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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우수상)안숙자_수요일 그리고 봄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4 조회 : 709


수요일 그리고 봄

안숙자


그의 눈동자는 한 겨울의 잿빛하늘 같았다.
절룩거리던 그의 한쪽 다리는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느껴졌다.
웃음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던 얼굴.
생기 하나 없던 그의 낯빛은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와 꼭 닮아 있었다.
남편친구의 가구공장을 오갈 때마다 더러 마주치고는 했던 그에게 나는 말 한마디 먼저 부치지 않았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던 그의 검은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그의 차가움 때문이라고 치부하며 인사 한마디 않고 지내었다.

하지만 남편이 퇴직 후 친구의 가구공장을 인수하면서 나는 결국 그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첫 인사를 나누어야만 했다. 몇몇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던 공장에서 그는 나이가 제일 많은 고령자이자, 가장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네팔……. 네팔 사람이예요. 이름은 락파... 한국말로 하면 수요일..이란 말이..여여요.”
수요일? 이름이 수요일이라고?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평생 써야 할 이름을 어쩌면 저리 성의 없이 지었나 했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다쳤다는 다리.
한국말도 곧잘 하면서 식사 할 때 외에는 열지 않던 굳게 닫힌 그의 입술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남편과 나는 그를 계속 고용해야 할지 망설였었지만 남편 친구는 몸이 불편한 락파는 다른 직장 구하기가 힘들 것이라 하며 락파만은 계속 일하게 해 달라 간청했었다.
남편은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였고 락파와의 원치 않는 동거는 계속 되었다.
나는 그가 눈엣가시 같았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굼뜬 락파가 행여 공장에 피해가 되지 않을지 염려하며 한동안은 감시하듯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내 염려와는 달리 그의 이름과도 달리 참으로 성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다른 직원들에 비해 손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점심을 먹고도 커피 한잔 마시지 않고, 야근을 도맡아 가며 누구보다 성실히 일을 해 주었다.

락파는 무서워 보이던 인상과는 다르게 참으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락파! 밥 먹어요. 점심 먹어요!”
하고 부르면 그는 항상 대답 대신 웃어 주었었고, 변변한 찬이 없던 날에도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주며 음식이 맛있었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까지 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락파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앞니가 하나 빠져 더 어수룩했던 그의 말투도, 수줍은 그의 미소도 귀엽게 까지 여겨졌다.

가구공장일이 서툰 남편과 나를 대신해 목재를 고르는 일부터 납품 일에 맞추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한지도 꼼꼼히 알려 주었다. 설명하기 힘든 단어는 핸드폰의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그도 안 되면 온 몸으로, 그래도 우리가 못 알아먹으면 그림으로 설명까지 해 가며 도와주었었다.
첫 월급을 락파에게 지급했던 다음 날.
락파는 네팔 카레를 만들 재료라며 커다란 비닐봉지까지 들고 출근을 하였고, 점심시간은 틈타 감자와 닭고기, 이름을 알 수 없는 빵까지 만들어 정성스레 카레를 만들어 주었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네팔카레는 맛있다고 하기 보다는 오묘한 맛이었지만 그의 순박한 성심에 나도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세워 들며 맛있다고 해 주었다.
“락파... 락파를...계속 일하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쑥스러운 듯 고개도 들지 못하며 감사를 전하던 그의 모습은 아주 어린 꼬마 아이 같았다.
주문이 밀리는 날이면 쉬는 날도 반납하고 나와 일해 주었던 락파.
조용하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해 주던 그가 있어 나와 남편은 힘에 부쳤던 공장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가끔 힘겨운 일을 마치고, 소주 한잔을 사이에 두면 그의 눈가는 촉촉해 졌다.
낡디 낡은 지갑 속에서 넷이나 되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 주며 그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했다. 그리고 늘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었다.나는 그런 락파를 보면 이상하게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를 외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편견을 가졌었던 많은 날들이 한없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남편은 은퇴 후 죽는 날까지 일 할 거라며 인수 했던 가구공장을 채 10개월도 운영하지 못하고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달리했다.
가족들과 친지들, 남편의 친구들, 남편의 동료들은 장례식을 찾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고,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었지만 락파는 향만 하나 피워 주고는 도망치듯 사라졌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리고 남편의 발인 날에도 장례식장 앞 간이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락파의 모습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먼 곳에서도 보이는 사람이어서 나는 그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겨울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고 몸도 불편하였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 나누어 보지도 않은 채.
그의 피부색을 그의 모국을 그의 이름만을 듣고 그를 평가했던 나의 얼어붙은 마음이, 나의 싸늘한 시선이 세상 누구보다 착하고 아름다운 그에게.
머나먼 타지에서 겪어야 하는 시리고 혹독한 겨울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반성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락파는 나를 한번 찾아 왔었다.
사장님은 다른 세상으로 간 것이니 너무 슬퍼 말라고, 네팔에서는 울지 말아야 좋은 곳에 간다고 믿는다는 락파의 말에 나는 입술을 꼭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그는 봄 같은 사람이었다.
봄처럼 따스하고, 봄마냥 맑은 사람.
그의 희뿌연 눈빛은 그의 웃음에.
그의 검은 피부는 그의 마음씨에.
그의 서투른 말투는 그의 포근함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그는 내게 수요일이란 이름을 가진 네팔인이 아닌 봄을 닮은 사람으로 추억 속에 남겨 져 있다.
외국인도 회사 직원도 아닌 그저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친구로 나는 그를 영영 기억할 것이다.

겨울이 지나야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것처럼.
외국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어야만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따사로운 봄날이 시작 되는 것이라고 이제는 내가 세상 모두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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