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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우수상)장희령_그녀의 마음에 핀 가족이라는 꽃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4 조회 : 701

그녀의 마음에 핀 가족이라는 꽃

 

장희령


 그녀가 시어머니 손을 꼭 잡고 센터에 처음 방문 하던 날, 영광 곳곳에 활짝 핀 상사화 꽃 위로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상사화 꽃이 영광군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을 가을이 익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결혼을 해서 왔다. 인천공항에 첫 발을 딛고 이곳 전남 영광까지 세시간 삼십 분 동안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긴 사다리처럼 뚫린 도로가 진짜 신기했었다고 태어나서 처음 봤다면서 센터에 회원 접수를 하러 왔을 때 캄보디아어로 설명을 했던 그녀의 토끼 같이 놀란 눈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은 인천공항처럼 다 멋지고 좋은 줄 알았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논과 밭이 전부였다고, 혹시 내가 나쁜 사람에게 끌려오지는 않았나 무지하게 걱정이 되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밭에서 키우는 채소가 너무 좋다고 한다. 밭에다가 캄보디아에서 가져온 씨앗 선덱구어(긴 콩), 드러구넌(우리나라 시금치와 비슷)를 재배하여 먹는다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선덱구어를 유난히 좋아한다고 이제 발갛게 물들기 시작한 홍시처럼 수줍게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화 꽃이 다 지고 잎이 자라나고 있을 때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녀가 급하게 센터로 방문했다. 숨을 헉헉 거리며 계단을 올라온 그녀의 하얀색 운동화가 흙탕물에 젖어 있었다.
˝남편이 연락이 안돼요. 시어머님도 집에 없어요. 빈 깡통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와 지금 내 마음의 소리가 같아요. 남편이 사라졌어요˝
 본인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치면서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센터 캄보디아 통번역사가 통역을 하면서 전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찾아서 영광읍을 다 돌아다녔다는 그녀가 센터 문 앞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추워서인지 불안해서인지 그녀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경찰서와 마을 이장님께 서둘러서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남편 한 사람을 보고 낯선 한국땅을 선택했다. 이곳에서 믿고 의지 할 사람은 남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남편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아마도 어린애가 집을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과도 같은 심정처럼 답답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녀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일단 서툰 한국말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과, 집에서 남편이 돌아올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녀 말로는 시어머니께서 새벽에 남편을 데리고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며칠 몸이 많이 아팠었는데 어디를 갔는지 걱정된다고 했다. 밭에 가는 줄만 알았는데 하루 종일 들어오지 않았다고, 무섭다고 했다. 나는 몇 번이나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퇴근 무렵 시어머니가 며느리 손을 잡고 센터로 방문했다.
“선상님 우리 며느리가 캄보디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능가요? 지 남편 아퍼서 병원에 누워 있는디 저 꽃다운 나이에 여기 있으면서 고생허믄 안되제라.
 나도 우리 며느리처럼 부모 없이 홀로 고아로 컸제. 글고 저 나이에 시집가서 고생을 많이 허고 살아서 알아. 다시는 안돌아오는 이뿌고 꽃다운 나이제. 더 정들기 전에 어여 지 고향으로 보내서 잘 살아보라고, 우리 아들이 두 번째 결혼인디 첫 번째 며느리는 우리 아들 아픈 것을 알고 집을 나갔어. 참 모진 사람이었제. 그 뒤로 우리 아들이 얼매나 힘들어 했는지 몰러. 아예 결혼을 생각도 안하던디 야를 만나고는 저렇게 좋아지내드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눈 감아도 괜찮겠구나 했제”
 시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엄마 나 안가요. 여기 살아요. 남편 내가 지킬께요. 남편 보고 싶어요. 나 캄보디아에 가도 엄마 아빠 없어요. 나 남편 사랑해요.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어요”
 그녀가 시어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이것아 니 남편은 지금 니가 보믄 놀래 자빠져부러야. 여기저기 주사바늘을 몇 개나 꽂고 있는지 원…. 불쌍해서 볼 수가 없시야…. 인자 니 남편은 일어나기 힘들어. 얼릉 니 나라로 돌아가서 너라도 잘 살아야제.”
 시어머니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손수건을 꺼내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쉽게 멈추지 않을 듯 한 눈물이었다.
“선상님 나도 왜 우리 며느리를 안잡고 싶겄소. 허지만 내 욕심 채우자고 데리고 있으믄 나 죽어서 죄 받는 거여라…. 울 아들 저렇게 아퍼서 누워 있는디 내 마음은 찢어졌는디…. 그래도 안되는 것은 안되지라…. 나도 며느리 나이에 남편 잃고 혼자 살아서 그 모진 세월을 잊을 수가 없어…. 선상님 우리 며느리 얼릉 친정으로 가라고 말씀 좀 해주쇼. 내가 방법을 몰라서 이리 와서 부탁허요.”
 시어머니께서 내 두손을 꼭 잡고 부탁을 했다. 답답한 며느리가 지 남편 아픈지도 모르고 남편을 찾는다면서 가슴을 쿵쿵 치셨다.
 
 사실은 결혼하기 전에 아들이 간과 폐가 좋지 않아 많이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며느리가 아들을 따라서 한국으로 오고 싶다고 간절하게 원해서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결혼 후에 아들이 갑자기 병이 악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며느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드라고. 그런데 지금은 너무 후회된다고. 내 욕심으로 며느리 인생을 망치는 것 같아 너무 후회스럽다고 울고 또 우셨다. 그래도 남편이 있는 곳에 며느리를 데려다 주시면 안되겠냐는 물음에
“지금 지 남편을 보믄 안돼요. 나도 차마 눈뜨고 못 보겄는디, 그 어린것이 어찌
감당하겄스요. 조금 더 좋아지면 만나라고 해야지요. 지금은 안되지라우.”
 시어머니 손에는 비에 젖어 있는 한글학습놀이판이 있었다. 나는 빗물을 닦아주며 이것은 왜 샀냐고 물었다.
“울 며느리가 얼릉 한국말을 배워야 나 죽어도 여그서 살 수 있제. 저렇게 여그서 살겄다고 고집을 피운디 내가 뭣을 해 주겄어. 그래서 내가 책방에 가서 사왔제. 우리 며느리 방에 붙여 놓을라고….”
 시어머니는 구부정한 허리와 불편한 다리로 한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한글학습놀이판을 사오신 것 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급하셨을까? 소통이 안되는 며느리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시어머니는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그날 시어머니의 마음에서 막 피어나고 있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센터직원들과 회의를 거쳐 남편을 도울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가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한국어 사전평가를 볼 수 있도록 권유했다. 결혼이민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국어 강사 선생님께 상황설명을 하고 한국어교육 자원봉사를 부탁했다. 정규 수업 시간 외에 강의실 문을 열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누구에게 남편 소식을 물어보고 싶지만 소통이 되지 않아 혼자 가슴앓이만 했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기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나는 시어머니를 설득시켜 남편이 있는 병원 연락처를 알아냈다.
남편하고 어렵게 통화가 되었다. 남편은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는 중이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왜 아내에게 말없이 가셨냐는 질문에
˝편지를 쓰고 왔는데 그걸 아내가 몰랐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제 아내에게는 금방 돌아간다고 잘 있다고 전해주세요. 지금까지 저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은 그 사람 이 처음 입니다. 저는 꼭 돌아가서 제 가족을 지킬 것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남편의 목메이는 소리가 전해졌다. 우리는 그녀에게 남편이 연락이 왔다고 잘 있다고 전하면서, 얼른 한국말을 배워 남편하고 통화를 하라고 하면서 남편이 있는 병원 연락처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전화기 앞에서 앉아서 손에 쥔 남편의 연락처를 보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많은 것이 궁금하고 당장이라도 남편에게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직접 통화를 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눈물에 모두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서툰 한국말로 혼자 중얼거렸다.
˝여보세요. 남편 사랑합니다. 얼른 돌아오세요˝라고.
 피어있는 동안 상사화 꽃은 절대로 잎을 만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들은 처음부터 한 뿌리에서 생겨난 가족이었던 것처럼, 오늘도 그녀는 시어머니의 사랑과 남편의 사랑을 가득 안고 마음속 한곳에 가족이라는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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