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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한국에 '왜' 오셨어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53 조회 : 1364


한국에 ‘왜’ 오셨어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 받는 질문 중 이보다 더 기본적이고 덜 의외의 질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서울을 방문해 하루라도 보낸 사람이라면 “왜 한국에 왔어요?”라는 질문을 수차례 받아봤으리라고 확신한다.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이 지난 나를 여전히 당혹시키는 것은 이 질문과 거의 언제나 동반되는 진심어린 놀라움이다. 한국인들은 마치 전혀 이해할 수 없겠다는 듯 ‘전 세계 그 많고 많은 나라 중에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짓는다.

내가 처음 한국에 온 이유는 매우 개인적이며 단순하다. 바로 한국의 문화와 사회를 배우는 첫 번째 단계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서다. 당시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 매우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영어 교사로서 영어영문학 학사학위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곳에 올 결심을 굳혔다.

지금껏 만난 많은 한국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함과 다정다감함, 그리고 환대의 태도다. ‘기역(ㄱ)’과 ‘키읔(ㅋ)’, ‘쌍기역(ㄲ)’을 제대로 구분해서 발음하지 못하던 때, 또는 오는 사람에게나 가는 사람에게나 분간 없이 허둥지둥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레퍼토리처럼 내뱉곤 할 때, 이런 한국인의 정서 덕분에 참으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추억들은 다른 곳보다 이곳 서울에서 더 자주 발견되는 것 같은 일련의 우연의 일치를 겪으며 점점 늘어갔다.

어느 운명과도 같은 날,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을 마치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낯선 이를 통해 그의 한 다리 건너 친구인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이 친구가 정부기관에서 아리랑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나는 ‘2009 아리랑 세계화 국제 심포지엄’의 영문 자료집 편집을 도와주게 되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 친구는 나에게 한국어 발음 교습과 아리랑의 오랜 역사에 대한 특강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외국의 음악가들이 그들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아리랑 연주를 펼치는 굉장한 공연에도 초대해 주었다. 공연 날 밤, 다양한 곡조로 연주되는 아름답고 인간미 넘치는 아리랑의 선율과 많은 예술가들의 열정적인 무대에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매료됐다. 내가 그날 직접 보았던 공연은 아리랑이 가진 문화초월적인 매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이 공연 이후에 생긴 일들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추억이 되었다. 그 멋진 공연이 남긴 짜릿함이 조금씩 잦아들고 박수를 너무 세게 치는 바람에서 생긴 손의 얼얼한 느낌이 가실 무렵, 내 친구가 다가와 연주자 몇 명과 직접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덥석 기회를 잡았고, 곧 무대 뒤쪽에서 노르웨이의 재즈 아티스트인 잉거 마리씨와 악수를 나누며 그녀의 진심에서 우러난 공연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꿈과 같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한국인들과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초청을 받았다. 그날 밤 보았던 굉장한 사람들과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나의 부족한 한국어 실력과 혼자 외국인이라는 ‘깍두기’ 같은 처지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친구가 고맙게도 끈질기게 청해서 예정된 저녁 장소로 향하는 무리를 따라가게 됐다. 도착한 곳은 80년대에나 봄직한 벽지로 장식된 한 고깃집의 자그마한 뒷방이었다. 적어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상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신발을 벗은 채로 온돌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술이 꽤나 취한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에는 미소가 넘쳤다.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로의 경계선을 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과 한바탕 웃음소리가 뒤섞여 방안을 채우고, 사람들의 몸이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리며 살아있는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그야말로 열광적, 역동적, 매혹적 이 모든 수식을 다 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따뜻한 온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나는 웃음을 띠며 인사를 건넸다. 불완전하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한 잔의 소주와 함께. 거짓말같이, 나의 두려움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첫 ‘건배’를 외친 후 입 안에 털어놓은 소주와 같이 한꺼번에 싹 사라졌다. 분위기에 휩쓸린 ‘우리’는 두터웠던 언어 장벽을 어느새 의식의 저편으로 보내버리고, 노래와 웃음, 그리고 이야기들만으로 그날 밤을 메웠다. 흥겨움 넘치는 민요와 추임새, 합창과 독창이 이어졌고, 대금연구가의 즉흥 연주도 한판 벌어졌다. 나는 한국의 민속음악과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과 영화에서부터 음주문화(어떤 음식을 먹을 때는 어떤 술을 마셔야 하는가 등등)와 주도까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능과 기량이 뛰어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어 한 두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신입’ 외국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은 그들의 온정과 진심어린 열린 마음이었다. 그들은 나라는 불청객을 용인해 주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삶을 나와 공유하고 나 또한 그들과 공유하기를 청하며 허물없이,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내가 그날 밤 만난 사람들과 같은 이들을 만나기 위해, 또는 우리가 나누었던 것과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한국에 온 나의 이유는 단순히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느껴 온 한국인만의 온정과 호의,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내가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서울을 마치 내 고향처럼 생각하게 하는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지금은 서울의 한 대학원에 입학해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 오래 살수록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외국인들이 기꺼이 이곳에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기회들을 탐색할 만한 무궁무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얼마나 더 한국에서 살 것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내가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 있다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아마 나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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