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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특선)김성준_한지붕한가족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2 조회 : 518

한 지붕 한 가족

김성준

  몇 해 전, 나는 분노에 꽉 차 있었다. 요즘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되는 ‘분노조절장애’ 그것이 내 상태였던 것 같다. 목 디스크와 허리디스크가 너무 심해져 회사를 그만둬야 했지만, 근속 1년을 못 채워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서른 살을 넘긴 나이에 가진 거라곤 원룸 보증금 500만 원과 아르바이트를 뛸 몸뚱이밖에 없었다. 마지막 월급은 방세와 보험료와 카드결제 날짜에 와르르 무너졌다.
  한창 때 남자가 실직을 하고 땡전 한 푼 없다면, 그가 심리적으로 정상이길 바라는 건 무리다. 모두 날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을 텐데도, 그들은 내가 실직했다는 것, 빈털터리라는 것, 딱히 희망도 미래도 내일도 없다는 걸 아는 듯했다. 화가 났다. 모두에게. 나는 심리적으로 혼자였다.
  교도소만 감옥이 아니다. 공간에 압박을 받으면 그곳은 곧 감옥이 된다. 내 원룸이 그랬다. 실의에 빠져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재소자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나의 고통을 더 키우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이웃이었다. 내가 살던 원룸은 한 층에 방이 총 6개가 있다. 그렇게 총 5층짜리다. 한 방에 한 명씩 산다 해도, 좁은 공간이 30명이나 사는 셈이다. 그러니 갈등이 없을 리 없다.
  진짜 갈등은 외국인 유학생들과 빚어졌다. 외국인들과는 대화가 원활히 되지 못한다. 그게 문제고, 모든 갈등의 시작이었다. 내 방 바로 아랫방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여학생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허구한 날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전화통화도 큰소리로 해서 그 소리가 다 들렸다. 그 방 출입문에 포스트잇도 붙여봤지만 허사였다. 정말 한국말을 모르는가? 혹시 아는데 모른 체 시치미를 떼며 약을 올리는 건 아닌가? 이런 피해망상까지 들 정도였다. 결국 한밤중에 그 여학생 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불같이 분노했다. 그 분노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그 여학생과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내 방 맞은편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 학생은 공용세탁실을 사용한 후에 항상 세탁실 문을 열어두곤 했다. 세탁실에는 세탁기와 보일러가 즐비해 있어서 문을 열어두면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피해자는 세탁실에 가장 방이 가까운 나였다. 나는 세탁실 문에 메모를 붙여 놨다. 밤에는 세탁을 자제하고, 사용 후에는 반드시 문을 닫아달라고. 하지만 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맞은편 중국인 학생은 밤 12시에도 세탁기를 돌렸고, 늘 세탁실 문을 열어뒀다.
  자정이 넘어 탈수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던 날,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날은 아침부터 여기저기 이력서를 쓰고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터라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 다음 날은 오전에 면접을 가야 했기에 일찍 자야 했는데,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 세탁실 문을 부서져라 쾅 닫았다. 다시 문을 잡아당기고는 또 쾅 닫았다. 또 당겨서 쾅 닫았다. 쾅! 쾅! 쾅! 쾅! 쾅! 분노의 폭발음 같은 소리가 자정을 넘긴 원룸을 공포에 벌벌 떨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때는 살인이라도 벌어질 분위기였다.
  내가 씩씩거리며 도로 내 방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맞은편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이상하게도 얼굴은 백인처럼 하얀데 이목구비는 동양인 같고, 머리카락은 노란 중국인 유학생이 앳되고 겁먹은 얼굴로, 아주 서툰 한국어로 “문제 있어요?”라고 내게 물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시건방지고 기분 나쁜 말이지만, 한국어 발음 상태를 보니 저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가상할 정도였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이 학생은 한국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걸. 그래서 세탁실에 붙여놓은 메모를 읽지 못했다는 걸. 나는 그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통화소리만 듣고 그가 중국인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가 이제 막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하나도 모른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면접에 갔다 와서 침대에 걸터앉는데, 어젯밤 내 행동이 정말 심했고,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 냉장고에서 사과 몇 개를 꺼내서 중국인 학생의 문을 두드렸다. 거의 매일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는 걸 냄새로 알았기에 신선한 과일이라도 주고 싶었다.
  과일을 내밀자 그의 하얀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무섭다는 건지. 하긴 간밤에 그 난리를 쳐놓고 난데없이 사과를 내미니 백설공주 계모처럼 독이 든 사과를 주는 게 아닐까 겁이 날 법도 했을 것이다.
  사과에는 당연히 독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과 덕에 나와 그는 14살이라는 나이차와 국적을 넘어 친구가 되었다. 사과를 든 채 그와 몇 마디 나눠보자 한국말을 정말 너무나 모른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저래서 혼자서 어떻게 유학생활을 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나도 정 깊은 한국인이다 보니 스무 살짜리 중국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기에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뭐든 남게 마련이다. 인터넷으로 과일을 주문해도 양이 많고, 웬만하면 1+1이라 항상 방에는 과일과 물건이 남아돈다. 나는 그걸 그와 나눴다. 그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나의 친절을 계속됐다.
  그가 중국 갔다가 귀국하던 날 내 방문에 노크소리가 났다. 그의 손에는 말린 과일이 쥐어져 있었다. 내가 늘 과일을 주다 보니 내가 과일을 아주 좋아하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그 선물을 받고, 심리적 감옥의 벽에 금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반드시 언어가 매개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가 부계로는 유태인과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 모계로는 동남아시아 쪽의 혼혈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래서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과 생김새가 특이했던 것이다. 그는 그 자체로 다문화였고, 나는 그 점이 참 신기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의 일이다. 들뜰 때였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면접은 열심히 다녔지만 연락 오는 데는 없었고, 그나마 연락이 오는 데는 나이를 구실 삼아 연봉을 확 깎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그날도 나는 추운 날씨에 아르바이트를 무리하게 하다가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급기야 기관지염까지 심하게 도져서 목에 피가 날 정도로 기침을 하고 있었다. 기관지염에 처음 걸려봐서 그게 그냥 감기인 줄만 알고 방치했던 것이다. 휴일이라 병원은 문을 열지 않았고, 응급실을 가자니 병원비가 무서웠다. 침대에 누워 피까지 토하며 기침을 해대는 탓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고열 탓에 몸은 뜨거웠고, 침대는 땀으로 축축했다.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나는 완전히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처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둠 속에서는 내 손이 보이지 않았다. 내 다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사회에서도 지워지는 게 아닌가 하고, 병과 싸우는 중에도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뭔가 인기척이 느껴져 실눈을 떠보니 어떤 물체가 내 방 벽을 더듬고 있었다. 도둑인가……. 내가 문을 잠그지 않았었나……. 도둑이라 한들 저항할 기운이 없었다. 어차피 훔쳐갈 것도 없었다. 그래도 도둑이라면, 정말 도둑이라면 내가 있는 걸 알 텐데 도망을 쳐줘야 예의가 아닌가. 이젠 도둑까지 날 투명인간 취급하나 싶었다.
  매서운 기침을 가까스로 누르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때 방의 전등이 탁 켜졌다. 도둑인 줄 알았던 그는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내 방 안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있었다. 노크를 계속했는데 반응이 없어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긴 요란한 기침소리 탓에 노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가 손에 쥔 비닐봉투가 부스럭거리며 내 눈길을 끌었다. 편의점에서 산 감기약이었다.
  상비약으로 나을 정도가 아니었지만, 펄펄 끓는 몸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맺히는 걸 느꼈다. 그와 나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문이 있었고, 그래서 그는 나를 볼 수 없었지만, 내 기침 소리를 듣고는 심상치 않다고 여겨 약까지 사서 온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행동했던가. 나와 그 사이에 쳐졌던 벽, 그러니까 언어의 벽으로 인해 그를 오해했을 때 나는 쾅쾅 소리로 위협하지 않았던가. 나를 그를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단정 짓고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는 두꺼운 벽을 핑계로 날 모른 체하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따뜻한 온정은 벽으로 막을 수 없다. 벽은 사람이 세워둔 것이지만, 그걸 허무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우린 한 지붕 아래에 살았지만, 내 무지 탓에 벽이 세워졌었다. 그러나 그는 3천 원짜리 감기약으로 그 벽을 무력화시켰다. 지구라는 한 지붕 아래서, 국경이라는, 인종이라는 벽을 세워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울까. 내 쪽인가, 저 학생 쪽인가. 그러고 보면 이 원룸이라는 작은 공간은 지구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다.
  그는 인근 대학의 국문학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몇 달 전 독일로 유학을 갔다. 중국어가 모국어지만, 히브리어와 폴란드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꽤 잘하며, 한국어는 이제 거의 막힘이 없다. 무엇보다 여러 문화를 섭렵해서 그런지 나와 허물없이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에게 고맙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외로울 때 사다준 그 약은 비록 내 몸은 못 고쳤지만 마음은 어루만져준 것이었다. 한국식 이름 이선호 씨, 고마워요. 그리고 좋은 인연을 맺게 돼 정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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