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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한국에서 꿈을 키우다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58 조회 : 1982
 우리 언니는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해서 한국에서 산지 10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베트남에 있는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는 우리 언니는 내가 한국에 와서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전화를 할 때마다 한국에 오라고 했고 둘째 딸만은 곁에 두려고 하셨던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국 나의 미래를 걱정한 부모님도 언니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셨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나에게 좀 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언니와 부모님의 설득에 결국 나도 한국에 오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이 걱정되었던 우리 언니는 나를 데리러 베트남으로 와 주었고 같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비록 처음 오는 길이었지만 언니가 있어서인지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텔레비전에서도 보고 언니의 말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느낌은 정말 발전을 많이 한 나라라는 것이었다. 특히 교통이 잘 발달돼 있어서 한국어를 잘 몰라도 내가 원하는 곳에 가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여기 저기 유명하다는 곳을 다녀보았다.
  나는 언니와 같이 살면서 조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 복지 센터에서 주말에만 한국어를 공부했다. 주로 집에서만 생활을 하고 지하철과 버스만 타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고 물건을 살 때는 마트에 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 몰라도 별로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주말에만 한국어를 공부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나에게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하라고 했지만 나는 몇 개월만 있다가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언니에게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매일 언니와 형부가 출근을 하면 집안일을 한 후 조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집 앞 놀이터에서 어린이집 차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카와 놀이터에서 조금 논 후 집에 돌아와 조카를 돌봤다. 그렇게 지낸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아침에 조카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놀이터에 조카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조카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놀이터에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왔다. 아이들은 조카와 비슷한 나이 또래였다. 그래서 조카는 그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아이들의 엄마들 근처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기만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었다.
 그때 갑자기 조카가 달려왔다. 그리고는 그 아주머니들에게 “우리 이모 바보 아니에요.”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조카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저녁에 언니가 퇴근을 했다. 조카는 언니에게 울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조카는 한국어는 잘 하지만 베트남 어는 잘 못하기 때문에 언니에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몰랐다. 언니는 조카를 달랜 후 나에게 조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었다. 아마 놀이터에서 그 아주머니들이 내가 한국어를 못 하는 것에 대해 말을 주고받으며 웃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조카는 그 아주머니들이 마치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 화가 났던 것 같다. 조카는 그 아주머니들에게도 화가 났지만 나에게도 화가 나 있었다. 창피했던 것이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어를 몰라도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해 천천히 공부하자고 마음먹었던 건데 나를 대하는 한국 사람들은 나를 바보로 생각했다는 것에 너무 놀랐고 조카가 나를 창피해한다는 것을 알고 더 놀랐다.
 그날 이후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밖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나를 보고 웃어도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나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한국인인 형부를 대하는 것도 두려워졌다. 나는 점점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결국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의 스트레스는 베트남에 돌아가자마자 없어졌다. 원래의 낙천적인 내 성격으로 돌아가 웃고 떠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부모님도 한국 생활에 대해 묻지 않으셨다. 베트남에서는 언제나 행복했고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언니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베트남으로 돌아가 한 달쯤 지나자 언니는 다시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내가 없어서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어도 공부하면서 지내다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베트남에서 행복했지만 언니가 힘들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나는 비행기에서 다시 한국어를 듣자 갑자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서 두통이 심해졌고 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 앉았던 한국 아주머니가 너무도 친절히 나를 돌봐주셨다. 냄새도 나고 싫었을 텐데 웃으면서 한국에 올 때까지 나를 돌봐주시고 안아주셨다. 인천 공항에 내려 내가 길을 몰라 헤맬 때는 모르는 한국인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한국어를 못 해도 끝까지 웃으며 나를 도와주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언니는 나를 데리고 학교로 가서 한국어 과정을 등록했다. 나는 매일 오전에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학교에서 만난 한국어 선생님들은 정말 친절했다. 한국어를 가르쳐주실 뿐만 아니라 나의 표정만 보아도 내가 아픈지 고민이 있는지 아셨고 마치 가족들처럼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를 걱정해주셨다. 명절에는 한국에서 외로울 우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도 대접해 주시고 명절 때 지켜야 할 예절도 가르쳐 주셨다.
 당연히 예전에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이제 다 날아가 버렸다. 지금은 내가 왜 그때 그렇게 도망을 갔었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한국 생활이 즐거워졌다. 나는 처음 겪은 작은 오해 때문에 한국인들 전체를 오해하고 미워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한국에 오면서 비행기와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나의 그런 오해와 미움을 없애주셨다. 이제는 오히려 예전에 한국인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이 미안해 질 정도이다.
  나에게 미움을 심은 사람들도 그 미움을 없애준 사람들도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겪으면서 어른이 된 느낌이고 이제는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한국에서의 생활에 고마움을 느낀다. 마치 빚을 진 느낌이다. 그래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서 그 빚을 갚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알리고 싶고 한국인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한국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한국 생활까지 포기해야 했던 내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인들을 만나 겪은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지금 나는 그 꿈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열심히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 내년에 나는 한국에서 대학생이 되어 그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만나서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에서 생활하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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