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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나는 한국사람이 되었어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52 조회 : 1265

 
 나는 한국사람이 되었어요. - 전정숙

 

  어느덧 4월이 성큼 오고 날씨가 괴팍한 노부인처럼 봄이 되었는데도 눈이 왔다. 오늘 학교에서 눈이 잠간 내릴 때 학생들이 “이상하네. 4월인데도 눈이 내리고 날씨가 왜 이래……. ”
이런 날씨처럼 나도 모르게 생각은 복잡해지는 것 같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올해처럼 이상한 이런 날씨는 처음 느낀다. 2월 달에 고추장을 담았는데 햇빛을 많이 못 봐서 고추장 맛이 제대로 나려나 모르겠네.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언제 한국어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새월이 벌써 10년이 흘렸다. 한국생활의 적응하는 기간이 지나고 나는 한국 사람이 되었을까? 가끔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한국사람”이라는 단어가 아직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할머니들, 친구, 진척들을 만날 때는 나에게 “한국 사람이 다 됐네…….”이야기 해주었다. 그때 기분이 정말 좋았죠... 한국 사람들은 그 기분은 모르겠죠? 하지만 우리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칭찬으로 들려 기분이 좋았다. 물론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정말 좋았다.
 어제 신랑이 “10주년 결혼기념은 제주도여행을 갈까?” 하는 소리를 들으니 잠이 안 오다. 10년 넘었는데 제주도 여행 한번 못갔다. 돈을 열심히 벌고 조금 모아지면 베트남가족을 보고 싶어서 베트남에 다녀 오느라 열심히 번 돈을 다 쓰게 된다.. 신랑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나 아닌 한국여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2년에 한번씩 가는 베트남을 가지않아도 될 텐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돈이 모이지 못하고 또한 아이들 양육비 때문에도 힘이 들지만 열심히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한국 사람이 될까? 그 문제 때문에 많이 노력했다. 한국어 공부, 아이들이 외국 엄마 때문에  왕따당할 까봐, 다른 이민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대학원까지 공부했다.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면 나름 정말 열심히 한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음은 한국에 처음 올 때 좋은 생각과 꿈을 다 가져 왔는데 나는 잘 할 거야. 나는 어머님과 함께 살고 싶다. 나는 어머님을 내 엄마로 만들어야지. 나는 아이들을 잘 낳고 잘 키울 거다. 나는 ....등 등 많이 생각하고 한국에 왔다. 하지만 인생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으면 세상에서 어려운 사람이 하나도 없겠죠?
  요즘은 어머님의 모습이 자꾸 내 마음속에 나타나고 나를 어머님과 같이 6년 동안 살았던 시간이 자주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한국에 올 때 어머님은 82세 이셨다. 한국에 오기 위해서 “엄마”이라는 단어 하나만 배웠다. 어머님을 만나면 ‘엄마’라고 불러야지 생각했던 내게 한국에 오고보니 처음에 알려주시기를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하시는 어머님을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머님과 같이 살고 어머님에게 배우는 것도 많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억울한 것이 더 많았다.
 베트남에서는 6남에 중 막내라서 나는 집안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밥, 빨래, 청소 등 아무것도 못했던 나는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그 일들을 어머님을 통해서 다 배웠다. 빨래하고 나서 옷들을 다 개키고 엉덩이 밑에 넣어 앉았다가 빨래줄에다 너는 방법, 청소기가 있어도 손걸레질을하며 구석구석 청소하는 방법,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남편에게 차려주는 방법, 손님이 오면 인사하는 방법, 등등 ...
 베트남에서는 시집가기 전까지 찬밥을 안 먹던 내가 결혼하고 나서는 찬밥을 매일 먹어야 해서 억울했던 느낌. 그럴때는  엄마와 베트남에 있는 언니와 오빠들이 보고 싶어서 매일 몰래 울고 어머님이 나가시면 국제전화를 걸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곤 했는데 한달 전화요금이 남편의 월급만큼 나와서 황당했던 때가 있었다. 어머님과 살았던 6년을 참지 못하고 어머님과 다투기도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둘째 아들을 낳고 시간이 흘러 4년이 넘었다. 항상 고추장을 담글 시기엔 어머님의 말씀이 “고추장을 담아야해. 한국에서는 그것은 기본이다.” 그 당시엔 그런 일들을 이해하지 못 했다. 신랑이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을 잘 먹는데 왜 고추장을 담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님에게 고추장을 굳이 담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안 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서 어머님과 다툰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머님에게 많이 죄송한 생각이 들어 죄송하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그 이유는 신랑은 사는 고추장을 잘 먹지만 믿을 수가 없으니 집에서 담그는 고추장이 맛이 덜 하더라도 건강을 위해 담가서 먹자고 권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돈이 장난 아니게 들어간다 절약을 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짠순이가 된 나를 돌아보곤 내가 철이 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머님처럼 빨래를 매일매일 하는 것보다 나누어 하얀 옷과 색깔있는 옷들을 분리하여 전기를 아끼고 다림질을 안해도 한것처럼 어머님의 빨래 방법을 배워서 빨래하고 나서 개키고 엉덩이 밑에 넣은후 넌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나는 남은 찬밥을 먹고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밥을 먹이는 것이 나의 생활이 되어서야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아이들이 찬밥을 먹으면 안 되지만 나는 엄마라서 찬밥을 먹는것이 아니고 내 아이를 위해 찬밥을 먹는것이 행복하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니까.  
   그 때에는 아침밥을 안 먹어도 된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어머님과 맞선 내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니 너무 한심했다. 베트남에서는 아침밥을 안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아들이 아침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내가 어머님과 똑 같은 말을한다 “아침밥을 안 먹으면 머리가 좋지 않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해” 이제 신랑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10년 전엔 아침밥을 안 먹어도 끄떡 없었는데 요즘은 아침밥을 안 먹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전기도 아껴야 하기에 아들이 불을 안 끄면 잔소리를 한다. 그때그때 어머님생각이 난다. 나는 어머님과 같이 살 때에 지금 내 아들과 같다. 항상 억울하고 어머님 때문에 속상했다. 왜 어머님이 전기도 마음대로 못쓰게 하시지? 왜 어머님이 잔소리를 많이 하시는지를 몰랐다. 어머님이 왜 고추장, 간장을 힘들어도 담그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님이 왜 아들(신랑)만 사랑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님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원밥을 드시지 못하여 나는 어머님에게 죽을 쑤어 병원에 갖다 드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머님이 8남매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그래서 어머님이 그렇게 아끼고 절약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이었음을, 나에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님처럼 그 습관을 대물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한국음식이든 한국문화든 다 이해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지금 내 옆에 어머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후회를 많이 했다.
   사람들은 항상 뒤늦게 깨닫고 뒤늦게 후회한다. 나또한 다르지 않았다 항상 내가 잘 하겠다고 하지만 잘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한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 멀리 하늘위에 어머님도 춥지 않으실까? 생각했다.
  어머님 생각이 나면 나는 이런 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한국의 속담이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참을성이 없어 몇가지 망신을 당하는 일을 겪었다. 어제 우리 친구 한명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항상 어르신들의 말씀이 잔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그 말씀들 속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다. 책에서 나오는 지식이 아닌 긴 인생에서 나오는 지식이다. 우리들이 항상 자기 자신의 말만 믿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귀 담아 듣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인생이 여러번 후회하고 계속 후회한다. 그 후회의 속에서 크며 한 노인 이 되어 자식과 아이들에게 조원을 하며 또 잘 소리한다고 듣는다. ”이야기 했다. 물론 그 말은 모든 사람과 다 맞지는 않는 것 같지만 나와는 정말 딱 맞는 말이다. 나는 정말 잘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 만만 했다. 하지만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만약 어머님이 지금까지 우리랑 함께 살고 계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님 지금 저는 정말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님의 아들에게는 어머님처럼 잘 해주지 못했어요.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
    어머님아들 덕분에 나는 대학교에서 전임강사가 되었어요. 오늘 연구실의 창문 밖에  내리는 눈꽃송이를 보면서 신기해했다. 창 밖에 학생들이 다니면서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고 장난치기도 한다. 학생들도 아마 꿈을 많이 꾸고 있겠다. 학생들의 순수한 얼굴을 보면 나도 마음이 맑아지고 어머님처럼 노력하고 우리 아이들 잘 키우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말 행복했고 지금도 어머님아들과 어머님의 손자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것도 어머님의 덕분이다. 어머님께서 좋은 아들을 낳아주셔서 나는 그 아들과 결혼했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항상 감사하면서 살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 할머니들이 나에게  “한국사람 다 됐네.”말씀 하시면 나도 자신있게 “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음식도 잘 하고 고추장, 김장김치도 담글 수 있고 한국사람 다 됐다고 신랑도 자랑합니다.”말 할 수 있다.
                                            2013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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