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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7 (수) 23:42 조회 : 3182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행자부-002
 구지혜 

 나는 베트남에서 가난한 농가의 세 자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장녀로서 언제나 동생들에 대한 배려와 부모님께 효심어린 마음과 자세로 살아왔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중단하고 일을 해서 엄마를 돕고 동생들을 돌봐줘야 했다. 이러한 나에게 한국남자에게 시집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입소문에 한국남자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바로 그때 한국남자와 선을 보자고 하는 이웃 언니를 따라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재혼하는 분이였고, 아이가 셋에 나이차이도 많이 나서 망설였지만 중매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아내를 예뻐하고 더 사랑해준다”며 남편의 장점에 대하여 얘기했다. 그런데 왠지 남편이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라고 느껴져 나는 남편과 결혼을 결정했다. 엄마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완강하게 반대 했지만 이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결국은 엄마가 울면서 허락을 해주었다. 아버지 없이 맏딸인 나를 의지하며 살던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꼭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결심을 하며 한국행 수속을 밟았다.
 2003년 크리스마스 날 한국에 오자마자 제일 낯설고 힘들었던 것이 바로 겨울이라는 날씨였다. 베트남은 항상 여름이라서 추위와 눈을 본 적 없었는데 집안초자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옷 가게 가서 그 많은 잠바 중에 제일 두꺼운 것을 사줬다. 그 해 겨울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아주 추웠던 겨울로 기억된다. 지금생각해보니 추위도 추위지만 물설고 낯선 땅에서 텅 빈 마음을 홀로 다스리며 한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더 춥고 떨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의 첫 느낌대로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적응하는데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하며 이해해 주었다. 남편 역시 순탄치 않았던 가정생활로 많은 상처를 입고 나와 결혼했는데 나는 남편에게 해주는 것도 없이 나로 인하여 자꾸 신경을 쓰게 해서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는 20살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남편의 아내역할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나이인 딸과 두 아들의 엄마 역할까지 해야 할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남편과 결혼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는 예측했지만 내가 조금 노력만 하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옆에서 힘을 보태주면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말이라도 통하면 아이들하고 얘기도 하고, 요리라도 잘 하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가족들에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베트남에서 한 달 정도 한국어를 배웠지만 기초밖에 몰랐고, 책으로만 공부해서 실제와 많이 달라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입을 떼기도 두려웠다. 나는 한국에서 벙어리일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는 귀머거리였다.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음식은 입에 안 맞아서 배는 고파 답답한데다 날씨까지 추워서 밖에도 나갈 수 없어 여러 가지로 너무나 힘들었다. 육체적은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참기가 더 어려웠다. 주변에서 내가 나이도 어리고 한국말 못하는 외국인이라 많은 무시를 당했다. 남편과 같이 있을 때에는 괜찮은데 남편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내가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을 알고 내 앞에서 대놓고 젊은 아가씨가 돈 때문에 시집 왔다며 1년도 못 살 거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팠지만 모르는 척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속상했지만 그러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못 한 것은 우리의 결혼을 보면 누구나 다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을 안 했지만 아이들의 문제로 정말 고민이 많았다. 큰 딸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고 둘째 아들은 나보고‘아가씨’라고 불렀으며, 다행히 셋째 아들이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큰 반응이 없었다.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다가 잘 안 됐을 때 몇 번은 포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결혼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결정했는지 잘 알기에 울고 쓰러지다가 또 다시 일어섰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남편과 행복하게 살려면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진심을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 믿고 어렵다 하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정성을 아이들에게 쏟았다. 난 그때 더 이상 약한 여자가 아닌 한 사람의 아내, 세 아이의 엄가가 되었기에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려면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처음 왔을 때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없었으며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곳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초등학교 1학년 교재를 구해서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셋째 아들에게 도움을 받고 나는 아들의 엄마가 아니라 아들의 학생이 되었다. 집안일을 서둘러 끝내고 최우선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두 시간정도 하고나서 쉬는 시간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듣기를 연습하고, 외국영화의 자막을 보고 어휘와 문장표현을 공부했다. 모르는 어휘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서 공부하고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노트와 볼펜을 갖고 다니다가 거리에 이정표나 간판을 보고 적어와 남편이나 아들한테 물어서 공부를 했다. 한글로 일기를 쓰는 것이 한국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것이라고 알게 돼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휘력이 부족해서 한 두 문장밖에 못 썼으나 포기하지 않고 몇 개월을 사전하고 씨름하며 노력한 결과 많이 나아졌다. 글을 알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주고 싶어서 요리책을 사서 배웠고,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였지만 나의 요리솜씨도 점점 좋아졌다.
 나의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려 특별히 나와 동갑내기인 큰 딸하고 급속히 친해졌다. 요리책을 보며 요리도 같이 배우고 화장품 고르는 것과 예쁘게 화장하는 법도 딸이 가르쳐 주었다. 딸은‘딸의 결혼식 날’생각지도 않았던 친정엄마 자리에 앉아달라고 했다. 사돈 식구들 앞에 나이어린 외국인을 엄마라고 앉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엄마라고 인정해 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딸이 결혼하고 첫 어버이날 나에게 맛있는 거 사드시라고 20만원을 송금해주었다. 딸의 성의에 눈물 나도록 행복했다. 그리고 둘째 아들도 나를 인정해주며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군대에 갔을 때 나는 몇 번 면회 갔었고 서로 친구처럼 편지를 주고받았다. 셋째 아들은 아직 어려서 가금씩 떼를 쓰고 힘들게 했지만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잘 따라주었다.
 2005년에 나는 딸을 낳았다. 아이들 모두 다 동생을 예뻐하고 돌봐주어 어린 엄마인 나를 힘들지 않게 많이 도와줬다.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은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엄마께 보여주고 싶다고 친정엄마를 초청해서 한국에 모셔왔다. 기쁨과 감동이 가득해서 남편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엄마도 더 이상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베트남에 가실 때 딸한테 잘 해줘서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다. 가족들이 모두 다 건강하고 화목해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2010년,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때 나는 동해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통번역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대학 입학도 하였다.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가고 있는 중에 2012년 나는 두 번째 임신하였다. 소식 듣고 나와 가족이 혼란과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번 임신이 우리의 계획 밖이었다. 남편은 나이가 있고 자식도 넷이나 있는데 하나 더 낳기 되면 우리가 힘들어질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낳기로 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이제 공부와 자녀양육에만 힘을 쏟겠다고 결심하였다. 큰 딸은 시집갔고 아들 둘도 분가해서 직장을 다니니 집에 세 사람밖에 없고 조용했었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리마음을 설레게 하고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 모두 다 아이를 잘 낳았다고 하며 축하해주었다.
 나는 이제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낳은 아이도 있고 키운 아이도 있지만 모두 다 똑같은 마음으로 잘 해주고 사랑한다. 난 지금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엄마이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 축복을 보답하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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