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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아이야, 오늘은 선생님이 먼저 말할게!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24 조회 : 1908

티 없는 피부에 해맑은 미소가 예뻤던 서희(가명)는, 수줍음 많고 얌전한 8살 아이였다. 포천시다문화센터에서 언어발달지도사로 근무하는 나로서는 무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상처럼, 언어발달이 늦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곳을 방문하게 된 아이에게, 정해진 매뉴얼대로 평가 및 상담을 실시하게 되었고 언어촉진이 필요한 서희와 이내 지도스케줄을 잡아 수업을 시작 할 수 있게 되었다.

  서희는 말수가 적고, 작은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는 듯 말을 했다. 상대방의 질문에는 주로 한 두 마디로 느긋이 답을 하거나, 그나마 말없이 특유의 천진스런 미소로 답변을 때우기 일쑤였다. 이를 두고 서희의 아버지께서는 아이가 숫기가 없고 얌전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좀 더 크면 목소리도 커지고 씩씩해지지 않겠냐는 말씀을 해오셨다. 

서희는 좋지 못한 발음에 짧은 문장으로 의사소통했다. 설사 말을 길게 이어나간다고 해도 서투른 발음 탓에 서희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낯선 사람들에겐 조금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니 나름의 책략으로 간단한 전보식 문장이나, 핵심단어를 이용해 천천히 발음에 신중을 기해 말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과거 서희와 상대방의 대화패턴을 짐작컨대, 서희의 발화 다음에는 상대방의 명료화요구가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무슨 소리야?’ 등등. 이러한 상대방의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수 없이 겪었을 터이니, 대답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서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턱이 없지 않은가.

추가로 조음평가를 실시하고 오류를 나타내는 음소와 음운변동 현상들을 파악하여 조음지도를 시작하였다. 치료실 내 손거울을 비치해 놓고 함께 보면서 조음위치와 조음방법에 관해 설명하였다.  서희는 나와 함께 혀를 내밀어 입안 이곳저곳에 대어보면서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소리변별을 해보기도 하였다. 몇 주간의 반복 훈련 끝에 목표로 잡았던 어휘 목록 중 최고 난이도 수준인 ‘잠자리’를 옳게 조음하였을 때, 서희는 언어지도실 책상 앞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며 전매특허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서희는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고, 받아쓰기 시험도 보게 되는데 서희는 한글을 읽지 못했다. 당연히 수업진도를 온전히 이해하여 따라 가기에는 무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빠른 시일 내 한글을 습득시켜야 했다. 글자를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사진을 찍거나 그림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어릴 적 마주했던 낱말카드의 몇몇 단어들만 통글자로 외우고 있는 탓에 서희는 똑같은 음절이 쓰인 단어들 간에도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음과 모음을 분리하여 지도하기 시작했고, 음절구조를 염두에 두고 열린 구조(자음+모음)에서 닫힌 구조(자음+모음+자음)로 난이도를 높여가며 수업이 진행되었다. 다소의 실수가 있지만 미흡하게나마 낱글자를 읽게 되었을 때, 서희가 수업에 들어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여기 들어올 때 문 앞에 ‘언어지도실’이라고 써 있었어요. 저는 지금 언어지도실에 있어요!”

  최근 서희 어머니와의 상담에서는, 요즘 서희랑 어디에 갈 때마다 서희가 문패나 간판을 보고 와서 거기가 어딘지 큰소리로 자랑스럽게 일러준다는 말씀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글로 깨우치며 배워가는 세상은 아마도 서희에게 새롭고 세세한 정보와 함께 큰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서희는 학교 공부에서도 적극성을 띄게 되었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니 내용을 이해하며 수업을 따라 가기 시작했고, 단적으로 학교에서 시행되는 평가시험에서 이전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성적을 받아 올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께 칭찬을 듣게 되었고, 주변 친구들의 축하 속에 맘이 맞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이전에 글을 몰랐을 때는 보호자가 깜빡하면 챙기지 못했던 준비물도 본인이 알림장을 읽으며 스스로 챙길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을 물어볼 때, 웅얼웅얼 대며 작은 소리로 외마디의 답을 하던 예전에 비하면 목소리도 커졌다. 이어지는 발화 속에는 여전히 틀린 발음이 남아있지만 말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언어지도사로 3년여를 근무하면서 만난 다문화자녀들 중에, 자신의 의사를 밝고 큰 소리로 표현하는 아동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취학 전·후 아동들과 이국적 외모를 지닌 아동들은 외부세상과 교류하게 되는 시간과 기회가 많아지면서 암암리에 ‘다문화자녀’라는 인식의 굴레 속에서 차별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고 보니, 감수성이 예민한 아동인 경우엔 타인에 대한 피드백이 소극적이고 움츠린 태도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그렇다 보니 서희의 커진 목소리는 그만큼의 자신감과 자존감의 회복이 이루어졌다는 증표로 보여, 나도 한껏 들뜬 기분과 다소 흥분된 톤의 목소리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그 날은“안녕히 계세요”를 씩씩하게 외치는 서희를 더욱 꼭 안아주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가정에서·학교에서·언어지도사인 내게서 기분 좋은 칭찬을 듣게 된 서희는 이제 춤을 추는 것만 같다. 빠릿빠릿해진 행동 속에서 야무지고 당찬 느낌마저 풍겨진다. 말수도 어찌나 늘었는지.. 예전의 소극적이고 수줍기만 했던 느낌은 이제 서희에게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다. 언어수업에 들어오면 서희의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이런 저런 관심사를 들추거나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먼저 말문을 열고 쏟아지듯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하게 되었다. 

보통 서희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주다가, 으레 그날 공부 할 주제에 관해 운을 띄우면 눈치 빠른 서희는 “선생님, 조금만 더 있다가요. 제가 먼저 말할게요..”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로 수업 시간을 쪼개곤 한다.
서희의 이야기 주제는 주로 학교생활, 친구, 미술시간, 애완동물-강아지 등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서는 오늘 혹은 가까운 시일 전 본 시험에서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는지도 포함되어 있다. 칭찬을 바라는 눈치다. 성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소를 반짝일 때는 지도사로서 참으로 기특하고 예뻐서, 서희의 얘기를 듣는 중 나도 모르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게 된다.

  서희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쓰다 보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옴이 느껴진다. 여느 다문화아이들도 서희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보듬어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다 보면 (나는 언어지도사이기에 주로 언어영역과 관련한 평가·지도·상담을 바탕으로 아동 옆에서 보조하게 된다.) 어느 순간 아동은 이전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내 앞에 서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오늘은 서희와의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후 3시,“선생님, 저 왔어요!”를 외치며 언제나처럼 해맑은 미소로 언어지도실 문을 열고 들어설 서희를 만나게 되면, 나직하지만 일렁이는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야, 오늘은 선생님이 먼저 말할게! 씩씩한 우리 서희, 똑똑한 우리 서희! 정말 잘했고, 사랑한다! 우리 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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