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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오늘도 도전하고 있는 나의 꿈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6:00 조회 : 2004
나는 중국 흑룡강 송화강판, 안중근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곳으로 유명한 하얼빈에서 태어났다.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설이 되면 할머니께서는 쇠고기를 넣고 떡만두국을 끓여주셨던 기억이 그립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께서는 창밖을 내다보시면서 ‘감이 달렸겠구나.’ 하며 고향인 한국을 그리워하셨다. 어린 나는 감이 토마토처럼 밭에 달리는 줄 알았다.
 내가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인천공항이 없던 시절이어서, 나는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아직도 그 첫 느낌이 생생하다.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내가 생각하던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려한 도시가 아니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에 들어오면서 이게 한국이구나, 모던한 도시, 내가 한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흥분은 채 일분도 되지 않아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말았다. 차창 밖에서는 따뜻한 햇살이 나를 반갑게 비춰 주고 있었다. 
 동대문. 이 동네는 왜 산을 깎아서 집을 지었을까? 눈이나 비가 내리면 언덕길을 다니기 힘들 텐데. 한국어는 왜 이리도 외래어가 많을까? 사소하지만 내겐 복잡한 상념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나는 동대문운동장 전철역에서 환승을 할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갑자기 뛰어가는 것이다. 화재가 났나? 무슨 일이 생겼나?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 따라 뛰었다. 나는 겨우 환승역에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뛰어온 사람만이 먼저 도착한 전철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또 다시 다음 전철을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다.
 많은 의문과 신기함을 품은 채 나는 거리의 간판을 보며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판들을 보면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레드 켓(READ CAT)’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이런, 네일아트를 하는 곳이다. 강남역에 있는 학생들의 아지트 ‘아이스베리’는 스터디를 하는 카페이다. 이처럼 영어로 된 다양한 간판을 보면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한국어를 어학원이 아닌 간판을 보고 독학하게 되었으니 실생활 한국어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치과’, ‘고은 성형외과’, ‘카 센터’ 등의 용어도 어색했다. ‘성형’이 뭐지? ‘카’는 영어로 ‘차’라는 뜻인데 ‘센터’는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단어는 같이 가는 친구한테 물어보았다. 이러다보니 서울에서 어떤 업종이 뜨고 지는지도 감지가 될 정도였다. 간판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가 더 있다. ‘산부인과’를 한자로 풀이하면 ‘낳을 산, 부녀자 부, 사람인, 조목 과’로 중국에서는 부산과(婦産科)라 한다. 그래서 간판을 보고 같이 걸어가던 남자 동료한테 물어 보았다. “저곳은 뭐하는 곳이에요?”, “너 지금 나하고 농담하니?”,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죠?”, “진짜 몰라?”, “네.” “여자들이 부인병을 치료하거나 아이를 낳는 곳이야.”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간판을 보는 습관이 있다. 따뜻한 햇볕에 반사되는 간판을 보면 옛 생각도 나고 한국생활 초창기 적응 때의 좌충우돌, 희로애락에 미소가 지어진다.
 20대 나의 청춘은 이렇게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배움의 시간으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한국생활 십년이 되던 해 나는 한 가지 큰 결심을 했다. 직장을 모두 정리하고 한국에서 다시 대학공부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한국어능력시험 고급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십 년 생활, 일상생활 언어는 문제가 없지만 책을 보고 시험 준비를 하려고 하니 문법, 어휘, 독해, 글쓰기 4과목에서 문법과 글쓰기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주위 가족과 지인들은 나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학원 강사에, 중국공무원통역에 과외에 잘 나가고 있을 때었다. 돈을 안 벌고 이 나이 무슨 학교를 다닌다고 반대를 무지했다. 아침 햇살이 비추기 전에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다시 도서관 문을 열고 나오면 달님이 맞이해주는 생활을 이어갔다. 토픽교재를 사서 문제를 다 풀고 모르는 것은 따로 표시해 두었다가 직장 다닐 때 알았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내 사정을 얘기하고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3일 동안 매일 2시간을 내서 내가 표시해 놓은 문제들을 설명해주셨다. 혼자서 한 달 공부하는 것보다 선생님 3일 과외는 나의 모든 질문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과외비를 드리려고 하자 선생님은 한국 와서 열심히 살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예쁘다고 과외비를 사양했다. 선생님 덕분에 토픽5급을 손에 쥐고 대학에 편입하여 띠 동갑내기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진감래 드디어 한국에서 나의 첫 꿈이 실현 됐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에는 페이퍼로 발표를 했었는데 한국의 대학생들은 PPT로 발표를 했다. ‘이건 또 뭐지?’ 첫 학기 모든 수업은 내가 제일 먼저 페이퍼로 발표했다. 그리고는 방학 때 학원으로 달려가 파워포인트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 7과목을 듣는 살인적인 강의일정이었지만 캠퍼스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시험기간에 책을 들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캠퍼스 벤치에 앉아 있자면 나의 낙원이 따로 없었다.
 이 낙원에서 내 인생의 터닝 전환점이 되는 일이 있었다. 학기 중에 수업이 끝나면 나는 영어와 국어 글쓰기 클리닉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첫 학기 끝날 무렵 영어선생님께서 영예학생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었다. ‘경희영예학생프로그램’이란, 교육․연구․사회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리더십과 탁월한 실천 능력을 겸비한 학생을 ‘영예학생’으로서 인증하여 주는 제도 프로그램이다. 방학 3주간의 영예학생 기숙교육프로그램은 나에게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에너지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당시 실천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나는 팀원들과 모두 한 마음으로 ‘한국의 물 관리 현황’과 ‘영국의 자산관리를 통한 지속가능한 물 인프라 시스템의 한국에의 적용 및 기대효과’ 그리고, ‘물 절약 방안’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였으며, 영국을 방문하여 수자원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국제상수도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와 같은 활발한 대내외적 활동실적 덕분에 우리팀 ‘護水ANGELS(호수천사)’는 당시 ‘베스트 커뮤니티상’을 수상할 수 있었으며, 이 외에도 유럽 문화․역사탐방과 같은, 세계무대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세계로 향해 한 발작 나가보니 내가 우물 안에 개구리였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지식에 대한 굶주림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교 교직원이 되는 것이 내 꿈이었는데 영예학생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국제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국제대학원은 나의 2번째 꿈을 실현했다. 국제대학원 수업은 모두 영어로 수업하고 발표하고 리포트를 제출한다. 동기들이 반시간 공부할 분량은 내가 하루 종일 해야 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아프리카에는 많은 나라로 구성되어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우들과 문화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바쁜 시간을 쪽에 세계문화유산 강사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내가 한국에서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다.
 석사 3기 때 서울시청에서 외국인 공무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다. 대학교 교직원은 유학생들을 관리하고, 진로를 상담하고, 멘토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서울시청에서 근무하면 더 많은 외국인을 위해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시청에 서류를 접수하였다. 서울광장의 10월의 햇살은 그렇게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고, 꽃과 관광객, 그리고 모든 시민들을 안아주었다.
 1차 서류에 합격하고 치열한 면접까지 치른 다음 날 조마조마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저녁 6시가 되어도 결과가 발표 되지 않았다. 그리고 7시. 깜깜 무소식이었다. ‘공무원들은 6시면 퇴근하는데...’ 하면서 풀이 죽은 닭처럼 집으로 향했다. 8시가 넘은 시각 버스에서 내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받았다. ‘최종합격을 축하드린다.’는 말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이어지는 말에는 ‘네~ 네~’ 대답만 했다. 통화가 끝난 후 힘껏 점프를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하늘로 나라갈 듯했다.
 나는 외국인이 서울에서 거주하면서 외국인주민의 시각으로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해외 우수정책을 제안하는 ‘외국인주민 서울생활 살피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일선에서 외국인주민이 제안한 따끈따끈한 의견을 읽으면서 외국인주민의 불편함에 공감을 하고, 그들의 모국의 우수정책 제안에 기뻐하며, 외국인주민과 동고동락하며 외국인주민이 더불어 살기 좋은 글로벌서울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소망이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걸까. 올해 2월에는 살피미요원들이 개선 제안한 방안이 KBS뉴스에도 나왔으니 말이다.  
 시청광장에 화창한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출근하는 나는 오늘 하루도 힘차게 나의 꿈을 도전하기 위해 달린다. 내가 받는 이 따뜻한 아침 햇살이 희망과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처럼 내려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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