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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제 남편인 아들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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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인 아들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정이영-베트남

 

저는 베트남에서 온 쯔엉티망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드라마를 보며 한국남자는 멋있고, 자상한 모습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한국남자랑 결혼하여 한국에 왔습니다. 저의 남편은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좋은 사람입니다. 첫 인상은 차갑게 보이는데 같이 살아보니까 정말 따뜻하고 자상합니다. 남편은 저에게 정말 자상하게 대해줍니다.

4년 전, 처음 한국에 오던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항상 날씨가 더운 베트남 남쪽에 살던 저에게는 따뜻한 날씨에 입는 옷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걱정이 없었어요. 공항에 도착하니, 자상한 남편이 옷과 신발을 모두 준비해뒀으니까요.

베트남 멀리서 한국 생활이 다 좋고 부럽게 보였었는데 여기 와서 막상 살아보니까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힘든 것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가장 힘이 든 것은 한국어를 잘 몰라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게 점점 많아지는데도, 한국말을 모르니까 말하지 못해서 속상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남편 보고 “자기야! 나 귤을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생긴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자상한 남편은 밖에 나가서 뭔가를 들고 왔는데, 그것은 ‘굴’이었습니다. 남편이 잘못 알아들은 걸까요? 제가 잘못 말한 걸까요? 제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해프닝이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의 속상한 실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모르니까 늘 남편이 말하는 걸 따라했습니다. 인사하는 말도 똑같이 하고요. 남편이 자기 누나를 ‘누나’하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저도 남편의 누나가 오면 ‘누나’하고 불렀어요. 남편의 누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저를 봤을 때는 굉장히 이상하게 느꼈겠지요.

저는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사람이 많이 없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어 교육을 받기도 어렵고, 한국어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임신을 해서 먹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도 말도 못했습니다.

2014년 3월 21일에는 남편이랑 크게 싸웠습니다. 아기가 울고 있었는데, 남편이 저보고 물었습니다.

“왜, 아들이 왜 울어?”

저는 그때 피곤해서 그냥 대충 대답했어요.

“배고파서 울었어요.”

그때 남편이 저에게 몹시 화가 났습니다.

“당신이 여기 와서 몇 년 됐어? 그런데도 왜 그렇게 한국말을 잘 못해? 그렇게 해서 당신이 어떻게 아들을 키우겠어!”

그날 저는 많이 우울하고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남편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 쳤어요. 물론, 한국말을 못하니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이런 말을 하려고 소리를 친 거지요.

‘남편이면서도 왜 저를 이렇게도 이해를 못 해줘요? 시골에 사람도 별로 없고, 남편은 매일 출근하니까 얘기할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한국말을 배워! 당신이 나하고 입장 바꿔 생각해줘 봐요. 베트남에 가서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얘기할 사람도 없이 매일 집에 혼자 있어 봐! 당신이라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당신은 나처럼 베트남말을 잘할 수 있어? 당신 왜 외국사람이랑 결혼했어? 그렇게 한국말 잘하는 여자 원한다면 한국여자랑 결혼하지 그랬어요. 나는 당신만 믿고 사는데 이해를 안 해주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어요?’

그렇게 싸운 날 밤에는 저 혼자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정말 잘못 했구나. 한국어를 모르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할 수 있구나’하고요. 그래서 한국어부터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결심으로 어린 아들을 업고, 센터의 한국어 수업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시내까지 다니는 것이 힘들었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센터의 한국어 수업에는 우리 베트남사람 말고도 필리핀, 일본,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많은 나라 외국인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어가 다른 이 여러 외국친구들과 함께 웃고 울고 위로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가 바로 한국말이었습니다. 한국말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화합의 끈이었던 것입니다. 센터에서 외국인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어보니까 한국남편이랑 결혼했지, 의사소통은 안 되지, 아기 키우느라 밖에 나갈 시간도 없지, 고민을 나눌 친구도 없지, 등등 별차이 없이 저랑 고민이 비슷했습니다. 서로 그런 힘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저는 살아가는 데 큰 힘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한국 사람과 얘기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글도 이렇게 쓸 수 있고요.

무엇보다 좋은 것은 남편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과 사이도 더 좋아졌습니다. 남편은 제가 많이 노력 하는 것을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제가 한국말로 표현할 줄 아니까 더 잘해줍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제일 힘들게 느꼈던 것은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결혼을 한 우리 같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오해도 많이 생깁니다. 언어도 다른데다 생각하는 문화도 달라 아주 힘들게 살아갑니다. 부부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야 그런 어려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당신은 나처럼 베트남말을 잘할 수 있어?”라고 따지기보다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제가 한국말을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할 줄 알게 되었으니, 이 자리를 빌어서 또 하나의 고백을 하렵니다.

저는 지금, 한국어를 미리 배울 생각을 안 했던 제 자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3년 전 시어머님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것 때문입니다. 남편과 베트남 친정집을 방문하던 날,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정집에 도착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생긴 일이니, 저는 친정에서 하룻밤도 자지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만약 제가 있었다면 시어머님이 안 돌아가셨을 텐데, 하는 후회를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속상한 것은 시어머니와 소통하지 못한 것입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제가 한국말을 할 줄 알면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동네 친구 분들께 말씀하셨답니다. 며느리랑 많은 얘기를 하겠다고, 무척 기다리셨을 텐데, 그걸 못 해드려 죄송합니다. 시어머님이랑 어디 가고 싶어도 한국말을 몰라 못하는 저는 답답했었는데요. 시어머님께서는 말도 못하는 며느리랑 함께 있느라 저보다 더 답답하셨을 겁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나면 어머님 손을 잡으면서,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사도 못 했는데, 벌써 돌아가셨네요. 한국말을 잘 하게 된 지금 저에겐 그게 제일 마음 아픈 일입니다. 어머님! 지금 드리는 말씀, 하늘에서라도 꼭 들어주세요.

“제 남편인 아들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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