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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리며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7 (수) 23:31 조회 : 3080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리며   

                  행자부-006

박은정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안녕하세요 . 저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박은정입니다.
나이는 34살이고 한국에 온 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7남매 중 장녀입니다. 필리핀에서 집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후 약국에서도 근무를 했습니다.
 2003년 3월 30일 필리핀에 있을 당시 이모님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때 한국이라는 나라를 드라마로 통해 알게 되면서 한국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몸짓을 해 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필리핀에서 2003년 4월 21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희망을 가슴에 안고 2003년 5월 한국에 왔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남편을 보자 눈물이 나왔습니다. 갑자기 필리핀에 계시는 부모님, 동생들 생각이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어머니 혼자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저마저 한국에 나와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가톨릭여성회관 한글 기초반에 등록하여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모두 친절하셔서 저를 많이 도와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국 생활이 차츰차츰 익숙해질 무렵 친정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동생이 수술을 해야 하니 돈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남편은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저희들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 돈을 보내주지 못해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제가 한국에 올 때는 정말 큰 꿈을 안고 왔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아 속이 상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울면서 보냈습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저를 도와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남편은 매우 미안해  했습니다. 시댁에는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고 누님 한 분만 계시는데 누님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어렵게 생활하시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엄두도 못 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녔지만 마음먹은 대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 소개로 저는 부품을 조립하는 회사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조금이나마 고향에 돈을 부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차츰 한국 생활에 익숙해질 때 남편이 저에게 왜 임신이 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 저는 남편과 산부인과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문제가 없는데 저에게 문제가 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저 자신에게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당시에 의사 선생님께서 불임 부부를 위해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시술을 받는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술을 받으면서 가정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직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저의 고통은 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남편이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몇 번이고 했지만 계속 실패를 했습니다. 몇 번이고 좌절을 했지만 남편은 대화도 많이 하고 이곳저곳을 데려다 주면서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제 마음도 안정을 가지게 되었고 다시 시험관 시술에 도전을 했습니다. 저의 간절함과 남편의 기다림 끝에 세 쌍둥이가 수정이 되었습니다. 임신에 성공은 했지만 임신 당뇨에 혈압까지 높아져서 계속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세 쌍둥이 중 두 명은 위험하니까 한 명만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남편과 의논한 결과 한 명만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건강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남편도 기뻐하고 저도 제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2개월째 또 한 번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혈소판에 이상이 있어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건강하게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원어민 강사가 될 수 있는 교육을 경남대학교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는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3개월 과정의 교육이 끝나고 드디어 2007년 10월 04일 산호동 지역의 아동센터에서 영어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의 고향에는 동생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항상 ‘동생들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가르쳤습니다.  아이들과 1주일에 두 번 만났는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공부도 안하고 떠들고 놀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방법을 많이 찾았습니다. 차츰 아이들과도 정이 들고 아이들이 한 마디씩 영어로 말을 하면 정말 기본이 좋았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 아동센터에는 나가지 않지만 외로운 아이들이라 그런지 지금도 주말에는 저희 집에 놀러 오기도 합니다. 다들 엄마나 아빠가 없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놀아주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에 처음 와서 어떻게 해야할지 잘모르고 있을  때 마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파견하는 양육 선생님의 도움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과 간식 만드는 방법, 그리고 한글 공부도 배웠습니다. 병원도 같이 가주시고 동사무소 일이며 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시곤 하였습니다. 양육 선생님을 보면서 “아, 나도 양육 선생님처럼 사랑과 따뜻한 관심으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민자들을 돌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하는 행사에는 꼭 참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때 제 바람은 마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지도자 선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이민자들의 대변인이 되어 그들을 도와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게끔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제는 시낭송 대회에 나가서 특별상을 받았는데, 거기에서 시낭독을 한 것을 한 부분 적어 보겠습니다.

 “부재”
어머님 안 계신 고향은 텅 비었다.
아무 곳도 마음을 둘 데 없는 빈 공간 천지에
곤궁한 내 꼴 웃음도 피눈물이다.

이 시는 너무도 제 마음과 똑같았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2009년 필리핀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났고 벌써 4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올해는 꼭 고향에 가고 싶었는데 형편이 되지 않아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내년으로 미뤄야겠습니다.
 2011년 11월부터 창원출입국관리사무소의 멘토, 멘테 봉사단협의회에 가입하여 필리핀 결혼이민자들의 멘토로 매일 출입국에 가서 열심히 상담하고 한국생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한국요리도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기도 하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지금도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매일 출입국으로 나간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기도 하였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2월 14일 경남이주민센터에서 필리핀이주자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필리핀 외국인근로자 대표를 맡아 필리핀 외국인근로자들에게 한국생활에 대한 필요한 정보와 통역을 하였습니다.  또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의 임기로 창원지방법원에서 통역봉사협의회에 가입하여 필리핀 이주여성과 근로자를 위하여 봉사활동 하고 있습니다. 2012년 8월1일부터 창원외국인력지원센터에서 필리핀 통역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업무는 외국인근로자와 이주여성들을 위하여 통역과 애로사항 및 한국생활에 대한 고충 상담하고, 취업기간만료가 되어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근로자들에게 필리핀에 있는 한국기업과 연계하여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주여성으로 한국에 와서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기도 한데 저와 같은 다문화가족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저는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근로자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비만 계속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태양이 비치는 맑은 날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꼭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저의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 생일에는 잊지 않고 꼭 꽃다발을 선물해줍니다. 항상 저를 믿어 주고 격려해 주는 우리 남편,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들,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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