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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상작]

나의 꿈과 열정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5-05-27 (수) 23:28 조회 : 3099

나의 꿈과 열정 

                    행자부-014

LE THI HUYNH LOAN
김민경

 

 저는 베트남에서 온 김민경 입니다. 한국에 온지 7년 만에 남편과 헤어지고 벌써 2년째 홀로 양육비 없이 10살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제 딸의 이름은 연희입니다. 예쁘고 명랑한 아이인 연희는 아빠를 떠나 저랑 둘이 생활을 시작했을 때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얼마 전 연희가 학교 가는 길에 돌에 걸려 넘어져 발등에 뼈가 금이 가는 사고가 있었어요. 한 달 정도 기브스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 저는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치료비를 감당할 돈도 제겐 부족했고, 당시 주야간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제 때 연희를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때 전화 한통이 왔어요. 같은 반 친구 은경이 엄마라는 분이셨어요. 연희하고 은경이는 같은 반 친구라며 연희가 다리 다쳤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은경이 엄마는 휠체어도 빌려다 주고, 학교도 등하교 시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결혼해서 한국인 남편에게 상처는 받았지만 제게는 정말 고마운 한국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서 홀로 서는데 그 분들 도움이 없었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하고 좌절해서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인데 3년 동안 제 딸 연희의 장학금을 10만원씩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장학금으로 연희가 좋아하는 영어 학원도 친구들 못지않게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연희가 재밌어 하고 좋아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제게 큰 기쁨입니다. 다 도움 주시는 분들 덕에 제가 이런 기쁨을 느끼고 살고 있음에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어, 한국문화를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지금까지 항상 저 옆에 계시고 믿어주시는 다문화지원센터 선생님 덕분에 오늘 저의 모습은 만족합니다. 알게 모르게 제 주변이 고마운 분들이 계셔서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 이후 아이 때문에 주야간 일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주간만 하는 소고기 식품회사 다니게 되었습니다. 8시간 근무이라서 돈은 안 되었지만 시간여유는 많았습니다. 먼저 다녔던 회사에서 그만두기 3개월 전에 새끼손가락 힘줄이 잘라져 치료 중이었던 저는 하루 종일 칼을 잡고 소고기를 부위별로 칼질을 해야 해서 손가락 통증 때문에 밤마다 딸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래도 이 회사는 다른 직장보다 월급이 조금 많았기에 통증은 더 참으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2주일 지나니 통증은 느끼지만 참을만 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저는 문득 ‘평생 노동일을 하면 지금은 젊어서 견디겠지만 나이가 들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문화센터를 찾아가서 선생님께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담당선생님은 야간학교가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하셨고, 다행스럽게도 문화센터에서 검정고시 야간 봉사하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 선생님을 통해 수원에 있는 제일평생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딸 등교를 도와주고 전, 회사로 출근하고 일 마치면 바로 야간 학교로 갔습니다. 딸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리고 아동센터에서 저녁 먹고 집에 와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베트남 친정엄마도 홀로 네 자매 키우셔서 힘겹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위 언니와 저는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고등학생인 친구들이 교복 입고 학교 가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제일평생학교에서 저의 공부는 초등단계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공부하고, 돈 벌고 딸 돌보고 한 몸으로 벅차고 힘들었습니다.
  특히, 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화가 나서 때리고 나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고등학교 마치면 방송통신 대학교 다니니까 집에 일찍 온다. 엄마 말 잘 듣고 열심히 살자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니 엄마 같은 연령대 분들만 계셨습니다. 빠짐없이 매일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께 주위 이모님들께 여쭤보고 배웠습니다. 모두 친절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집에 가서 이해 안 되는 것은 사전 찾아보고 인터넷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드디어 2014년 4월에 초등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점수도 잘 나왔고 기뻤습니다. 힘든 시간도 많고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지만 이모 같은 분, 할머니 같은 분들이 다들 열심히 하는데 포기해선 안 된다며 이겨냈습니다. 기쁜 일이 또 생겼습니다. 합격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한국어 능력시험 고급과정이 ‘ 한국어 능력 시험 6급, 합격했습니다.’ 라고 문자로 연락이 왔습니다. 기뻤습니다. 기쁨이 커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드디어, 중학교 졸업시험을 공부해야 해서 매일 같이 회사에서 일하고, 학교와 집으로 반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변 이웃 분들은 힘찬 응원과 맛있는 음식을 주시면서 격려와 용기를 복 돋아 주셨습니다. 반찬과 김치도 얻어서 먹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쉬는 시간에 복습하고  회사 언니들께 이해가 안가면 물어보며 공부를 했습니다. 모두가 잘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열심히 한만큼 중학교 성적도 잘 나왔습니다. 최종 마지막 고등만 남았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뭐가 뭔지 모르게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노력을 하고, 머리 쓰면 쓸수록 좋아지나 봅니다. 한두 번 듣고, 또 들으니 재미있는 거예요. 한 겨울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학교 빠지지 않고 죽기까지 공부만 했습니다. 시험 한 달 전, 시험공부를 위해 4시간에서 5시간만 잤습니다. 그 날이 2015년 4월 12일이였습니다. 긴장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 첫 시간 국어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문장이 길고 긴장되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울고 싶었습니다. 그 때 제일학교 선생님들이 오셔서 괜찮다며  다음 과목 잘 보면 된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긴장을 풀고 다음시간 수학, 영어 시험을 봤습니다. 기대이상으로 시험을 잘 봤습니다. 점수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문제지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채점하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선생님과 식사 후에 집에 가서 컴퓨터로 점수를 확인하니 569/700이였습니다. 뛸 듯이 기뻐서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화 드리고 문자로 보냈습니다.
  이제 곧 대학에 들어갑니다. 2년 동안 주변에 있는 한국 분들의 친절한 도움과 배려, 그리고  응원이 용기와 힘이 되었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였습니다.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저는 대학에 꼭 가야 되고 딸도 훌륭하게 잘 키우고 싶습니다. 저처럼 결혼 이주민으로 낯선 시선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당하게 나의 나라, 제2의 조국 대한민국을 빛내는 똑똑한 여자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저 또한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재능으로 잘 지도하고 싶습니다. 아직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해야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도움 받은 것처럼 저보다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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