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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나의 살던 고향은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33 조회 : 2066
제가 30여명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건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도와주는 업무를 맡게 되면서 대한민국정부초청 장학생들을 담당하게 되었고 우리 땅을 처음 밟는 학생들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꼬박 밤을 지새우는 일은 저의 첫 과제였습니다. 멀리 아프리카의 케냐, 토고, 탄자니아, 기니비사우에서부터 러시아, 몽골,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파키스탄 그리고 남미의 파나마, 콜롬비아, 파라과이에 이르기까지 생전 처음으로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말이 잘 통하리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역시나 처음부터 학생들과의 언어 문제와 음식 문제는 해결하기 힘든 숙제였습니다.
      김치는 죽어도 못 먹겠다는 학생부터 자신은 오로지 채소만 먹을 수 있다는 학생, 한국인들의 마늘 냄새가 너무나 싫다는 학생을 접하게 될 때는, 과연 내가 이들에게 도대체 어디까지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에 빠지기 일쑤였고 새벽에 자다가도 배가 너무 아파 죽겠다고 전화를 해 올적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고 전화번호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당장 바꾸어야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한탄강 부근으로 여행을 갔다가 학생의 조그만 실수로 여학생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철원 시내에 있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X-RAY도 찍고 응급치료를 받았는데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학생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 아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럴수록 내가 더 학생들에게 아버지처럼 때로는 형처럼 애정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다보니 저도 조금씩 지쳐가기만 했는데 그런 제 맘을 눈치라도 챘는지 학생들이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며 롤링 페이퍼를 써서 정성스럽게 작성해서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예의 없이 행동해서 미안하다.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너무 외로워서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어 그랬다..... 학생들이 남긴 글을 읽는 순간 저의 짧은 생각이 너무나 철없는 행동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한국어를 배워가면서 우리 문화를 이해하려는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볼 적엔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지면서 각오를 새로이 하곤 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문화가 생소한 학생들에게는 정기적으로 한국의 문화와 한국 사람들의 정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공부하느라 지친 학생들을 위해 방학이면 부산이나 강릉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문화체험을 위해 안동과 전주에 가서 기분 전환도 하고 유학생활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케냐에서 유학 온 브라이언은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런 특별한 친구중의 하나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것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국내 대기업에 취업해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여느 학생과는 달리, 고향으로 돌아가 가난 때문에 공부하고 싶어도 학업을 할 수 없는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브라이언의 꿈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였고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물질에만 혈안이 되어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제 자신부터가 너무나 한심하고 초라하기만 했습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고 누군가에는 지겨울 만큼 식상한 곳이 되어버렸지만, 외국인들에겐 경주와 안동만큼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실제 한국 문화를 접하기에 안성맞춤인 곳도 없습니다. 따뜻한 봄날, 다른 외국인 친구 30여명과 우리는 경주 여행길에 올랐고 여느 수학여행 코스대로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을 차례대로 돌아보았습니다. 마침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어린 초등학생 친구들도 여행을 왔었고, 열에 아홉은 브라이언에게 Where are you from?을 연달아 질문했습니다. 아마도 외국인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어린 친구들에겐 TV속에서나 나올 흑인을 직접 본다는 것이 신기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짓궂은 질문과 어린 친구들의 장난어린 태도에 기분 나쁠 수도 있었을 텐데, 브라이언의 모습은 너무나 즐겁고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너무나 감사하지 않느냐는 그의 대답에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항상 밝고 웃음 가득한 얼굴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존재였던 그 친구는 졸업을 앞두고 22살의 나이로 이곳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극심한 두통으로 인한 뇌질환으로 모두가 잠든 새벽에 저 멀리 하늘나라로 외롭게 혼자 가야 했습니다. 브라이언과의 뜻깊은 여행이 더욱 가슴 사무치게 기억나는 것은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과 친구들을 늘 배려했던 그의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모두의 귀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편하게 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모두 졸업을 했고 연락이 끓긴 친구들도 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벌써 어엿한 아기 어머니가 된 학생도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귀국해서 취업해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가 하는 반면 얼마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지금은 백수생활 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제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전해오거나 자기 나라에서 보내오는 한 장의 엽서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게 될 때면 가슴 한구석 감동이 밀물처럼 다가옵니다. 미지의 나라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소중한 인연을 맺고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지난 날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고 새벽에 울면서 전화하던 스리랑카 학생에게는 비행기표를 먼저 발권해주고 가면서 뭐라도 사먹으라며 용돈 얼마를 쥐어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 연장에 문제가 생겨 애를 먹을 때면 저를 보호자라고 연락해서 곤혹을 치르던 때도 기억납니다. 그 때는 참 힘들고 짜증도 났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기만 합니다. 마라톤 같은 인생에서는 비록 짧은 한 순간이었을 수 있겠지만 함께 했던 학생들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 값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나의 살던 고향, 한국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할 때면 한국인보다 더 뜨거운 정을 느끼게 됩니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해주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다가서고 진심으로 위해주었던 마음이 어쩌면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나 봅니다. 세월이 더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 할 이야기가 참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살지언정 인생의 청춘을 보낸 한국은 그들에게 제2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토고에서 보내온 엽서에 적혀 있는 글귀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고향에 계신 선생님께’......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립고 또 그리운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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