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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한 장의 벽돌이 되고 싶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56 조회 : 1182


한 장의 벽돌이 되고 싶다

 

영국시인 퍼시 비시 셸리는 시 “서풍에 부치는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다 할 수 있으랴?”
유난히도 매섭고 춥던 겨울이 어제 같은데 봄은 어느덧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다. 바야흐로 무르익어가는 봄을 만끽하면서 나는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길가의 벚꽃나무나 연록이 짙어가는 탐스런 풀들을 그저 스쳐지나가고 싶지 않다. 그윽한 꽃내음을 맡아보고 미풍에 흐느적거리는 풀들을 다듬으면서 괜히 설레고 이 봄이 반갑기 그지없다. 한국에 와서 여덟 번째로 맞이하는 봄이다.
처음 몇 년은 여러 가지 힘든 일에 부대끼면서 봄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생전 못해보던 일, 거기다가 한국은 모든 일이 절주가 상당히 빠르고 강도가 세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이러저러한 시련 속에 감사한 분들도 많이 만났다. 온지 얼마 안 되어 한 모텔에 일하러갔었는데 그중 뚱뚱한 젊은 사람이 나한테 일을 잘 가르쳐주는 척 하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이용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슬쩍 나한테 떠밀었다. 일하다가 비품이 모자라서 그 사람이 시킨 대로 지하에 내려가서 가져오려고 했는데 같이 일하시던 아주머니가 지하에서 윗 층으로 비품 옮기는 일은 그 사람의 몫이니까 그분한테 부탁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내가 그분한테 음료수가 없으니 한 박스 갖다 달라고 했는데 거기에서 앙심을 먹었는지 사장님이 갑자기 오시더니 “아줌마, 우리 직원이 그러는데 아줌마가 일을 잘 못하니까 내보내래요, 아줌마 일 그만두고 짐 싸요”하셨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같이 일하던 아주머니가 “이 언니가 일 잘 하는데 누가 못 한다 그래요 내보내지 마시고 저와 같이 일하게 해 주세요”하고 간청했고 나는 “저 이제 반나절도 일 못했어요, 저한테 적응 할 시간을 주셔야지 지켜보지도 않고 내보내면 어떡해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저 잘 할 수 있어요.” 하고 애원했다. 사장님은 “알았어요, 그럼 오후에 시간을 더 줄 테니 이제 잘 못하면 나가셔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그날오후 나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아주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오시더니 “아줌마 왜 일이 이렇게 빨라요?”하시면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 줄 알고 방마다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따라다니면서 체크를 하셨다. 다행히도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저녁 식사 때 사장님께서는 일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내가 사정이 생겨서 그 곳을 떠나게 됐는데 떠날 때 사장님은 “아줌마 어디 가서 일하시든지 여기서처럼 일하시면 꼭 칭찬받으실 겁니다. 일 참 잘 배우셨습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어찌나 고마운지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능력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셨고 그로 인해 나는 자신감이 생겼고 면접 보러 다녀도 긴장하지 않고 자신만만했다.
후에 친구의 소개로 시골에 있는 가정집에서 중풍으로 앓고 있는 아주머니를 돌보면서 가사일도 맡아하게 되었다. 환자가 성질이 괴팍해 입에 욕을 달고 있었지만 귀 밖으로 흘러 보내면서 꾹 참고 지냈다. 그래도 할머니가 인정이 많으셔서 많은 위안이 됐다. 다른 식구들도 생전 뭐라 잔소리 없어서 편하게 일 할 수 있었다. 가는 정 오는 정이라고 식구들이 잘 대해주니 나도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하면서 바깥일도 구석구석 깔끔하게 정리했다. 아주머니나 할머니하고도 나날이 정들어갔다. 그리고 동네 나가서도 항상 언행을 조심했다. 중국교포들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들이 말밥에 많이 오르는 현실이라 나는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시간 날 때마다 마을 주변에 널려있는 쓰레기들을 주어다 버렸고 골물에 길이 패여 다니기 불편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반듯하게 닦아놓곤 하였다. 그리하여 동네 주민들은 길이 잘 수리된걸 보면 다들 간병아줌마가 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식구들이 다 잘 때면 아침준비 싹 해놓고 산책을 나간다. 나가다가 동네 어르신들이 밭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그저 지나가는 일이 없이 꼭 같이 일손을 도와드렸다. 일 끝나고 나면 다들 고맙다고 밭에 있는 각가지 채소들을 듬뿍 담아주시곤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후에 채소가 필요하면 아무 때나 와서 따다먹으라고 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물론 매우 기뻐하셨고 동네 아줌마들은 우리는 여태 한마을에 살았어도 채소 맘대로 따다먹으란 소리 못 들어봤다며 부러워하신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한국의 관혼상제 풍토인정 등 생활 속 깊은 곳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그 사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재작년에 환자 아주머니도 병이 재발하면서 돌아가셨다. 나도 아쉬웠지만 그 집을 떠나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했다.
고심 끝에 내 나이와 체력에 맞는 간병사 직업을 선택했다. 간병사란 이 직업은 보기에는 더럽고 하찮은 일 같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또한 여러 가지 상식, 기술, 요령 등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이나 실습은 받지 못한 나는 처음에 난처할 때가 많았다. 일이 서툴면 어떤 선배들은 사정없이 비난한다. 하지만 불쾌한 마음은 잠깐, 마음을 고쳐먹고 주동적으로 다가가 가르쳐 달라고 허심하게 마음을 터놓으면서 진심어린 칭찬을 해드리면 선배님들도 기분 좋아하시며 여러 가지 요령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나중에는 언니동생사이가 된다.
덕분에 나의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나는 항상 환자를 보살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기에 노력했다. 간병하는 중 제일 힘든 것이 밤잠 못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환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한 번도 여러 번 깨운다고 짜증내는 일이 없었다.
한번은 대장암 말기 환자이신 할아버지를 돌보게 되었다. 식구들이 돌보다 지쳐서 며칠만 봐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착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인데 병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으신가보다. 온밤 시중을 들다가 새벽녘에 잠간 잠들었는데 잠결에 “아줌마, 아줌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예,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눈도 못 뜨고 벌떡 일어났다. “아줌마 보고 싶어서”하셨다. 아마 통증이 심하셔서 잠이 안 오시는가보다. 어이없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통증을 잠시나마 잊게 하려고 농담을 했다. “할아버지 옛날에 바람 많이 피우셨죠?”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다. 진통제를 맞으시고 아침에 잠에서 깨신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줌마, 나 오늘 기분 짱이야”, “왜 짱이에요?”, “아줌마가 예뻐서”, “저도 짱이에요, 할아버지가 예쁘다고 하시니까” 그날은 할아버지가 퇴원하시는 날이었다. 할아버지도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침대시트도 깔끔하게 갈아드렸다. 가족들이 오시더니 깨끗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셨다. 할아버지는 나와 갈라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셨다. 그 모습에 나도 서글픈 마음이 들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 후 다른 동료한테서 들었는데 할아버지는 퇴원하셨다가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다시 입원하셨는데 며칠 전에 끝내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고통에 시달리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팠다.
내가 간병한 대부분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은 퇴원할 때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후에 다시 입원하게 되면 또 돌봐달라고 부탁하신다. 며칠 전에는 폐렴에 걸린 할아버지를 간병해드렸는데 병이 완쾌되셔서 퇴원하셨다. 짐을 싸고 있는데 수간호사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여사님, 그간 고생이 많으셨어요.”라고 하셨다. “선생님, 저 잘했어요?” “잘 하셨지요, 잘 하셔서 병이 그렇게 위중하시던 할아버지가 완쾌되어 퇴원하셨잖아요.” 나는 기분이 막 날아갈 것 같았다. 나도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더구나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는 간병사를 칭찬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젠 한국 동료들하고도 언니 동생하면서 너무너무 친하게 지낸다. 정말 요즘은 일 할 맛이 난다.
지금 나는 9층 병실에서 저 멀리 막힘없이 펼쳐진 성환 벌을 바라본다. 네모반듯한 논밭들 사이에 드문드문 하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배 고장으로 유명한 일망무제한 배 밭에는 배꽃들이 하얗게 피어 온통 백색세계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밑을 내려다보니 실북처럼 드나드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 나의 사랑스런 고국은 언제 봐도 생기가 넘친다. 게다가 깨끗하고 교통이 편리하고 친절하고 일자리가 많고 정말 살맛나는 나라이다.
더욱 고마운 것은 우리 동포들을 과거 불법체류자에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받아주어서 마음껏 일하며 돈을 벌고 고향나들이도 자유롭게 한다. 정말 꿈만 같다. 동포들을 배려하여 좋은 정책도 육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스런 고국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거창한 일은 할 수 없더라고 나는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며 나라의 법과 규율을 잘 준수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을 갖고 노력하면서 살련다. 고국의 번영발전을 위하여 큰 재목은 못되더라도 나는 한 장의 벽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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