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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딸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8 (목) 00:17 조회 : 4013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딸       

 

 

 휜티투하

 

 한국에 온 지 거의 3년이 되었다. 그동안 내 삶을 차지했던 어려움들이 지나가고 베트남과 한국의 문화와 언어 차이를 극복해서 이제는 한국 생활에 점차 익숙해졌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한국 문화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화 차이 때문에 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의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3년 전에 우리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한 번의 결혼 경험이 있었고 사별을 한 후 딸 아이 한 명을 정성으로 키웠다고 했다. 나는 초혼이었지만 베트남에서는 재혼과 초혼의 만남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사랑만 믿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한국말을 잘 못했지만 기사님께서 착해 보이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기사님은 “애기 있어요?” 라고 물으셨다. “아직요.” 대답을 들으신 기사님은 “빨리 애기를 낳아야지요. 남편이 얼마나 기다리는데…”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웃으면서 남편에게는 딸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깜짝 놀라시면서 “남편 분은 재혼이라고요? 왜 아가씨가 재혼을 했어요?” 큰 소리로 다시 물으셨다. 나는 기사님에게 재혼이라도 좋은 사람이면 괜찮다고 답했다. 그런데 기사님은 무슨 말을 하시면서 계속 혼자 중얼거리셨고 그때부터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기분이 편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매일매일 안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외국인 주민 센터에 다니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서서히 그 일은 내 머리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한 일이 있어서 택시를 한 번 더 타게 되었다. 이번 기사님도 친절한 사람이라서 어쩌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기사님은 남편과 함께 베트남 관광지부터 한국의 날씨, 음식, 영화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자 분들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야기는 더 오래 가지 못했다. 남편의 재혼을 알게 되신 기사님은 또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왜 남편과 결혼했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남편이 무안해할까 봐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끝나고 어색한 기분으로 택시를 내리게 되었다. 이런 기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집 근처, 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 머리짱 아주머니도 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똑같은 말로 물었다. “왜 그렇게 했느냐, 이제 괜찮으냐?”고 물으셨다.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아 보니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초혼과 재혼의 만남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왜 나한테 자꾸 그런 말을 하지?” 그래서 이번엔 내가 직접 머리짱 아주머니께 물어 보았다. 아주머니께서는 한국 사람들 생각에는 아가씨인데 한 번 결혼의 경험이 있는 남자와 재혼을 하는 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보통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친절하고 답해 주셨다. ‘아, 그렇구나… 결혼에 대해 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에 와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남편은 나를 꼭 안으면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랑해요, 여보!” 그 말을 듣고 이제 한국 사람들의 편견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보니 생길 수 있는 문제이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믿었으니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물론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남편과 남편의 소중한 딸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잘 적응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남편에게 하나밖에 없는 딸은 지금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 살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에게 딸에 대해 많이 얘기를 들었었는데 사실 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10년 전 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남편은 혼자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없이 딸을 잘 키워 일본으로 유학까지 보냈다. 남편이 자기의 모든 사랑과 희망을 딸에게 다 쏟았다. 당연히 남편은 딸의 우상이 되었다. 그런 딸이 참 예쁘고 좋았지만 한편으론 우상인 아빠와 결혼한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 걱정도 되었다.
  ‘나와 남편이 결혼한 것을 딸은 어떻게 생각할까? 딸이 나를 이해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의 보통 엄마와 딸처럼, 팔짱을 끼고 딸이랑 같이 이야기도 하고 싶고 쇼핑도 같이 가고 싶었다. 좋은 추억도 만들고 싶은데 멀리 사니까 마음만 계속 있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늘 머릿속에서만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갈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 달리 드디어 우리는 작년 8월에 딸이랑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이라서 초조한 마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딸의 눈을 어떻게 쳐다봐야 할 지 정말 난감했다. ‘먼저 가서 안아 줄까?, 이름을 불러 줄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딸의 생각도 택시 기사님과 똑같을까?’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딸이 먼저 “엄마… 엄마가 아버지를 사랑해 주셨으니 제 엄마예요. 맞지요?”
  “엄마....”
이 한 마디 말로 나의 모든 걱정은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큰 감동을 받은 나는 “어…고마워… 사랑해….”하며 딸을 가슴에 품고 꼭 안아 주었다. 짧은 5일 동안의 시간이라 아쉬움도 많이 남고 긴 이야기도 많이 나누지 못했지만 일본으로 딸이 돌아간 후부터 우리는 여러 번 전화도 하고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도 서로 보내고 있다. 아직 한국의 엄마와 딸처럼 되려면 아직 많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매일 매일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고 있고,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어색함이 남아 있었던   어느 날, 남편은 딸에게 전화를 한 번 걸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순간
 “당신이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이 직접 걸어야지요. 당신 딸이잖아요.”
 남편의 놀란 두 눈이 점점 커져갔고, 조금은 서운한 빛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당신도 우리 딸의 엄마예요.”
“아니요. 나는 그 애기를 낳지는 않았잖아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해 버리다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남편의 말투에는 화가 나 있었다.
 남편은 딸이 늘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고 늘 엄마라고 부르고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서운한 듯 물었다. 또
 “내 딸이니까 당신 딸이기도 한 거야. 우리는 부부잖아요.”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에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며칠 동안 남편의 말을 많이 생각하면서 후회했다. 나와 딸이 같은 사람, 그 사람은 우리 남편, 나는 그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낳지 않았던 딸을 예쁘게 봐 주고 관심을 많이 가져 주고 사랑을 해 주면 친딸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있는데 딸한테 사랑을 주고 예쁜 말을 해 주면 당연히 좋은 마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딸이 나에게 엄마라고 하고 그렇게 잘해 주고 있는데 나 역시 더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지난 주 뜻밖의 전화가 왔다. 딸이 전화를 해서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일본에 꼭 한번 오라고 하면서 우리를 초대했다. 그렇게 할까? 우리 부부는 일본에 가 본 적도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딸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거기서 딸을 만나 여행도 하고 더 속 깊은 얘기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은 당연히 시간을 내서 꼭 한 번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딸이랑 더욱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나의 친딸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나의 꿈이다. 마음으로 자식을 낳아 입양도 하는 마음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 딸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딸이 아닌가?
 이 세상의 그 어느 모녀보다 더 뜨겁게, 깊게 사랑하고 싶다. 딸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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