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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특선)JIN LING_따뜻함 그 자체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7 조회 : 648

따뜻함 그 자체

 

JIN LING

 

차가운 입김이
얼어붙은 손끝이
다시는 녹아내릴 것 같지 않았던
몸과 마음에
당신은 ‘난로’가 되어주었습니다.

 

 14년 전, 한국과의 인연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사랑의 일기’라는 공모전에서 운 좋게 최우수상을 수여받고 한국으로 연수 겸 여행을 다녀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당신’ 때문에 그동안 한국에 쌓였던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거둬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겠지만, 1992년 한·중 수교를 시작으로 재중동포 2세대들은 출국의 물결을 타고 좀 더 나은 삶을 가꿔보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받아들여진 재중동포는 처음부터 ‘그 곳’에 정착했던 민족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위적으로 이주를 했던 민족으로 생계가 위협을 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어린 자녀를 두었던 2세대들은 가족의 행복을 위한다는 생각 하나로 한국을 찾았지만, 그 대가로 온건히 함께 사는 가족이 드물었고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빈자리를 조부모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아이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창 엄마의 품이 그립고 가장 필요했던 그 시기에, 아이한테는 공부시키려고 한 선택이고 너만을 위한 선택이라는 말 한마디만 남겨둔 채 훌쩍 떠나버렸으니 '한국'은 아이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곁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한국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뾰족하게 모가 난 감정이 잔재하지만 동시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그 누군가에게는 분명코 선망하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아울러 '한국에 가다=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무의식적으로 모두의 뇌리 속에 정의(定义)로 저장되었습니다. 저한테도 그 기회가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함의 세계'와의 조우를 성사하게 해주신 한 분을 만났습니다. 당신 때문이었을까요? 당신을 뵙고 난 후부터 어리석게 얄밉다고만 생각했던 한국에 애정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속 한 구석은 늘 텅 비어 있는 듯했고 그 허전함은 채워지지가 않았습니다. 바로 엄마의 손길과 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포함한 15여명의 초등학생과 담당선생님들은 한국 공항에 도착한 뒤, '사랑의 일기' 공모를 주최했던 재단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랑의 재단'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저희가 재단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직원 같기도 하고, 자원봉사로 나오신 분들 같기도 했던 여러 명의 엄마뻘 되는 아줌마들이 반가이, 뜨겁게 맞이해주셨습니다. 당신들은 '안녕! 얘들아', '피곤하지?', '반가워!', '가방은 벗어서 아줌마한테 이리 줘!', '배고프겠다.' 등의 친숙함이 묻어나는 말들로 쉴 틈 없이 어린 저희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느라 분주했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 하나로 마음이 이토록 녹아내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1명씩, 혹은 2명씩 '엄마' 같은 아줌마들을 따라 그들의 집으로 갔고 한국에 있는 동안 일정 도우미와 숙박문제는 그렇게 해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푸근한 인상의 한 '엄마'를 따라갔는데, 그때의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숫기가 없던 터라 물어보는 질문에만 대답을 했고 당신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계속 화제를 돌려가며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당신이 저한테 형제가 있냐고 물으셨고 저는 없다고 대답했고 그 순간, 당신은 애처롭게 한숨을 쉬면서 자기 집에는 세 명이나 된다고 말했습니다. 형제 없는 저에게 삼형제라는 것은 어떤 개념이었을까요? 두 말할 것 업이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여러 번을 깜박이면서 진짜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표정이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큰 딸은 고등학교 3학년, 둘째 딸은 초등학교 6학년, 막내아들은 아직 유치원생이었습니다. 당신의 아침은 전쟁과 다름없었습니다. 거의 새벽 같은 이른 시간에 큰 딸을 먼저 깨워 식사준비를 끝내고 아침을 챙겨준 뒤, 남편과 둘째 딸 그리고 투정 부리는 막내아들까지 어렵게 식탁으로 모이도록 합니다. 부랴부랴 밥 먹고 학교 가는 둘째 딸을 학교에 보내고 잇달아 남편 출근까지 도와주고 그 뒤에야 마음 놓고 식탁으로 돌아와 심호흡 한 뒤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눈치 보는 것에 익숙한 저는 가급적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재빨리 아침을 먹고 '엄마'의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재단 측에서 준비한 일정에 따라 행사에도 참여하고 배정된 초등학교로 가서 학생들과 교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엄마'의 분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 명 더 늘어난 식솔 때문에 당신은 막내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저를 그날 참석해야 하는 행사장으로 직접 데려다주셨습니다. 행사장에서 무엇을 했던지 자세한 기억을 없기 때문에 별로 할 만한 얘깃거리는 없고 다만 숨 가쁘게 하루 종일 움직였던 당신에 대한 기억뿐입니다. 행사장에서 중국에서 온 저희와 그리고 재단 사업부와 점심 식사를 끝낸 뒤 오후 2시쯤 급히 외출을 하시면서 저한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셨습니다. 막내아들이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괜히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불청객 같이 나타나 당신을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들 말입니다. 어린 막내아들을 맡겨놓을 곳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행사장으로 데려온 당신, 행여나 제가 자책이라도 할까 걱정되어 행사가 끝난 뒤에 둘째 딸을 불러 마트로 가서 저더러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딸애의 것도 하나 더 추가하여 저희 둘에게 똑같이 선물해주셨습니다. 제가 둘째 딸애와 동갑이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좋은 친구가 되어 계속 연락하며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흐뭇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더욱이는 저한테 무척 관심을 가져다주고 보살펴주고, 가족들이 저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까라는 문제에도 신경을 써준 덕분에 머무르는 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표현이 서툰 저에게 항상 먼저 말을 건넸고,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엄마'의 역할을 해 오신 당신, ‘한국은 이런 곳이구나! 말을 해도 나긋나긋하게, 따라서 마음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곳, 한국의 엄마들은 다 이렇게 친절하구나!’라는 생각들이 샘솟으면서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반면, 어린 마음에 나의 부모님은 무슨 이유로 ‘엄마’가 했던 것을 똑같이 할 수 없을까라는 무모한 생각을 수십 번 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메말라 있었던 저의 상황을 마치 알기나 한 듯이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분, 당신은 마지막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친절을 잊지 않으셨고, 저의 부모님은 저를 위해 고생하는 것이니 절대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도 서슴없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나는 한 마디, “너는 충분히 행복한 아이야!”라고 하셨던 당신,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차 꿰뚫고 있는 듯했습니다. 
    한국에 머무르는 10일 동안, 3일간은 당신과, 3일간은 부모님과, 4일간은 재단 사업부와 함께 했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은 메아리같이 저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겨주신 분이셨습니다. 당신을 만난 덕분일까요? 한국과 맺은 그때의 인연은 십여 년이 지났으나 다시 부활이라도 한 듯이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덧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좋은 인연의 기운을 받아 계속 따뜻한 분들만 만날 수 있는 것 같고, 낯설음이 느껴지지 않는 이곳이 싫지가 않고 빨리 떠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베푼 사랑 때문에, 두렵지도 않았고 당신이라는 존재 덕분에 긍정으로 각인되어버린 이곳과 사람들, 용기를 잃지 않고 유학 생활을 하고 있고 그때의 따뜻함을 이어받아 ‘엄마’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같이 한국과의 인연을 통해, ‘엄마’라는 당신을 만날 수 있었고, 베푼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고, 곁에서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없는 부모님의 애절한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고, 더욱이는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행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습관처럼 비관적으로 ‘저주’하는 인식에서 비롯된 무의식적인 감각뿐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그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고맙고 따뜻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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