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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최우수상)노춘화_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어요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5 조회 : 731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어요.
                                                  

영광군청통합사례관리사 노춘화

 “아들을 위해서 살아야겠어요. 저희 부부 좀 도와주세요.”
다급하게 일상을 깬 중년의 남자 목소리였다. 남자는 감정을 꾹꾹 누르며 차분하게 말했지만, 전화기 사이로 새어나오는 울먹임은 감춰지지 않았다. 평소 자존심이 강한 이 남자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수화기를 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시린 바람이 들어오는 듯 했다.

 남자는 가난한 가정생활로 어릴 적 머슴살이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머슴살이를 하면서 배운 건 한글 공부가 아니라 밥 한공기라도 얻어먹기 위한 눈치였다고 했다. 지병을 앓고 계셨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야 했기에 가족의 행복을 모른 채 살아왔다.
 청년이 되어 어렵게 들어 간 공장에서 첫 번째 아내와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모른 채 첫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두 자녀들도 생겼다. 열심히 살았으며, 행복했고,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하지만 공장에서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게 되자, 냉정한 사업주는 퇴사를 요구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가족들은 하나 둘씩 남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렇게 아내가 먼저 남자의 곁을 떠났고, 자식들마저 장애를 가진 아빠 모습이 부끄러워 연락을 끊었다. 남자에게는 한쪽 팔을 잃은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 남자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서 외롭게 살며 살아야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을 때 지인의 권유로 국제결혼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다시 한번 마지막 생을 위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와의 나이차이, 장애, 경제적 불안은 남자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주변의 시선도 따가웠지만, 본인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었다. 지인의 응원이 아니었으면 아마 포기했을 거라고.
 아내와 첫 만남은 화상통화였다. 수줍게 인사를 했던 아내의 모습에 남자는 너무 부끄러워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그런 남자에게 아내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한국으로 온 후 아내에게 남자는 자신의 어떤 면이 그리 좋았냐고 물었더니 “웃음요. 착해 보이는 웃음이 좋았어요.” 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남자는 베트남 아내와의 두 번째 결혼은 설레기도 했지만 많이 두려웠었다고.
 그렇게 이 부부는 서툰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났다. 비록 지인의 땅을 빌려 컨테이너로 만든 집이었지만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아침이면 문화차이로 늦잠을 자는 아내를 위해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운 야채로 주스를 만들어 주면서,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 네 살짜리 아들의 투정을 보면서 이게 행복이구나, 라고 남자는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남자에게 결혼은 마법과도 같은 큰 변화였고, 삶의 끈이었다.
 그러던 중 둘째 아이의 임신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나라도 잘 기르지 없는 살림에 또 낳아? 라고 주변 사람들은 수근 댔지만 부부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아들을 위해서는 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신 3주째 병원에 갔을 때는 기쁜 소식과 함께 아내의 상피내암 진단까지 같이 들어야 했다. 몇 년전 남편의 위암 수술을 받았던 이들 부부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서로를 안고 펑펑 울었다고. 컨테이너 위로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슬프고 아팠다면서, 역시나 행복은 과분한 욕심이었다며 남자는 자책했다.

 연락을 받고 방문을 했을 때는 컨테이너 옆으로 걸려 있는 빨랫줄에 미쳐 걷지 못한 옷들이 아침 서리에 얼어 있었다. 부부는 병원을 다녀 온 뒤로 아들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잠깐 움직일 뿐 마실을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고 이웃주민이 걱정스럽게 이야기 해줬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아 양배추와 당근이 시들어 있었고, 아내의 건강을 위해 남자가 정성스레 말리고 있던 돼지감자는 그대로 서리를 맞아 검은 곰팡이가 힐긋 했다. 그동안 수거해 놓았던 폐지는 내다 팔지 못해 빗물에 젖어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던 닭장은 주인의 손길을 잃어 쓸쓸해 보였다. 닭 한 마리를 거뜬히 잡아 남편의 점심식사 준비를 한다면서 환하게 웃던 아내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손님을 맞이하는 건 마당 한 켠에 있는 아들의 빨간 장난감 자동차 뿐이었다. 


 나는 아귀가 맞지 않아 덜컹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역국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남자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아내의 생일날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한손으로 미역국을 끓인 건 처음이라며 머쓱해 했다. 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일상 앞에서 한동안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남편의 의수를 만지며 울기 시작했다.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자는 많이 겁이 났다고. 본인이 가정을 꾸리기에는 너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욕심을 부린 죗값이라고 자책했다. 작은 행복도 본인에게는 사치인 것 같다고 왈콱 눈물을 쏟았다.
 가정을 제대로 꾸릴지 몰랐던 남자는 두 번은 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는 자녀들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기에 아내와 함께 열심히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었다. 아내는 서툰 한국어로 마음을 전달하면서 남편의 왼팔이 되어 주고 싶어 싫은 내색 없이 같이 폐지수거를 다녔다. 그런 아내가 너무 고마워서 잠이 들면 남자는 아내의 거친 손에 로션을 조용히 발라주며 말없이 사랑을 표시했었다고.
 이 애틋한 부부를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 줘야 할 것인지, 무엇이 이 부부를 위한 길인지 막막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며 끝없이 내게 되물었다.

 다음날, 우리는 긴급 사례회의를 열었다. 이 부부가 영광군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역 자원과 연계하여 우선 시급한 수술비와 거주지 마련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기로 했다. 그리고 차후 이 가정에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남자의 선택이 옳고 그름의 판단은 지금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부부로 만났고 지금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 현실과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잠시 주저앉았을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부부의 손과 발이 되어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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