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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네팔에서 나의 꿈 한국에서 키우다”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8 (목) 00:14 조회 : 3368

 “네팔에서 나의 꿈 한국에서 키우다”  

  
 카다얏 타라만


제 가족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저는 네팔에서부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8살일 때 돌아가시고, 제 어머니께서 저를 보살펴주셨습니다. 제가 학교에 있었을 때, 저는 학교가 너무 멀어서 중학생 때까지 2시간동안 통학을 하였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저를 잘 키우고 공부시켜주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집에서 소를 키워서 우유를 파시기도 하시고 다른 사람의 농장에 가서 일을 하셨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저를 열심히 공부시켜서 제 가족도 도와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좋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공부를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서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께서는 공부를 시키기 보다는 다른 일을 시켰는데 제 어머님께서는 제가 학업에 보다 열심히 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 가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제 마을에서는 중학교만 있고 고등학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집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마을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커서 성공하면 제 마을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때 저는 제 집안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말도 조금 적은 편이였고 자신감도 적었는데 반해 다른 아이들은 집안이 좋아서 좀더 여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교수님께서 저한테 한국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 있는지 저에게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에 와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제가 한국에 와서 이렇게 많은 꿈을 키우고 나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한국에 와서 배우고 얻은 경험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2010년 8월 27일, 1년간의 한국 정부 초청학생으로서의 한국어 어학연수와 2년간의 약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한국에 오기 전에 저의 네팔친구들, 선배들과 교수님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 가지 마, 한국에서 대학원 다니는 학생들은 별로야. 너는 똑똑한 학생인데 왜 한국에 공부하러 가? 한국은 공부하러 가는 나라가 아니라, 일하러 가는 나라야. 타라만, 너는 1년 간 허송세월을 보낼거야!”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어머니는 항상 “타라만,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거야.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믿지는 마. 한국정부가 너를 초대했잖아? 그러니까 한국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와.”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음식이 제 입맛에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장벽이 너무 커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에도 많은 지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팔에 다시 돌아갈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생활을 하면서 저와 같이 유학 온 인도, 네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배운 한국어를 통해서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지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문화가정에 네팔어와 네팔 문화 등에 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독도 알리미캠패인에 참여하였고 제13회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저는 네팔에서 24년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네팔에서 관광지를 많이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온 뒤 1년간 수많은 관광지에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많은 것을 본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네팔에서 16년동안 정식교육을 받을 때에는 올바른 예의와 성실함, 그리고 솔직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한국에 온 뒤 한국시스템과 사람들을 통해서 직접 보고 그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발전된 국가, 문명화된 사회가 무엇인지, 현대인들이 과학 덕분에 얼마나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네팔에서는 듣기만 했으나, 한국에 들어와서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은 강렬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는 믿음을 항상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해 준 가장 큰 힘이라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 태극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국기가 걸려진 것, 또한 외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환영하는 것에 감동 받았습니다. 각 나라에서 온 한국 정부 초청학생의(KGSP)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에서 네팔 전통 옷을 입고 있을 때, KGSP / NIIED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나마스태’ 라고 저에게 인사하면서 멋있다고 말씀하셨을 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대구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개막식에서 특별한 모양(비 사변형 국기)의 네팔국기를 대표자로서 들고 있었던 순간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제7회 대한 약학회 약품화학분과 학회 워크샵에 가서 한국의 유명한 교수님들과 연구원들의 수업을 듣거나 사진을 찍고, 약물 발견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식사할 때에는 “나도 저들처럼 더 잘 할 수 있을거야. 나도 나중에 유명한 연구원이 될 거야!” 라고 다짐했습니다.
특히 그날 저녁에는 매우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탤런트 쇼’에서 영남 대학교 대표로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부를 때 교수님들이 “우와 ! 잘한다”고 말씀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네팔전통노래를 부를 때 처음 5분 정도는 다들 박수를 치시다가 갑자기 한 교수님께서 “OK !, 'STOP'... 'STOP'...”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고 황당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와서 선배들에게 왜 그 교수님이 그러셨는지 물어봤더니, 저의 네팔노래는 너무 길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그러한 상황이 부끄러웠지만 좋은 경험이였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한국사람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서 더욱 즐거웠습니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랑 대구 영화 촬영장에 가서 단편영화를 찍을 때,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들, 선생님과 같이 닭갈비를 안주로 소맥으로 건배를 외치며 한 잔 했던 기억, 노래방에 가서 재미있는 네팔 춤으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추억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추후 기회가 된다면 또 하고 싶습니다.

우리 대학을 방문하러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서울의 동대문 시장, 국립중앙박물관, 인사동을 구경하고 N서울타워 꼭대기에 간 후, 밤에는 찜질방에서 잔 것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한국 선생님의 결혼식에 가서 음식을 너무 배불리 먹어 1시간동안 움직이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한국어교육원에서 공부했던 시절, 선생님이 노력하셨던 인생 스토리와 선생님만의 재미있는 교육방식을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하였고, 그 내용을 네팔 책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문화 선생님 지원자로서 초등학생들에게 네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불구가 된 아이의 집에 가서 도와주었을 때, 저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가끔 주말에는 대학교 축구장 가서 축구도 하고, 여자친구랑 배드민턴을 치거나 헬스장에서 한국 친구들과 친하게 운동한 것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한국어교육원을 다니던 1년 동안 공식적인 대학원생은 아니었지만, 한국어 수업 외에 틈 날 때 마다 연구실에 들러서 선배들이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교수님과 같이 고기집에서 삼겹살과 맥주를 먹으며 친해질 기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일상생활을 하던 중 2011년 여름에 한국에서 ‘독도 알리미’ 라는 캠페인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독도 알리미 캠페인에 해외 진행요원으로서 한국에 온 유학생 100명을 뽑았습니다. 저는 영남대학교에서 유일하게 선정되어 독도행 배를 타고 99명의 친구들과 3일간 울릉도, 독도 자연생태탐방을 통해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독도에 관하여 왜 한국이 독도를 중요시 여기고 독도가 무슨 섬인지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도 알리미 캠페인 두 번째 날 장기자랑에서 한국어교육원 친구와 사랑에 빠진 시를 낭독한 후 받았던 울릉도 오징어 10마리를 친구들과 맥주와 함께 먹었던 순간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자연생태탐방이 끝난 후, ‘독도 사랑합니다’ 라는 시를 한국어로 쓴 것에 대해 포항공과대학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칭찬하시며 자켓을 선물해 주셨고 “타라만, 한국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것들을 네팔에 가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 줄뿐만 아니라 네팔의 발전에 기여해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금도 항상 생각하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독도에 대한 제 생각을 제가 쓴 시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독도 사랑합니다
타라만 카다얏
한국의 울릉도 한국의 독도
  당신들을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독도 아름다운 독도
       이제 당신을 만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독도 당신은 나의 마음을 알았고
     당신은 나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독도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왔고
  당신은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사랑했습니다
                      누구도 좋아할 수 있게 당신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의 마음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려줄 겁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독도 당신이 더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독도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너는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한국의 독도가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4년간의 한국어교육원 생활에서 배운 것과 이제까지 경험했던 것들이 앞으로 저를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저는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처음 제가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말렸던 친구들에게 시간 낭비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정말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지금 한국행을 고민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목에서처럼 저는 네팔에서 꾸었던 나의 꿈을 한국에서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제 꿈은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가르쳐주고 그러한 학생들이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제가 그러한 역량을 갖추기 위하여 온라인을 통해서 네팔사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한국의 발전을 이끈 새마을운동처럼  제가 훌륭한 리더가 되어 네팔의 발전을 이끌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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