은이의 부모님은 너무나 어려운 형편에 자식들을 돌봐 달라며 캄보디아 씨엠립 다일공동체에 맡겼고 누나와 함께 한국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르은이의 누나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었는데 건강을 회복한 동생과 함께 아동결연을 통한 한국 후원자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춘기 소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먹어본 삼계탕을 가장 좋아하던 아이, 르은이의 두 번째 심장은 미래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내 아이를 키우며 내가 일했던 시간 내 기억 속에 가장 특별하게 기억되는 아이 르은.. 생각해보니 함께 하는 시간 꼭 행복했던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전우애 같은 게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를 보며 한편으론 내 아이였으면 아마 더 많이 보살피고 사랑 했을 텐데... 참 많이 부족했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 아이를 보며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기적을 본 것 같다. 무작정 찾아와 살려달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었을까, 아직도 우리 주변에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고마움일까, 수술비의 대부분을 사회공헌으로 감당해 주었던 병원의 고마움, 수술을 잘 마치게 해준 의사 선생님의 손길, 많은 분들의 사랑의 손길로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고 인생을 바꿔준 이 경험이 내 인생에도 참 소중한 기억이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캄보디아에서 종종 르은이의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도 말괄량이에 사고도 잘 치고 주변사람들을 울고 웃기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름도 몰랐을 한국이라는 나라를 만나 건강 뿐 아니라 인생의 변화를 이어가고 있는 소년, 사랑도 빚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 빚을 캄보디아에 나눠주는 멋진 청년으로 성장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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