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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살면서 한 번쯤은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5:20 조회 : 1838

인천남자, 샌프란시스코 여자

살면서 한번쯤은 없던 용기도 생기는 날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날이 그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5년 전, 교사임용시험에 합격하여 첫 발령 학교에서의 첫째 날 그녀를 만났습니다. 첫 발령을 축하하는 회식자리에서 얼핏 그녀를 보았습니다. 저의 이상형과 많이 닮았던 그녀는 놀랍게도 영어를 가르치러 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재미교포 원어민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수줍음이 많은 성격에 영어울렁증이 있는 저로서는 평소처럼 마음으로만 짝사랑을 했어야 했지만 그 날은 달랐습니다. 초가을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20119월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먼발치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어디서 생긴 용기였는지 그녀의 뒷모습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곤 필사적으로 외치듯 Hi로 인사말을 건네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저희 둘의 운명은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만난 지 7번째 데이트 날. 아직도 머리에 선명히 남아있는 2011년 크리스마스! 데이트 후 언제나 그녀의 집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졌었지만 그 날은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놀라는 그녀에게 평생 동안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며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거절할까봐 몇 번이나 주저했던 마음을 고백하려고 무작정 그녀의 집 엘리베이터에 같이 따라 탔던 것입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던 그녀는 며칠 후 마침내 마음을 받아주었고 꿈만 같은 연애를 시작하였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인천과 샌프란시스코. 넓고 넓은 태평양 바다의 면적처럼 두 나라에는 적잖은 문화차이가 있음을 연애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교포임에도 음식문화나 언어습관 등의 문화적 차이를 제법 느꼈습니다. 그녀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문화차이로 인해 때로는 기분 좋게 때로는 언짢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차이가 오히려 불편함보다는 재미있게 다가왔고 그녀와 함께하면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던지 매일 찾아오는 깊은 밤을 아쉬워하며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상하게 함께하는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떠 올릴 만큼 쏜살처럼 지나갔고 만남을 기다리는 업무시간은 어찌나 안 가는지 눈으로 시계바늘을 노려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연애를 하던 2012년 여름의 문턱에서 그녀의 몸에 우리의 사랑이 싹트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정말 많이 사랑하였기에, 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청혼하였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결실을 맺으며 영화처럼 해피엔딩을 그렸습니다.

 

현실에 현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달리 현실은 지금부터 시작이란 걸 그 당시에는 왜 몰랐을까요? 그녀는 전과 같이 옆을 지켰지만 서로의 마음은 조금씩 메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재밌었던 문화적 차이가 결혼 후에는 사소한 다툼으로 찾아오기도 하였고 마냥 재밌던 연애와는 다르게 돈 문제, 한국과 미국의 가족문제 등이 생겼습니다. 더더군다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얻은 아기는 유난히 보챔이 많고 밤마다 잠에서 깨어 우리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했던 연애와 결혼생활은 두 사람이 만나 생긴 두 날개로 하늘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는 삶이며 아기가 생기면 다시 천계에서 인간세상으로 떨어져 현실에서 살아야한다라는 그 말이 정말 와 닿았던 시기입니다.

육아와 함께 시작된 작은 마찰들은 저와 아내 사이에 다른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나쁜 일은 왜 연이어 생기는지 그 즈음 갑작스럽게 장인어른께서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찌 보면 저 때문에 졸지에 아내는 장인어른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의 짐이 생겼습니다. 아내에게 다만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었는데 그 말 한마디를 스스로 만든 죄책감에 안으로 또 안으로 숨겼습니다. 오히려 미안함을 퉁명스러움으로 감추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장례를 미국에서 치루기 위하여 다녀왔고(저는 뒤늦은 군복무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아내는 지난날의 서운한 마음들을 토해내듯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이란 낯선 땅에서의 겪어야 했던 어려움, 마음하나 털어놓을 친구도 없었던 외로움, 그리고 보고 싶었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들…….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그날 밤 부끄럽게도 오랜만에 펑펑 울었습니다. ‘아내는 여러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참아내고 있었는데 왜 난 먼저 다가서지 못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미국에서 만나서 결혼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어려움 삶을 살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뒤엉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펑펑 울었던 지난 밤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아기가 태어나던 밤,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핼쑥해진 얼굴을 보며 고개 숙여 눈물을 훔치고 있던 제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아내도 여는 여인처럼 아기가 태어나 친정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위로도 받고 싶었을 텐데 미국과 한국에 거리 때문에 그렇지 못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앞으로 아내가 힘들어 울지 않도록 참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왜 난 이 모양일까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녀를 온전히 사랑하는데 걸린 시간

다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어느 덧 군복무와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힘들었던 시기를 마치고 제대 후 복직을 앞두는 날이 되었습니다. 다시 출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옷도 고르고 모처럼 쇼핑도 넉넉히 한 후 다음날을 위해 늦은 밤 홀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고요한 밤공기 속 위잉하며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읽어보니 아내는 군 생활하며 가정을 지키느라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심 아내에게 미안함을 가슴 한 구석에 두고 있던 터라 오히려 고맙다는 표현을 들으니 어찌나 가슴이 저려오며 또 감사하던지…….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날 밤 다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고맙고 저에게 과분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남편을 먼저 걱정하는 아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내와 함께하며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막내로 자란 저는 조금은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아내를 보니 저 또한 그 습관이 밴 것입니다. 또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를 배려하고 아기를 돌보며 가장으로서 항상 앞장서다 보니 생활에도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감사함을 느끼며 열심히 가르치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감추었던 사랑한다는 표현도 적극적으로 먼저 하기 시작하자 그 전에는 회백색이었던 세상 풍경을 지금은 옅은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색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같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몹시 죄송스러웠지만 아기는 잠시 맡겨 두고 거의 2년 만에 단 둘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전혀 티격태격 안한 건 아니지만 이제는 지난 5년간의 결혼 생활의 노하우로 그 속에서도 아내를 사랑하며 배려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중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가는 기차 편을 놓쳐 당황스러웠을 때 외국인과 대화가 가능한 아내가 옆에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또 함께 손을 마주잡고 호수를 거닐 때는 다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떠오를 만큼 어찌나 시간이 빨리 사라지던지…….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아내를 온전히 아내 자체로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가족 문제, 육아문제, 그리고 다른 문화에서 오는 문제들! 생각해 보면 참 많은 문제들 속에서 아내를 한 여자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듭니다. 아내는 즐거울 때와 슬플 때, 힘들 때 모두 옆에 있어준 놀랍도록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외국인이라는 교포라는 그리고 다른 문화권 사람이라는 모든 것들은 아내를 감싼 조건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걷어내고 온전히 아내를 한 여자로서 사랑하는데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앞으로 지금보다도 더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내와 함께 맞잡은 손을 그리고 예쁘게 성장하는 딸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 딛는다면 슬픈 날 보다는 행복한 날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 이제는 믿습니다. 마치 살면서 한번쯤 갑작스레 생긴 용기로 출근 길 아내에게 다가섰던 그 용기의 한 걸음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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