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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고마운 사람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45 조회 : 1094


고마운 사람 - 누엔녹댑

  시어머님을 재우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느끼고 있는데 옆집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노래를 들으니 제 고향 베트남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벌써 한국에서 산 지 5년이나 되었네요. 그 사이 저는 두 남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5년 전 베트남 호치민시에 살던 저는 남편을 만나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시댁 식구를 처음 만나, 떨리고 긴장되었던 순간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후 2시간 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멀미가 났던 것까지도요. 5시간의 비행에 지친 저는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땐 예쁜 집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살 집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대문을 열자 집 앞에는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고 그네도 있었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 머리가 하얀 할머니께서 소파에 앉아 사탕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한국말은 모르지만 그 분이 제 시어머님임을 알 수 있었고 저는 절을 하며 첫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다른 어른들과 좀 달랐습니다. 착한 아이 같은 눈빛으로 저를 엄마라고 부르셨습니다. 놀란 저를 형님께서 안아주시며 다독이시는데 마치 베트남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 한국말로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고 잠자리도 편안해지자 저는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아침밥을 먹은 후 형님과 남편과 저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차로 세 시간을 달려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예쁜 집은 사실 형님 댁이었습니다. 제 앞에 서있는 작고 허름한 집이 우리의 집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슬펐습니다. 실망스러웠고요. 형님 댁에 비하면 저희 집은 너무 초라했거든요. 저는 울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떠나시는 형님을 배웅했습니다. 멀어져 가는 차를 보고 있던 저는 엄마를 떠나보내는 아이처럼 울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는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저는 하루 종일 시어머님과 둘이서 지냈습니다. 알고 보니 시어머님은 10여년째 치매를 앓고 계셨습니다. 제 어깨는 무거워졌고 외로운 마음에 언제라도 베트남의 부모님께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눈에 사랑을 가득 담아 저를 보시는 시어머님을 보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아가’가 아닌 ‘엄마’라고 부르시는 시어머님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소리가 너무 편안하지만요. 가끔 대변과 소변을 가리지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실수하실 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시어머님께서는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미안해요.”라며 우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님을 안고 등을 토닥였습니다. 힘들지라도 순한 어머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피곤이 사라지고 더러운 것도 모르겠어요.
  5살 지능의 어머님과 저는 매일매일 가나다라 책을 함께 공부합니다. 어머님은 귀엽고 똑똑한 아이같이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배우십니다. 아이 둘에 어머님까지 돌본다는 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만 어머님과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저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을 뵙기 위해 주말마다 형님께서는 저희 집에 놀러 오십니다. 한국음식을 만들어주시면 저는 옆에서 열심히 배웠고, 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임신했을 때는 예쁜 임부복과 아기용품도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딸처럼 자주 안아주시는데 그럴 때면 “동서 정말 미안해요. 멀리서 왔는데 아픈 어머니까지 맡기고, 내가 정말 미안해. 그리고 어머니께서 갈수록 건강해지셔서 동서한테 정말 고마워.”라고 하시며 우셨습니다.
  형님의 말씀을 들으면 제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님을 돌보면서 제 존재가 누구보다 소중하다는 걸 느끼기에 저는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머님 덕분에 저는 시댁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큰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남편도 늘 제 어깨를 주물러주고 안아주며 수고했다, 고맙다 말해줍니다. 그때마다 저는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행복해집니다. 어머님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솟아오릅니다.
  하루는 딸 지현이가 청소하는 제 곁에 와서 물었습니다.
  “엄마, 왜 할머니는 나를 언니라고 불러요? 나는 할머니 언니 아니잖아요.”
  “지현아 할머니는 지현이랑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러셔. 그리고 지현이를 많이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언니라고 부르시는 거야. 그러니까 지현이가 언니답게 할머니를 잘 돌봐드려야 해.”
  “응, 알겠어. 할머니는 아프지만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어. 나도 엄마처럼 할머니께 잘 해드려야지.”
  다섯 살 아이인데도 생각이 아주 깊습니다. 지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것 역시 어머님 덕입니다. 항상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와서는 사랑한다 말하고 힘내라고 응원하고는 다시 쪼르르 달려갑니다. 남편 역시 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지고 시댁 식구들도 늘 제게 고마워하십니다. 무엇보다 어머님께서 저를 잘 따라주시고 건강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 저를 가장 기쁘게 하고 힘이 나게 합니다.
  앞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으로 열심히 어머님을 돌보고 치매에 관해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어머님과 남편, 형님, 두 아이들이 있기에 저는 못 할 게 없습니다. 부디 어머님께서 점점 더 건강해지시고 오래오래 저희 곁에서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사 같은 어머님은 타국에 온 제가 받은 선물이고, 또 제게 넘치는 선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사랑해요, 어머님. 사랑합니다, 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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