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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아버지와 젓가락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8 (목) 00:16 조회 : 3185

아버지와 젓가락

 POPOVA ELIZAVETA
 

 

얼마 전 보수적인 러시아 사람인 친정아버지께서 한국에 오셨습니다.
한국인 남편과 러시아에서 결혼식을 먼저 올린 후, 한국에서 다시 하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함이었죠. 결혼식에 참석하시고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함께 강원도 속초로 여행도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산지 거의 10개월이 되어서 한국이란 나라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이상하고 낯설었던, 그리고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적응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던 까닭이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일흔이 다 되시도록 오직 러시아에서만 사셔서 고향의 모든 것에만 익숙하신 너무나 보수적인 아버지에게 한국은 불편한 곳 일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런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잊을 수 없는 한국에서 아버지와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1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아버지랑 단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아버지께 식사를 만들어 드려서 누구보다 저는 아버지의 음식습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농촌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간단한 전통 러시아 음식만 좋아하시고 지금까지 이 습관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국에 조금만 새로운 재료를 넣어도 이는 곧 아버지는 안 드시고 저 혼자만 먹겠다는 뜻일 정도니까요. 또한 아버지가 해외여행을 가실 때는 반드시 러시아 음식과 보드카를 가져가시곤 합니다. 다른 나라의 여러 가지 독특한 향이 있는 음식은 아버지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여행의 첫째 날에도 집에서 가지고 가신 비상용 러시아 음식을 꺼내어 드시곤 합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아버지의 가방 안에서는 우리에게 줄 선물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여행에서 여권과 함께 가장 중요한 지위와 권위를 가진 물건, 보드카와 소시지 그리고 전통 러시아 빵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한국에 오신 날, 시부모님이 준비하신 저녁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우선 한국 빵을 조금 집어 들어 드신 후에 젓가락을 드시더니 오래 집고 있지를 못하셔서 저처럼 포크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포크를 받으신 다음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를 얼마나 놀라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포크를 능숙하게 사용하시면서 식사를 하실 때, 시어머니께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살뜰하게 준비하셨던 밥과 반찬 국 같은 음식들은 마치 식탁위에서 녹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났을 때 시부모님은 아버지 앞의 완전히 깨끗한 그릇을 보며 손뼉을 치실 정도로 기뻐하셨습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셨어!’
평소에 아버지는 예의를 아주 중요시하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저는, 저녁밥을 먹은 후에 다른 방에서 조용히 몰래 아버지를 불러 여쭈어 봤습니다. 우리 고향과는 그렇게도 많이 다른 한국음식이 정말 마음에 드신 건지 아니면 소중한 사돈을 화나게 하지 않도록, 후하게 대접하시는 사돈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맛있게 드신 척 하신건지 여쭤 봤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놀랍게도 방금 먹었던 한국음식이 정말 입에 잘 맞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삼겹살집에 같이 갔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시부모님께서 저를 이 식당에 데리고 가셨었는데 싱겁고 단백한 맛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제 입맛에 여러 가지 고소한 소스가 맞지 않아서 당시 가방 속에 가져왔던 복숭아와 빵만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빵을 가방에 넣고 식당에 갔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께서는 두 번째로 저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고기와 신선한 깻잎과 상추와 같은 채소를 함께 먹는 것이 궁합에 잘 맞으신다며 이 식당에서도 역시 마치 한국 삼겹살의 광고를 찍으시는 듯 맛있게 고기를 드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나 결혼식이라는 큰 행사를 무사히 행복하게 지낸 우리는 설악산에 여행을 갔습니다. 등산 후에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파는 파전과 막걸리를 사서 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편하게 마시면서 시원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 곳의 포장마차에서는 포크가 하나도 없어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젓가락으로 막걸리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전을 서툴고 느리지만 ‘열심히’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젓가락을 사용하시고 마치 뭔가 새로운 감각을 찾으신 듯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한국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면 젓가락이 미끄럽고 가늘어서 손에 쥐고 있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일 식사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면 소화가 잘 되고 영양소가 잘 흡수되어 더욱 건강하게 되며 또한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예쁜 의식으로 변화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한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쇠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합니다. 쇠로된 젓가락은 가늘고 무거워서 나무로 만든 젓가락보다 더욱 많은 주의를 요구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매일매일 이렇게 건강하고 경건한 습관인, 젓가락을 사용해 식사를 하는 것에 익숙해서 그러한 문화 습관이 좋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잘 먹어요.’
라는 한국 유행가도 젓가락질 문화를 구세대의 유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많은 어른들은 젓가락질을 아주 중요한 문화로 인식하고 올바른 방식의 젓가락질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하게도 젓가락질을 할 줄 모르는 러시아 아버지로부터 젓가락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이 순간부터 저는 점점, 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제 어린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내 조국 러시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컸던 탓인지 귀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을, 이미 벌써 일 년 동안 한국에서 지냈지만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 지혜롭고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도 보수적이라고 믿었던 제 아버지께서 저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깨달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 가족여행이 저 스스로가 건강해지고 성숙해 지기 위한 행사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행사의 다음 코스는 속초 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때 동해에 놀러온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그 날은 일반적인 맑은 가을 날 중 하루였을 텐데 저는 아버지께서 나를 깨우쳐 주셨던 것을 새롭게 생각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신선하고 바다를 품은 건강한 공기를 마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한국은 거의 모든 방향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바다까지 가려면 몇 천 킬로미터를 지나야 하거나 다른 나라로 가야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바다가 있는 곳에 잠시 지내면서 바다의 공기를 마시면 앞으로 일 년 동안은 반드시 감기나 알레르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러시아 사람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돈을 아끼지 않고 바다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건강한 공기가 있는 바다가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나는 천천히 깊은 숨을 쉬고 매 한 모금 한 모금마다 즐기는 기분으로 지나가는 한국 사람들을 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이 공기를 매일 마시지만 자기가 사는 나라가 얼마나 건강에 좋은 나라인지 얼마나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만큼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찜질방에서 사우나도 하시고, 강화도 여행도 하시고 이제 러시아로 돌아가실 날이 되었습니다. 강화도에서 인삼, 인삼술, 인삼 가루, 인삼음료, 인삼캔디, 인삼 화장품 같은 여러 상품도 사시고, 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 러시아까지 한국 특유의 공기와 한국의 신선한 바다 바람, 젓가락으로 먹는 습관, 궁합에 맞는 한국의 여러 가지 음식들, 찜질방의 더운 열기, 한국 논에서 자라는 쌀도 갖고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러시아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과도 한국에서 받은 ‘건강’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곤 저에게 내 딸이 이런 건강한 나라에서 살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안심이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셔도 못 빼시던 몸무게를 2kg이나 빼시고 안색도 좋아지시고, 당시 혈압도 괜찮으셔서 젊어지신 것 같았습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깨끗해지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는 제가 사는 곳에 잠시 들르셔서 바쁘게 생활하며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던 저에게 많은 것을 밝혀주시고, 많은 것을 인식하고 깨닫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가 사는 이곳과 이 순간을 귀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도 바쁜 생활와중에도 잠시 멈춰 서서 저처럼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얼마나 맛있는 공기이고, 이 얼마나 흥미롭고 보람된 삶이며, 이 얼마나 소중한 젓가락질이고,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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