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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한국의 푸른 하늘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30 조회 : 2022
나는 20년 전 한국인 남편을 만나 일본에서 시집을 왔다. 우리는 가난해서 싱크대도 없고 수도꼭지 달랑 하나 있는 지하 방에 살았다. 태어난 아이는 허약해서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겨야 했다. 병원에서 심장박동측정기를 달고 힘없이 잠만 자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친정이 없는 나에게 그런 일들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남편은 귀가 얇아 사기도 당하고 직장도 수 없이 옮겼다. 언젠가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빚쟁이에 시달리다가 집을 나갔다. 2년 전 이야기다. 행방불명인 남편을 기다리다가 법적으로 이혼하고 남매를 키우면서 싱글 맘으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몸에 신장 암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병원에서는 신장 하나를 떼어 내는 수술이 급하다고 했다. 돈도 없었지만 암은 재발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암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방법을 찾았다. 부정적인 나의 사고방식은 병을 만들기에 너무나 합당했다. 한국에서 어렵게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어느새 매사에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목숨 걸고’ 사고방식을 바꿨다. 유명한 대체의학 박사의 “낫고 싶으면 다 나았다고 말해라” 라는 말에 필이 꽂혔다. 식이요법보다 중요한 것이 마인드라고 했다. 암 덕분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병원에 가는 대신 산에 가서 “나는 다 나았어!” 라고 외치고 다녔다.    그러다가 건강과 관련된 서적뿐만 아니라 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 속에 빠져들었다. 책에는 인생에 소망을 주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읽은 책은 150권 넘는다. 평생 읽었던 양보다 훨씬 많다. 한국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 책이 슬슬 넘어가는 죽 같다면 한국 책은 잡곡밥 같고 십는 맛이 있다. 책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생각 없이 이야기하는 그 말에도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니까 내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지금까지 한 적이 없었다. 암이란 병과 이혼으로 “힘들어 죽겠다” 고 징징 짜기만 하던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실과 반대된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감정과 상관없이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행복해, 나는 건강해, 다 나았어.” 계속 말하다 보니 어색함이 사라지고 누가 “건강 좀 어때요?” 라고 하면 바로 “다 나았어요. 건강해요”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소리도 많이 듣게 되었다.   암 선고를 받은 지 1년 후 건강검진을 받았다. 사실을 확인 하는 것이 두려웠다. 일본 어머니에게는 “엄마, 정신이 건강하면 건강한 거야. 나는 나았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밤마다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 남은 생명을 딸에게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울었다. 20년 전 한국에 가지 말라는 부모님을 뿌리치고 떠나와 지금까지 멀리 사는 동안 효도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또 다시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초음파 검사실 침대에 누워 눈을 꼭 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이 순간만이라도 좋아요. 암이 없어지게 해주세요. 기계가 고장 나서 오진을 내려도 좋아요. 엄마에게 암이 없대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 잠시 후 들린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검사 마쳤습니다. 가시면 됩니다. 이상 없습니다.” 정말 말하는 대로 되었구나! 믿는 대로 되는구나! 너무 신기했다. 암이 발견되기 전에는 불행하고 우울했던 내가 암이 나으면서 불행이라는 병도 같이 치유되어 버렸다. 암 덕분에 건강과 행복을 같이 찾게 된 것이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작가가 특별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누구든지 글을 써서 작은 감동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작가다. 내가 책을 통해 많은 힘을 얻은 것처럼 나의 이야기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런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도 미래를 대비한 글쓰기 훈련인 셈이다.  한국은 자살율이 높고 그 중 청소년 자살 율이 세계 1위라고 한다. 2015년 7월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중 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 강사를 초청해 정기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기회가 닿아 강사가 되기 위한 마인드교육을 받았다. 교육과정 중에 청중들 앞에 서서 5분 발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말 잘하고 끼가 있고 힘이 넘치는 ‘강사다운’ 교육생이 너무 많아 주눅이 들었다. 나는 안 되겠다고 포기하고 싶었다.   원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자살충돌을 받는 아이들은 나처럼 내향적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목소리 크고 외향적인 사람에게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그런 학생과 소통하는 인성교육 강사로 제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다 작년 7월에는 마인드교육 전문강사 시험에 합격하고 병아리 강사가 되었다. 아직 불러 주는 데가 많지 않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자율학기제 진로교육시간에 1시간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 후에 1년에 한번 전교생 학부모 중 한명에게 주어진 “장한 어버이상” 이라는 상을 교장선생님이 주셨다. 과분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한 6개월 전부터 부산 남포동에서 조그마한 전통찻집을 하고 있다. 요즘은 남녀노소 다 커피숍을 좋아해서 전통찻집은 인기가 없다. 사실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았던 가게다. 지금은 일본어 스터디 그룹 모임을 정규적으로 가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찻집이 한일 문화교류의 장소가 되어 가고 있다. 일본말을 배우고자 하는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관광객들이 많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부산에 여행을 오다가 우연히 이 모임에 참석한 일본청년이 말했다. “대단하세요,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을 덴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모임을 가지고 있잖아요. 사람을 모으는 것, 그거 쉽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이 6개월 사이에 이름도 외우지 못할 정도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맺어졌다.
  한 달에 한번은 여기서 독서모임을 가지고 10여명의 젊은 사람들이 온다.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아주 진지하고 흥미롭다. 특히 “사랑” 을 테마로 책을 읽고 토론을 했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하고 결국 다 자기의 연애 실패담, 배우자의 이상형에 대해 열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세 시간을 앉아있었다. 내 가게라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독서토론 시간이 매우 기다려진다. 이 사람들은 마라톤클럽 사람들인데 나도 자극을 받아 일주일 두어 번 집 근처의 공원에서 모닝 런을 하고 있다. 다음에 같이 10km 미니 마라톤대회에 도전하자고 한다. 끼워줘서 고맙다.   요즘 나는 뭐든지 일단 YES라고 대답하고 나중에 방법을 찾는다. 두 달 전에는 부산영어FM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특집방송이 있는데 30분 일본어로 진행할 수 있냐고 했다. 물론 오케이 라고 씩씩하게 대답하고 2월말에 생방송을 해냈다. 경험도 없었고 딱 한 번의 방송이었지만 이런 도전은 내 삶의 질을 높여간다. 지금은 5월에 있을 영어스피치 콘테스트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도전은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라 하면 가족모두가 환하게 웃으면서 햇살이 눈부신 잔디 위에 앉아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문제없고 기분이 좋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진짜 행복은 아니다. 만약 무언가 완벽하게 다 갖추어져서 행복하다면 없어졌을 때는 불행한 사람이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의 나처럼 불행이라는 생각에 갇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맨토가 되어주고 싶다. 한국 속담에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던가. 아픈 사람의 마음은 아파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돌아갈 마음이 없다. 나는 이미 5년 전에 귀화를 하여 한국인이다. 20년 동안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지금은 내가 걸어온 인생에 후회는 없다. 한 번 죽음 앞에 섰기 때문에 이제는 작은 일에 요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 가치 있고 즐거운 일에 마음 쏟아서 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어떤 교수님이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내에게 “근데, 지구가 도는 데는 문제없지? 그럼 됐어” 라고 웃고 화해한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작은 것에 매여서 문제 삼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쌀이 떨어져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쌀이 떨어질 까봐 걱정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로 돌아가서 한숨을 내쉰다.  빛난 별은 어두운 밤에만 보이는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많은 시련들이 앞으로 나를 빛나게 해 줄 배경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지금 어떤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를 좀 보세요.” 하고 말하고 싶다.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 나도 힘을 내보자”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남과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까. 한국의 하늘이 이리 푸르고 눈부신 줄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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