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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우수상)민쉐_천 번을 흔들리며 피는 꽃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4 조회 : 696

<천 번을 흔들리며 피는 꽃>

 

민쉐

 

   얼마 전에 서울대학교 김남도 교수님의 명작 베스트셀러<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이어서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읽고 참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나의 아픈20대와 흔들리는 30대 너무나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멀고 험한 인생길 앞에 홀로 서게 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답답한 마음 가뜩 찬 뿐 이었습니다.
   22세 어린나이에 시집을 와서 대한민국에서 살아 남기위해 남보다 백배 더 노력하고 땀과 눈물을 흘리며 어느새 10여년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인생의 불운한 시기에 원인이 알 수 없는 질병까지 온몸에 휩싸있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매일고통 속에 헤엄치며 긍정의 마인드 하나로 버티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농사꾼 집안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순박하고 선량하신 분들이셨고 농사를 지어 나의 학비를 대주셨다. 비록 생활환경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화목한 가정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조용한 편이며 말수가 없고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4년이나 반장을 했고 원하던 고등학교에도 졸업했다. 대학은 합격했지만 갈수가 없어다 ...
  때는1999년 낭랑18세. 한참 공부할 나이, 청춘, 도전 상징하는 시기에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강요로 전자회사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꽃 같던 청춘의 나는 그렇게 현실과 마주하고 꿈을 향해 날아오르려던 날개를 접어야만 했다. 그전자회사는 한중 합작회사였기에 입사 1년 후 한국으로 와서 2년간의 연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멀고 험한 파촉 산길에 나그네 여정 힘들기만 한데. 어지러운 산 잔인한 눈이 내리는 밤에 만리타향 헤매는 외로운 나그네 신세.”19살 어린 소녀가 고향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매일 밤 고향 생각에 울며 밤을 새웠다. 혼자 외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도중에 저에게 다가온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6살 연상의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제 첫사랑이자 전 남편입니다. 3년의 연애 끝에 중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걸까요? 살아가면서 사소하지만 빈번하게 발생했던 성격차이와 문화차이를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군다나 게임 중독과 주식 중독이 심해져 전 재산을 날려도 정신 안 차리고 의처증 까지 생긴 나머지 결국 2011년에 협의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가진 게 빚 밖에 없는 신랑이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포기하고, 양육비 없이 저 혼자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 7살짜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아이와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 나가야하는데 막막했습니다. 당시에 이미 한국국적 취득이 된 상태라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 집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딸을 데리고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 했어 고려 끝에 동사무소에 가서 개인관계로 인한 초등입학 지연 신청 하고, 아이를 중국 친정댁에 1년간 맡겼습니다.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서 딸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요리도 배우지 않고 뭐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래서 그길로 요리학원을 등록하였고 원장님의 소개로 나는 전 과정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3개월의 교과과정 중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고 거의 매시간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내게 어려운 것은 실기가 아니라 필기였다. 중국인인 나에게 한글은 너무도 생소하였는데 특히 책에 나오는 보건법, 환경법이나 음식물 중독 등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기억되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서 불가능이 없다 도전하자 외치며 한국어를 대해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전자사전은 어디서나 들고 다니며 한식조리기능사책을 읽어보면서 중요한 것들을 모두 정리해서 공책에 베껴 적고, 하루 3번씩 시험예상문제도 풀었습니다. 그 덕에 나의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고, 머지않아 2012년 2월 한식조리기능사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에 운전면허증도 취득했습니다.
  한손에 조리사자격증을 들고 또 한손에는 운전면허증을 들고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중국에 가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꼭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찡하고 짠했습니다. 다시 이 어린 아이의 손을 놓치지 말자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나는 구인광고보고 인근병원에서 조리사로 2년간 근무를 했습니다. 조리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매일 새벽 5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어린 딸아이 잠든 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초등1학년부터 2학년까지 매일아침을 혼자 챙겨먹고 등교하는 딸아이한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한참 챙겨줘야 할 나이인데..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 함께하기 위해 병원 일을 그만두고 미용을 선택했다. 작은 미용실을 개업해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미용 시험에 조리사 자격증 시험보다 더 어렵고 비용도 훨씬 더 비싸다는 걸 몰랐습니다. 연습용 가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겨울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죽기살기로 연습하였다. 가장 일찍 가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하였고 하루가 끝난 밤에야 밥을 말아 주린 배를 채웠다. 다른 사람들은 서너 번 응시해서 겨우 합격하는 미용 시험을 나는 필기, 실기 모두 한 번에 통과하였다. 


  너무 무리 했어 그런 걸까요? 미용사자격증 발급받게 되었을 때 쯤 건강했던 몸이 갑자기급격하게 이상이 왔습니다. 팔 다리 힘이 없고 물건을 잡는 것까지 힘들었습니다. 불안한마음으로 전남대병원 신경과에 찾아갔습니다. 정밀검사를 통해 최종진단결과는 ‘섬유근육통’이였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과하여 발생하는 만성 질환이라고 하였습니다. 초반에는 손발 저림과 무기력증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통증이 온몸에 퍼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입니다.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제껏 열심히 살아왔는데 도대체 어디서 잘못되는 건지 ,하루하루 통증이 심해져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게 힘들 정도였고, 파스 한통을 온몸이 붙여야 잘 수 있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 일뿐 . 하지만 내 딸은? 이렇게도 무고한 내 딸은?세상에 홀로 있는 것 같이 외롭고 씁쓸했습니다. 우울증과근육통증이 심해지고 불면증까지 동반되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일상생활이 안 되니 매일 침대를 누워 책을 읽으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텼습니다. 어느 날, 책에 한 소절이 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따뜻한 햇살같이 저를 안나주었습니다. ‘그대 너무 좌절하지 말라 ,이 좌절이 훗날 멋진 반전이 되어줄 것이다. 위기가 깊을수록 반전은 짜릿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내 인생의 반전드라마는 끝내 완성되어야만 한다.’ 맞아, 난 아직 희망이 있다 ! 내가 날 버리지 않는 한 누구도 날 버릴 수 없다 !나는 대한민국 엄마다, 딸을 위해 내 자신을 위해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그날이후 난 힘든 고통을 참고 걷기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천천히 걷기연습하고, 딸이 학교 갔다 오면 같이 손잡고 밖에 나가서 걷기연습하고..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했습니다. 운동 끝나고 둘이 나란히 동네 그네에 앉아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그려보며 밤하늘 별들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빛날 수 있을 거라 서로 믿고 다짐 했습니다. 그 덕에 전 지금 편히 걸을 수 있어 고, 독서 치료 과 음악치료를 통해 전 우울증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네 생에서 가장 빛나는 날은 성공한 날이 아니라 비탄과 절망 속에서 생과 한번 부딪쳐보겠다는 느낌이 솟아오른 때다.
  2015년10월부터 지금까지 “커피바리스타2급, 토픽5급, HSK5급, 안전교육지도사.. ”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것은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15년 전에 내가 짝사랑 했던 한국인오빠가 아직 미혼 였고 우리는 좀 있으면 결혼 할 예정입니다. 아직 몸이 아파서 일은 못하지만 집에서 간단한 문장변역하고 생계유지하고, 현재 대학진학을 준비 중이며 내년에 방송통신대학교 등록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병원치료와 운동치료를 하면서 더 많은 지식을 배우고 대한민국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 할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생기고 예전에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참 많이 흔들렸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김남도 교수님의 말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 ,천 번에 흔들림을 통해서 더 성숙한 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난다.
  나는 바로 천 번을 흔들리며 피는 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꽃 한 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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