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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현모양처가 꿈인 앰의 행복한 한국 생활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8 (목) 00:08 조회 : 3198

현모양처가 꿈인 앰의 행복한 한국 생활   


NGUYEN THI PHUONG EM

 

 제 이름은 ‘응웬티프엉앰’입니다. 제 이름이 너무 길어 사람들은 ‘앰 새댁’이라고 부릅니다. 베트남의 작은 마을에서 야채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장사도 돕고 옷 수선 일도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2012년 08월 09일 현재의 남편을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난 후 7개월 후인 2013년 3월 2일에 한국에 처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국제결혼을 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마음과 눈빛이 따뜻한 모습에 반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남에서 한국어가 전혀 안 되니까 남편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껀터’에서 30~40km 떨어진 작은 마을인 저희 집에서 껀터를 걸쳐 호치민까지 5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왔다갔다하면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호치민에는 통역을 하는 언니들이 많아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힘든 생각보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응웬티프엉앰입니다”하고 한국어로 말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기초적인 한국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낯설은 한국인과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국어와 문화 풍습 등을 센터나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하나하나 배우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습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국제결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좋았지만 부모님을 떠나 한국이라는 나라로 시집 올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한국으로 시집을 간 친척동생들에게서 한국 결혼생활의 좋은 점과 높은 교육문화, 발달된 의료시설 등 베트남과 다른 편리한 생활 문화에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듣고, 좋은 점들은 많이 들으니까 한국인과 결혼을 하기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연이 닿아 현재 남편을 만나서 호치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으로 입국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면서 열심히 한국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어능력시험도 합격하고 부모님과의 언어소통문제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1년 전만 해도 부모님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습니다. 집안 일이 취미라서 한국에 오기 전에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잘 살아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익숙하지 않는 한국문화, 그리고 이해 못 하는 한국어, 시부모님과의 어려운 의사소통으로 인해 베트남 집에 계시는 부모님의 생각이 자주 나서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힘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경상북도 김천시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고령의 분들이 많이 사십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을 찾기가 힘들어서 한국드라마에서 보던 풍경과 한국 사람의 생김새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표준어로 한국어를 배웠는데 여기에서는 사투리로 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혹시 ‘저분 가져오니라’가 무슨 말인지 아세요? ‘젓가락 가져오너라’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1달이 걸렸습니다.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한 경우도 많습니다. 온지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를 도와 밥상을 차리게 되었는데, 숟가락과 젓가락을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아야 되는데 숟가락을 엎어 놓고 젓가락도 짝이 안 맞는 것을 놓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친절하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
 베트남은 더운 지역이라서 젊은 여자들은 끈나시 옷을 자주 입고, 발가락을 끼우는 샌들을 많이 신고 다닙니다. 한국의 여름도 많이 더워 베트남에서 가져온 끈나시를 입고 샌들을 신고 외출을 하려고 하다가 동네 어른들께서 ‘젖통 다 보이겠다이, 에구이 동네 마실나가나’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 그 말이 뭐냐고 여쭤보고 가슴이 다 보일 정도로 옷이 야해서 어른들이 좋게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저 때문에 시부모님께서 다른 어른들께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봐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더워도 팔이 있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고 외출을 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텃밭을 가꿔 집에서 필요한 야채는 거기에서 가져와서 먹는데 하루는 어머니를 도와 텃밭에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발가락 샌들을 신고 청바지를 입고 나온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시더니 그렇게 입고 일하면 불편하고 신발은 발가락을 물어 다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일복(사람들은 몸빼바지라고 부릅니다)바지를 주시면서 이것을 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리부분에 고무줄이 있어 잘 늘어날 것 같고 화려한 꽃무늬가 있었지만 입어보니까 싫지 않았습니다. 편안해서 이제는 집안일을 할 때도 어머니께 빌려 입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더워도 이제 외출할 때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외출합니다.
 한국 문화 중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아침 식사’였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아침을 안 먹는 사람들도 많고 먹는다고 하더라도 죽이나 국수와 같은 간단하게 먹는 문화입니다. 대신 점심과 저녁은 잘 차려서 먹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당연하게 라면을 끓여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잘 화를 내시지 않는데 남편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시더니 ‘에고, 그거 먹고 힘이 나겠나?’하시면서 언짢아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하루종일 그게 마음에 걸려 퇴근한 남편에게 물었고, 한국은 아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침을 잘 먹어야 ‘밥심’으로 하루종일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꼭 하얀 쌀밥이나 잡곡밥을 새로 지어 남편에게 대접합니다.
 그런데 아직 적응이 조금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시차가 베트남보다 한국이 2시간 더 빠른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아직 조금 힘듭니다. 언제가 되면 어머니처럼 알람시계의 도움없이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문화가 다른 부분은 하나하나 배워 나갔고, 언어도 2년이 지나니까 언어 소통에는 별문제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져서 비록 한국 생활이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10년 이상 산 사람처럼 한국 아줌마가 다 되었습니다.
 어머니께 나물 무치는 방법,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등을 끓이는 방법도 배웠고, 이제는 어머니께서 도와주시면 된장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음식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비가 오면 저도 모르게 파전이 먹고 싶어 “어머니, 파전 드실래요?” 여쭤보고 어머니랑 같이 파전과 신 김치로 부친 김치전을 먹는데 저는 술이 약해서 음료수를 마시고
비오는 날에는 ‘파전에 동동주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동동주를 드십니다. 저희는 궁합이 잘 맞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간이 맞이 않거나 재료가 부족하면 어머니께 간 좀 맞춰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친절하게 뭐가 부족한지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서툰 솜씨지만 설날 때 어머니께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 제가 한국에 와서 2년이 됐는데 저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세요.’하고 썼는데 어머니께서는 ‘잘 썼네’라고 말씀하시면서 표현은 잘 안 하셨지만 좋아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어머님 덕분에 사투리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한 단어라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머님께서 그 뜻을 알려주셔서 이제는 사투리를 조금씩 이해가 되어서 가끔씩 남편에게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여보, 오늘도 힘썼어요”하고 말합니다. ‘힘썼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고생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으면서 쉽게 설명해 주려고 하는 남편과 실수를 해도 친절하게 천천히 가르쳐 주시는 시부모님이 계셔서 제가 원하던 ‘현모양처’가 그렇게 멀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하루 빨리 2세를 낳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남편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제 마음과 다르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산신할머니께서 제 꿈에 나와 저에게 아기보따리를 주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행복하지만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친절하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예뻐해주시는 시부모님이랑 남편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빠른 시일 내 애기를 가져 시부모님에게 손자를 보여드리는 것이 저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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