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12,501건, 최근 675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2015년 수상작]

아버님의 손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8 (목) 00:09 조회 : 3011

【아버님의 손】

모리 사나에

 

“할아버지 왼손은 왜 단단해?”
 “할아버지 왼손은 왜 안 움직여?”
  5살 아들이 말했다.
  나에게는 한국 사람인 남편과 아들이 있다. 일본에서 살다가 작년 3월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처음 아들은 한국말을 못해서 울면서 어린이집에 갔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의 열정적인 지도, 그리고 예쁘고 착한 친구들 덕분에 순식간에 한국말이 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한국말로 이야기가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아들이 할아버지에게 물은 것이 바로
 “할아버지 왼손은 왜 단단해?”
 “할아버지 왼손은 왜 안 움직여?” 이었다.
아무것이나 순수하게 알고 싶어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는 나이가 된 아들이 할아버지에게 물어본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이 아파.”
 “할아버지, 손 아야했어?”
 “그래.”
  시아버님께서는 왼손이 의수이시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 때 총탄으로 왼팔을 잃으셨다. 스무 살 때이었다.
  아버님께서 한 장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셨다. 베트남 전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의 청년은 큰 나무 밑에서 용감하게 서있었다. 한쪽 손을 총탄으로 잃기 전의 사진이었다. 거기에는 아버님의 양손이 확실히 있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한쪽 손을 잃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 용감한 청년 모습을 보니 나는 가슴이 아팠다. 앨범에는 같은 사진이 몇 장이나 있었다. 그 외에도 양손이 있는 아버님의 사진이 몇 장이나 나왔다. 당초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양손이 있는 아버님의 사진을 많이 주셨단다. 그 전우 분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내 가슴도 뜨거워졌다.  

  전지에서 한국에 돌아오신 아버님께서는 교사가 되고 교단에 서셨다. 9명 형제 장남이신 아버님께서는 동생이 많다. 그 동생 중 한 분이 학생 때 형인 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셨단다. 그 작은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여름 더운 날에도 의수 기구를 달아서 긴 소매 셔츠를 입고 땀투성이가  되면서도 열심히 가르쳐 주는 형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뻔했었다. 보기 힘들었다.”고.
  작은아버지께서는 직무를 완수하는 선생님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형을 걱정했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아버님 친척들을 보는 기회가 늘고 나는 여려 경험담이나 옛날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일본에서 산다면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한국의 남편 가족이나 친척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역사를 알 수 있게 됐다. 아버님 손 역사도 그렇다.

  내가 아버님을 만난 것은 결혼 전 처음으로 인사하러 한국에 왔을 때이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공항에서 나를 마중해 주셨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잘 왔어. 기념으로 사진 찍자!” (아마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공항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전혀 못했다. 긴장으로 굳어진 나는 사진을 찍는 순간에 단숨에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환영해 주신 것이 너무나 기뻤다. 한국말을 못하는 나에게 아버님께서는 종이에다가 한자를 많이 써 주시면서 가르쳐 주셨다. 그런 다정한 아버님을 아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좋아하는 아버님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는 그때부터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조금씩이지만 한국말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기뻤다.

  한국에 와서는 주말이나 명절 때 시댁에 놀러 가거나 부모님께서 놀러 오시거나 하면서 만난다. 아들은 할아버지를 아주 좋아해서 언제나 머리 위에 올라타고 무릎 위에 앉아서 논다. 아버님께서는 손자를 아주 예뻐해 주신다. 그 모습을 보면 내 남편이 어렸을 때도 이렇게 놀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니 흐뭇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자기 예쁜 아이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서 놀아 주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그때 아버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눈물이 차오른다.

  남편은 손재주가 있어서 못하는 것이 없다. 무엇인가 만들기와 고장 난 것을 수리하기를 참으로 요령 있게 잘 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손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도와서, 남편이 많은 것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버님께서는 스스로 집도 지으셨다. 모두 자기들 손으로 지었다고 들었다. 그때 아버님과 남편은 함께 협력하면서 지었단다. 몸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어떤 일이든 과감하게 도전하시는 아버님, 근육이 불거진 오른 팔로 모든 것을 요령 있게 해내시는 아버님. 그런 아버지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도와 드려온 남편. 남편은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을까. 고난을 극복하고,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언제든 열심히 하려는 강한 마음, 불편한 분들에게 배려하는 마음과 서로 도우면서 살자는 따뜻한 마음. 그 배움은 내 상상보다 훨씬 큰 것일 것이다. 내 아들도 할아버지,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한국에 와서 시부모님과 식사할 기회가 늘었다. 함께 식사할 때 어머님께서는 우선 아버님께서 드시기 쉽게 아버님 오른손 셔츠 소매를 걷어 주시고, 상추에 고기와 김치와 마늘을 싸서 오른손에 주신다. 식사가 끝나고 과일을 먹을 때도 어머님께서는 당연한 일인 듯이 아버님께서 드시기 쉽게 신경을 써 주신다. 나는 그런 어머님 모습을 보면서 아버님을 이렇게 도와 드리면 좋구나, 이런 배려가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그것을 알고부터 함께 식사 할 때는 나도 고기를 상추에 싸서 아버님께 드리게 됐다. 지금 5살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똑같이 배우고 똑같이 하게 될 것이다. 남편, 나, 아들 우리는 다 아버님 어머님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배울 것이다.

  또한 아버님의 손을 빼앗은 전쟁이 밉다. 전쟁을 생각할 때 전쟁으로 인해서 상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전쟁으로 돌아가신 분, 부상을 입은 분들은 전쟁이 없었으면 이 세상을 떠날 일도 없었고 상할 일도 없었을 터이다. 자신 인생을, 가족 인생을 바꾸고 마는 전쟁이란 정말로 잘못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많은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상해왔다. 남녀, 어른과 아이, 구별 없다. 태어난 새로운 목숨조차도 희생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모두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전쟁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아버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전쟁이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나 민족 간의 다툼으로 인해서 지금도 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슬프다. 세계에서 전쟁이 없어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상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계 모든 사람이 가족과 행복하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에 와서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부모님, 가족, 친척, 주변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딸 두면, 아들 한명을 훌륭하게 길러 내신 아버님. 양손 이상의 일을 해온 아버님의 오른손. 나는 그 오른손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아버님과 그 소중한 오른손에게 진심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양손 이상의 고생을 해온 그 손에게 이제부터 많은 행복을 잡게 해 드리고 싶다. 앞으로 우리 아들이 할아버지 손을 씻어 드리고 내가 상추에 맛있는 것을 싸서 드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 나, 아들 우리 가족 모두가 아버님의 손을 따뜻하게 해드리고 아낄 것이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