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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소중한 내 친구, 라시아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39 조회 : 2197
  바야흐로 내가 라시아를 만나게 된 계기는 외국인 이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지구촌 사랑 나눔 바자회를 하러 갔을 때였다. 사실 평소에 집 근처에서 종종 진행하는 바자회 행사를 보러가기만 했었지, 직접 봉사자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기에 들뜨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영어가 부족해서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서부터 ‘나의 작은 실수에 한국의 이미지를 나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주민들은 말을 능수능란하게 잘했다. 오히려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어휘력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내가 판매했던 제품은 매니큐어였는데, 현장에는 샴푸나 치약, 세제 등 주부들에게 필요한 제품은 물론 기초화장품과 한과세트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실 매니큐어라는 제품은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을 제외하고는 인기가 없는 제품이었다. 호기심에 ‘이게 뭐예요?’라고 묻다가도 열심히 설명 하면 ‘나 그거 못해요.’라고 말하기 일쑤였고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제품은 기초화장품들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한참이나 멀뚱히 앉아서 다양한 이주민들이 생필품을 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무조건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따라서 온 외국 아이들은 비록 우리와 피부색은 달랐지만 해맑게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보던 중에 한 남자 외국인이 다가와 물었다. ‘여자들은 어떤 것을 좋아해요?’ 그러면서 부끄러운 듯 퍼뜩 고개를 숙여버렸다. 알고 보니 외국인 마루는 스리랑카 사람으로 한 여선생님의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의 선물을 사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루는 이상하게도 심하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와 마루에게 ‘여자 친구 주려고요?’라고 물었고 마루는 더욱더 눈치를 보며 급기야 자리를 떠났다. 나는 대번에 마루가 그 여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자 선생님이 사라지자 마루는 ‘깜짝 놀랐네.’하면서 제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금세 다가와 내가 추천해준 분홍색 매니큐어를 사 갔다. 사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정말 이거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맞죠?’라고 묻던 마루의 순수함에 계속 웃음이 났다. 아마도 다음날이면 여자 선생님의 손톱이 분홍빛으로 물들여 있으리라.
 그렇게 마루를 시작으로 매니큐어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 중에 대부분은 고향에 있는 어머니, 누나, 여동생 혹은 여자 친구를 위해 매니큐어를 사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가지씩 고르다가도 ‘아니야. 우리 누나, 분명 샘낼 거야.’하면서 하나씩 더 집어넣기도 하고 진짜 여성이 된 것처럼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도 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는 건 언제나 들뜨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주민들의 경우 가끔 찾아가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두 손 가득 선물을 사 들고 갈 때가 가장 뿌듯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이주민들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예쁘다가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느꼈을 그리움이 전해져 오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바자회가 중반부로 흘러갈 때쯤 한 여자 이주민이 찾아왔는데, 얼굴에 천을 두른 모습이었다. 나는 대번에 그녀가 인도사람이라는 것을 눈치를 챘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매니큐어를 쳐다보더니 불쑥 샘플로 있던 매니큐어를 들고서는 입술에 바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놀란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입술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매니큐어의 존재를 모르는 이주민들도 있지만, 여성 이주민 중에서 매니큐어의 존재를 이렇게까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매니큐어가 묻은 입술을 세게 문지르며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인도의 극심한 빈부 격차. 물론 그녀가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그동안 자신의 외모를 치장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고 밋밋한 손톱 위에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라주고 그 위에 꽃무늬 스티커도 붙여주었다. 혹시라도 뭉개질까봐 조심스럽게 호, 하고 불어주자 손톱 위에 꽃잎이 살짝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그녀의 손톱 위로 봄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처음 매니큐어를 발라주었을 때 그녀는 놀란 눈치였는데 이내 곧 예쁘게 변한 손톱을 보고는 예쁜 미소를 지었다. ‘예뻐요. 너무 예뻐요.’ 그렇게 그녀는 내가 발라주었던 매니큐어와 스티커를 바구니에 담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라시아예요. 손톱, 예쁘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것이 처음 라시아와 만났던 순간이었다. 첫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이었을까, 나는 머릿속에서 내내 라시아가 떠나지 않았다. ‘한 번도 발라보지 않았을 텐데, 사가서 잘 바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곧 더는 만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민을 지워버렸다. 그러나 바자회가 끝이 날 무렵 놀랍게도 나를 찾아온 건 라시아였다. 라시아는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손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처음 바르는 매니큐어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살갗에 뭍은 분홍빛의 얼룩. 동시에 라시아의 얼굴을 바라보자 손끝처럼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라시아는 자신의 서툰 솜씨가 부끄러우면서도 내게 도움을 바라는 것 같았다. 마치 어릴 적에 어머니의 화장품을 몰래 꺼내서 발라본 뒤에 엉망이 된 얼굴로 엄마, 잘 못 했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 나는 그런 라시아에게 바자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에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를 마친 뒤 곧장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라시아에게 다가갔다. 라시아는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했을 법도 한데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장소를 옮겨서 라시아와 내가 향한 곳은 근처 카페였다. 테라스가 마련된 곳으로 가서 우리는 잠깐의 침묵을 가졌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고민하던 중 라시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인도에서 왔어요. 이름은 라시아이고, 한국에 온 지는 3년 좀 지났어요. 한국 나이는 스물두 살 이에요.’ 겉모습만 보아도 어릴 줄은 알았지만 설마 저보다 어릴 줄 몰랐던 나는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며 라시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실 이주민들은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는 한국 사람이 드물다고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라시아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라시아는 스무 살에 한국에 와서 국제결혼을 했으며 현재는 남편과 함께 이 근처에 산다고 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자신을 많이 도와주었지만, 점점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춰지고 라시아에게 한국요리를 강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라시아에게서 원망보다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더 비쳤다. 남편은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를 좋아했지만 라시아는 종교가 이슬람교이기 때문에 돼지고기 요리를 할 때마다 곤혹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간이 종종 안 맞기도 하고 고기도 덜 익거나 타버리기가 일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내내 비록 나보다 어린 동생이지만 벌써 한 가정의 아내가 되어 살림을 하는 라시아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우리 어머니 또한 스무 살에 결혼했기에 라시아를 보면서 어머니도 처음엔 매우 서툴고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라시아에게 더 친근감이 들었고 라시아 또한 나를 편한 언니로 생각하는 듯 다른 손톱도 마저 예쁘게 칠해주자 앞으로 더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라시아에게 내 연락처를 전해주고 종종 만나자고 약속했다. 나에게 있어 생애 첫 외국인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를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매니큐어를 들고 나와서 라시아의 손톱을 예쁘게 발라주었다. 그러면서 매니큐어 또한 개개의 색상이 있어,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듯이 피부색 또한 국적별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라 각기 개성이 있는 자신만의 색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일아트에 취미를 갖고 있듯이 라시아의 취미는 뜨개질이었다. 아직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한 라시아는 언젠가 고향에 갈 날을 기약하며 어머니 목도리, 아버지 장갑, 여동생 모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올해 겨울은, 내년 겨울은, 내후년 겨울은…. 그렇게 겨울을 내내 기다리던 라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을 느꼈다고 한다. 살림에 지쳐가면서 여자로서 용모가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라시아였지만 그때 내가 처음 매니큐어를 발라주었을 때 그동안 잊고 지낸 여성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인연으로 하여 우리는 아직 종종 만나고 있으며 가끔 동네 공원에서 우린 서로를 위해 싸온 도시락을 바꿔먹고는 한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라시아를 위한 소고기 김밥, 그리고 나를 위한 라시아의 인도식 카레까지. 서로의 문화와 음식을 이해하고 교류하는 일.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고 뜻 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외국의 문화를 미개하게 보는 사람도 분명 있다. 라시아 또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식당에서 질 나쁜 학생들이 인도 사람들은 변을 닦은 손으로 밥을 먹지 않느냐는 언어폭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라시아에게 한국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물었을 때 라시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니와 같은 좋은 한국 사람과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는 거, 그게 너무 좋아요.’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막상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곳은 많지가 않다. 그 때문에 나는 라시아가 힘들 때마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조금 다른 피부색의 라시아가 섞여 있을 때 나는 당당히 라시아를 향해 외친다.
 “안녕, 라시아!”
 그러면 라시아는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온다. 예전에는 움츠려들었을 어깨를 펴고 반가움이 가득 실린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라시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둥근 것처럼 걷다보면 언젠가 우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돌아서 갈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맞아줘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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