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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의 미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42 조회 : 2294

이혼을 하고 나서는 늘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누군가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아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 생각에 숱한 밤을 새고 나서야 어렵게 결정한 이혼이었지만 어느 날은 후회스럽기까지 하였다.
넘치도록 고통스러웠던 내게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고 아무 뜻 없이 던진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그 어느 곳에서도 이혼한 여자는 이방인일 뿐이었고, 우리가 살던 도시를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야반도주하듯 친척도 친구도 하나 없는 도시에 짐을 풀고는 여기서는 괜찮겠지 안도했었다.
낯설고 물 선 이 곳이라면 이혼녀라는 나의 딱지가 아이에게까지 상처가 되지는 않으리라 내심 우리도 평범하게 살 수 있겠지란 기대를 하였었다.
그러나 엄마를 기다리느라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잠든 아이를 보던 날에.
어두컴컴한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의 얼굴에서 외로움이 묻어 날 때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울었다.
친구도 하나 없는 도시에 정착하게 된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이에게 죄스러워 눈물이 흘렀다.
아이를 돌보면서는 먹고 살 염려에, 일을 하면서는 아이 걱정에 일상은 항상 가시방석이었다.
“엄마! 나 다쳤어. 병원에 가요.”고작 열 살이지만 못난 엄마 덕에 일찍 철이든 아이다.
아픈 내색을 좀처럼 하지 않는 내 아이가 병원으로 가야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다친 걸까?
빨리 가봐야 하는데.
직장에 묶인 몸이라 전화 통화도 눈치 보여 할 수가 없었고, 아이와 문자만 몇 통.
결국 팔이 부러졌다는 아이의 말에 일이고 뭐고 다 그만 두고 뛰쳐나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두텁고 하얀 석고 기브스에 가려진 아이의 팔을 보자 두 다리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엄마! 전 괜찮아요. 참! 여기는 지은이! 그리고 지은이 엄마세요.”
낯빛이 거무스르므한 동그란 눈의 아이가 배꼽 인사를 한다.
그리고 더 검은 피부를 가진 누군가가 덥석 나의 손을 잡는다.
“많이 놀라셨죠? 뼈에 금이 갔다는데 당분간은 기브스를 해야 한데요.”
상냥하게 말씀해 주시던 지은이 어머님이 괜스레 어색해 나는 조심스레 손을 놓고야 말았다.

방과 후 운동장에서 날아오던 공을 피하다 넘어졌다는 딸 아이.
함께 있던 지은이 그리고 선생님이 함께 병원에 왔고, 선생님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신 뒤였다.
깁스한 아이 대신 아이의 가방까지 들고 한참 나를 기다려 주셨던 지은이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만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 오는 날이면 내 아이의 우산까지 챙겨 학교 앞에 서 계셨다는 지은이 엄마.
아이는 급식 하러 오기 힘든 엄마의 형편을 알음하고 지은이 엄마께 부탁했던 날도 두 번이나 있었다고 이실직고 한다.
너무도 어색했지만 지은이 엄마를 더 이상은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항상 도움만 받았으니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집과 멀지 않은 지은이네를 찾기로 하였다.
케이크 하나를 사 들고 도착한 지은이네.
갑작스런 방문에도 지은이 엄마는 나의 손을 덥석 잡으시며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아이를 돌봐 주시고, 급식도 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자 지은이 엄마는 너무도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제가 더 고맙죠. 아이들이 지은이를 놀릴 때도 지영이가 지은이 대신 싸우곤 했었나봐요. 우리 지은이가 소심한 편이라 항상 걱정이었는데 좋은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너무 감사드려요.”

지은이 엄마의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나도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늦은 밤까지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처럼 허물없는 친
구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 와 아이에게 물었다.
왜 지은이를 도와주었니? 하는 엄마의 아둔한 질문에 아이는 당연한 듯 대답했다.

“친구니까 도와 준거야! 피부색이 다른 건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고 나쁜 게 아니잖아? 내가 아빠 없이 엄마랑만 사는 것도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 놀리는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당연히 착한 지은이 편을 들어 줘야지!”

딸아이의 말에 어찌나 창피하였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가장 친한 친구가 지은이라고 아이에게 몇 번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그 아이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었다.
그리고 지은이를 만나고 난 뒤엔 왜 하필 다문화 가정의 아이와 가장 친한 것일까?
하며 어쩌면 평범한 가정의 친구들과 더 친해지기를 짐짓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혼녀의 딸이라고 내 아이가 뭇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면 어쩌나 하며 항상 전전긍긍 했던 내가 어쩌면 이토록 비겁한 편견에 휩싸여 있었는지 못나다 못해 모자란 엄마였음에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는 그저 다정한 친구이자 감사한 이웃임을 나는 그리 열 살배기 딸아이를 그리고 한국 사람보다 외려 정이 더 넘치는 지은이네 가족과 함께 하며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 속에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숨어야만 했던 나.
외국인이란 이유로 비겁한 편견 속에 아파했어야 했을 지은이 엄마는 이제 서로의 상처와 삶의 애환을 돌보아주는 친구가 되어 있다.
친구란 이웃이란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같은 피부색,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사이가 아닌 서로 따스히 바라보아 주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데 있다고.
너무도 아름다운 우리의 인연은 오늘도 나지막이 내게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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