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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어깨를 빌려 드려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40 조회 : 1163


어깨를 빌려드려요 - 최야나

러시아 댁 
 
1992년 여름 스물네 살에 떠난 러시아 유학길. 그렇게 오랜 시간을 러시아에서 보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 직후 혼란했던 러시아에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경제적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불안한 눈빛에 저도 많이 두렵고 용기를 내서 그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습니다. 처음 러시아 정착 2년 동안은 학교와 집을 오가며 시계추와 같은 생활을 반복했고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의 문화와 생활 습관에 향수병은 깊어져 갔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러시아 사람들과 사는 나날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러시아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기차표 사는 연습을 저녁 내내 하고 다음 날 직접 기차표도 사보고 길게 늘어선 줄을 서서 빵도 사보고 하면서 그들의 삶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러시아 이웃들의 ‘따뜻한 어깨에 기대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렇게 두렵기만 했던 그들은 너무도 따뜻한 미소와 친절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새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신뢰와 사랑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들의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부설된 한글학교와 현지 고등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졸업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러시아에 남아 대학에서 한국어 전임강사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8년 동안 3000시간이 넘는 강의를 하며 만든 자료들을 모아 2007년 봄 외국어 관련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출판사에서 ‘기초한국어’ 자습서를 출판을 하고 그 해 여름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여름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 해 12월 결혼도 하고 2010년 9월 기적처럼 예쁜 딸도 출산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15년을 살다가 돌아온 저의 삶 모든 부분에서 러시아의 ‘냄새’가 풀풀 난다고 ‘러시아 댁’이라고 부르는 지인들의 놀림을 즐겁게 받아드리며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물거품’의 기적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남편 사무실로 가는 길. 송내사거리에 못 보던 ‘사단법인 경기글로벌센터-외국인 도움센터’라는 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혹시 저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 직접 방문을 하고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와 통역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어권에서 온 몇 명의 결혼이민자와 시작한 한국어 강의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말을 잘 모르는 자매가 아이의 ‘방과 후 교실’ 신청을 못해서 속을 끓이는 것을 보고 자원해서 학교까지 직접 찾아가서 담임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아이를 ‘방과 후 교실’에 넣어주기도 하고 남편과 싸워서 이혼하겠다고 울고불고 하는 자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다독여서 가정이 화목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뿌듯함도 덤으로 얻었습니다.
2012년 초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중 2005년 국어기본법 시행령 시행 이전에 800시간 이상 강의한 경력이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어교원 3급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러시아를 떠나며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강의했던 경력은 물거품이 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력 덕분에 기적처럼 한국어교원 3급 자격도 취득하고 러시아어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들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노동자들까지 한국어 교육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기꺼이 주말 휴일을 반납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입덧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결혼이민자들 그리고 새 엄마, 새 아빠의 나라의 말을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도입국자녀들을 가르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도 나그네 되어 이국땅에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하여 몸부림쳤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 땅에 정착하고 그 땅을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녹녹치 않았던 시간들은 이제는 타국에서 와서 한국 땅에 살며 나그네 된 그들에게 내어 주는 ‘넓고 따뜻한 어깨’가 되었습니다. ‘제 어깨’를 내어 주며 여기에 기대라고 말할 수 있는 연결점인 한국어 공부 시간이 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저도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소통의 즐거움을 알아간다는 것 입니다. 얼마 전 쓰기 시간에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제목의 글짓기를 했는데 중국에서 시집 온 Y자매의 ‘어머니의 선물’이라는 글이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Y자매에게 허락을 받고 인용해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선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니 다 그때그때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선물은 친정어머니께서 짜 주신 조끼입니다.
작년 여름 아이들 방학 때 아버지 어머니를 뵈러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해 어머니의 연세는 68세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눈이 많이 어두워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앞을 잘 못 보시는 어머니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점점 시력을 잃어 가시는 어머니께서 저를 만나자 마자 옷장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제게 건네주시며 ‘한 번 입어 봐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직접 짜주신 조끼는 입어보니 몸에도 딱 맞고 제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손수 짜주시는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입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 조끼는 그냥 선물이 아닙니다. 제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억하기만 해도 힘이 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타국 땅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을 교정한 후에 빨간 글씨로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읽으며 울었습니다.”라고 써 넣었습니다. 그 다음 시간에 저의 말을 들은 Y자매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 후로 Y자매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눈에는 반짝반짝 활기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어깨를 빌려드려요

저는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 속에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시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수업시간에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예문에 많이 사용합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그네로서의 고단한 삶을 조금씩 조금씩 내려놓고 그들의 눈은 코리안 드림으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쌍둥이를 키우면서도 태국과자 전문점을 오픈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하는 G자매, 지금하고 있는 사업을 잘 일구어서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아내와 딸과 함께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파키스탄에서 온 A씨,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하고 싶다는 러시아에서 온 E자매와 필리핀에서 온 R자매 그리고 사회복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신의 조국 미얀마를 위해서 그 언젠가 자유롭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때가 오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J씨 등등 이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지켜보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어렵고 고된 날에 ‘따뜻한 제 어깨’를 빌려드리고자 합니다. 나그네 된 그들이 잠깐이라도 기대어 쉴 수 있도록 그리고 따뜻한 한국인의 정이 그들의 마음 문을 살포시 두드리도록 그래서 이곳에 오래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도록...  
두 어깨에 묵직하게 따뜻한 한국인의 정을 둘러메고  오늘도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크게 외칩니다. “어깨 빌려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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