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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아름다운 꽃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38 조회 : 1122


아름다운 꽃 - 이재선

가족생활 지도사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4년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 할 때는 그저 쉽게만 생각하고  소일거리로 이민자 집에가서 한글 몇 자 가르쳐주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교육을 받고, 이민자 집에 가정방문을 하여 현장에 나가보니 상황은 아주 많이 달랐다. 각양각색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수많은 애환과 기쁨과 슬픔, 행복도 너무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가정 가정마다 한 가지 고민들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도와 줄 일은 너무도 많고 많았다.
처음에는 제일 문제가 언어소통이지만, 그 속에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다.
나는 가끔, 요리사도 되어야 했고, 상담자도 되어야 되고, 엄마도 되고, 할머니도되고, 선생님도 되고, 보모도 되고, 수시로 많은 역할을 담당 해야만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만난 이민자는 조금 특별했다.
이민자는 23살, 남편은 46세였다. 그런데 전처의 맏아들이 25세 둘째 아들이21살, 막내딸이 14살이었다. 맏아들은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해 나가있고, 둘째 아들도 대학생이라 나가있고 집에는 남편과 막내딸만 집에 있었다. 처음 이민자를 방문 할 때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이민자는 센터에서 몇 번 봐서 얼굴은 알고 있는 차였다.
집에 방문을 하니 시어머니와 이민자가 반겨주었다. 시어머니를 뵈니, 그전부터 안면이 있는 분이셨다. 전혀 모르는 분도 아니고 해서 마음은 편안했다. 처음에 이야기 할 때는 며느리에게 아주 잘해주고 배려를 많이 해 주시는 것 같고, 딸도 인사도 잘하고 상냥해, 아무 근심걱정 없이 잘 지내는가 보다하며, 수업을 들어갔다. 수업을 하면서 이런 저런이야기를 하는데 이민자의 집과 시부모의 집은 한 50미터밖에 안되는데, 삼시세끼를 시어머니 집에가서 밥을 해먹고 다닌다고 했다. 집에는 밥통도 없었다. 이민자는 그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생활한지 1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게, 너무 힘들겠다. 어느 정도 지나면 집에서 해먹을 날이 있겠지 뭐 아직 한국음식이고, 문화고 잘 모르니까, 시어머니께서 가르쳐 주느라 그러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고, 위로를 하며 수업 을 했다.
어느 날, 아침 수업을 가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오늘 수업 못해요. 목소리가 안 좋게 들렸다. 많이 울은 목소리였다. 왜 무슨 일인데 하니까. 아니요. 오늘은 그냥 공부하기 싫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길로 바로 집에 찾아갔더니, 얼굴이 시뻘겋고 손자국이 나있었다. 왜이래!  남편한테 맞았어 했더니, 엉엉 울면서 선생님 전 어떻게 살아요. 너무 힘들어요. 한다. 우리 둘째 딸하고 나이가 같은 이민자라서 마음이 더 짠하고 아팠다. 집에 있기 싫다며, 선생님 저 나갈 꺼니까 , 집에 가라고 한다. 혼자 놓아두면 안 될 것 같아, 밖을 내다보니 시아버지께서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시아버지께 잠깐 바람 좀 쏘이고 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데리고 나왔다.
병원에 가자니까 싫다고 한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고, 죽 집에 가서 죽을사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너무 울어서 목도 많이 잠겼다. 얼굴에 약을 발라주고, 죽 좀먹고 쉬라고 했다. 왜 싸웠냐고 물으니, 밤에 잠을 자다가 너무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는데 남편이 선풍기를 자꾸 꺼서, 그것 때문에 다투다가 집에서 밥을 해먹으면 안되냐고 말했다가 서로 목소리가 커지고 , 남편이 참지 못해 때린 모양이었다.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하였다. 남의 가정사에 함부로 끼어들었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걱정도 되고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도 없었다. 이민자는 쉬지도 못하고 한숨 만 쉬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한숨 재웠다. 조금자고 일어나더니, 친구 집에 혼자 가겠다고 집을 나선다.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선생님이 아버님께 허락 받고 데리고 나왔는데 집에까지 선생님이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했더니, 집에는 안 들어간다며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혼자 내 보낼 수는 없었다. 친구 집에 가더라도 다시 집에 갔다가 가라고 , 집에 데려다 주면서 욱하는 마음에 집을 나가 버릇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고 내일 친구 집에 가라고 부탁을 하고 나와서, 시어머니 집에 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시어머니도 속상해서 고추를 다듬으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싸움을 하면 남편한테 그렇게 죽자 살자 하고 대 든다고한다. 이제 한국음식도 웬 만큼하고, 집안가풍도 익혔으니 그냥 자기네끼리 밥해 먹으라고 하시지 뭘 힘들게 아직도 그렇게 끼고 계세요. 이것저것 속상해 하시지 말고 집에서 해먹으라고 하세요. 마음 편하게 했더니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왜요? 하니까 자기네끼리 해먹게 놓아두면 낭비도 심하고, 버리는 것이 반이라고 하시면서 눈에 불을 켜면서 절대 나 죽기 전 까지는 안 된다고 완강하게 반대를 하셨다.
거기서 더 이상 뭐라고 더 했다가는 봉변을 당할 기세였다.
그러게요. 여러 가지로 속상한 일이 많으시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딸 같은 며느리이니 잘 이해시키고 타일러서 다독여 주세요. 부탁을 드리고는 집을 나왔다.
남편과도 통화를 해서 아무리 힘들고, 속상 하더라도 손 지검 을 하면 안되지요.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저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거예요. 남편 한사람 믿고, 멀리 타국까지 왔는데, 매나 맞고, 지금 상황도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견디겠어요. 남편이 옆에서 위로해주고 고생한다고 해도 힘든 상황인데 누가 같이 살겠냐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새벽6시에 일어나서 시집에가서 밥 해먹는 딸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라고,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대로 보고만 계실 거냐고 아직 어머니도 정정하시고 아버님도 정정하시던데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더니, 남편은 너무 효자인지,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남편입장도 딱해 보였다. 혼자 벌어서 부모님들 생활비도 다 대야하고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며, 모두 혼자서 감당을 해야 한다고 한다.
시동생이 있는데 시부모님들이 아플 때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집에 오면, 쌀에 고추가루에 농사지은 것은 다 가져간다고 이민자는 불만이 많았다.
이민자 친정에도 부모님들이 너무 어렵게 살아서 한달에 얼마를 보내 드려야 하는데 그럴 처지도 못되고 남편 힘든 것도 아는데 ,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이 예쁜 게 남편이 많이 불쌍하다고 했다. 몇 일 지나면서 서로 이야기를 잘해서 잘 풀린 모양이었다. 시어머니랑 시장에 가서 옷도 사주시고 남편과 같이 밖에 나가서 쇼핑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했더니, 매일 똑같아요.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지요 한다.
아이고, 내가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끼어들어 이러고 저러고 할 수도 없고 너무 안타까웠다. 이민자는 몸집도 작은데다, 많이 약해 보인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시내 한번 나오려고 해도 힘들고, 시부모님께서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나가지도 못하고, 시장을 가더라도 항상 시어머니와 가야하고, 옷을 사려고 해도 시어머니와 같이 가야 해서자기 마음에 드는 옷은 잘 사지도 못 한다고 했다. 친정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취업 할 때가 있는데도 시어머니 반대로 가지도 못 한다고 한다. 이전에도 다른 이민자와 살았는데 얼마 살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누가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시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정인데 너무 아쉬움이 많은 가정이다. 굳이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며느리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힘든 것 같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서 문제는 또다시 발생했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그런대로 오가며, 밥을 해먹었겠지만, 추워지면서 아침 일찍 일어 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싫었나 보다. 또 한바탕 싸웠다고 했다. 나도 참고 더 지내보라는 말은 더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시어머니가 어떻게 하시는지 하고는 그냥 놔두었다. 몇 일을 시어머니 댁에 가지 않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버티었다 고했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어머니를 잘 설득해 보시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힘들게 하면 누가 살겠냐고 예쁜 마누라 놓치기 싫으면, 남편이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하는 것 이라고, 효도 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효도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이니까  방법을 바꾸어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몇 일이 지나서 남편이 밥솥을 사가지고 왔다고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어떠시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안 좋으셔서 집에 오시지도 않는다고 했다.  남편이 추울 때 는 집에서 해먹고 날씨 따뜻해지면 다시 시어머니 집으로 가서 밥을 해먹자고 했단다.
어찌되었던 남편의 심경변화로 집에서 밥을 해먹게 되었으니 마음은 너무 편안하고 좋다고 한다. 시어머니께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시어머니께서도 이제는 이해하시고, 나누려는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넓은 마음으로 이제는 다문화 가족이 낯선 사람들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고 친구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소통하면서 하나가 되어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려 잘 살 수 있도록 잘 보살펴주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쳐도 자신감과 용기를 준다면 우리의 다정다감한 가족이요,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게 될 겁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희망을 주고, 기뻐하고, 사랑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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