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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특선)김보미_고통의구슬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1:02 조회 : 584

고통의 구슬


김보미


  학교에 다닐 때는 어서 어른이 되어 사회로 나가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좀 다를 것 같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내가 뇌병변 장애 3급의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뒤틀린 팔다리 때문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며 걷는 나를 아이들은 괴물이라고 불렀다. 경직된 근육 때문에 발음이 어눌해서 내가 입만 열면 모두 깔깔 거리고 웃었다.
 툭하면 얻어맞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급식시간이면 음식물 찌꺼기가 날아들기도 했다. 울지 않으려고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엄마는 절대 결석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장애인일수록 더 배워야 한다고.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다며 매일 나를 업고 등교를 시켜주셨다. 그러니 어서 어른이 되어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이 희망일 수밖에.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학생시절이 끝나고 나는 그토록 소망하던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두세 번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어렵사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까지 했건만 마음 터놓고 말을 건넬 친구 하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절망감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괴물일 뿐이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언니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무료 공부방을 운영할 계획인데 자원봉사자로 일할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고, 뭔가를 같이 하자고 하는 게 기쁜 나머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예전부터 부모님이 퇴근할 때까지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언니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도 소개받았다. 다들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집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일이 끝나면 서둘러 공부방으로 달려가 서툰 솜씨로 간식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과 조금씩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처음엔 내 발음이나 팔다리에 호기심을 보였다. 전처럼 놀림을 받게 될까봐 두려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엄하게 단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공부방 일에 익숙해지자 하루하루 신이 났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기쁨이 흘러넘쳤다. 선생님들과 회의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며 점점 친구가 되는 것도 좋았다. 그토록 꿈꾸던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공부방을 소개해준 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먼저 다가갈 계기가 없어 고민하다 꺼낸 말인데 이렇게 잘 적응해줘서 고맙다고. 뭐든 열심히 하고,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는 내가 보기 좋았다는 언니의 말에 새삼 가슴이 뿌듯했다.
 그렇게 공부방이 내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 갈 때쯤, 소라를 만났다. 소라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가 직접 소라를 데리고 공부방에 찾아오셨다. 


 나는 소라를 지도할 선생님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간식을 챙겨줬다. 소라의 또렷한 쌍꺼풀이 예뻐 보여 칭찬의 말을 건넸지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다문 입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옛날 내 모습이 생각났다.
 다음날부터 소라는 혼자 공부방에 찾아왔다. 소라의 어머니가 다문화 가정 지원사업으로 직업 훈련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방과 후 부터 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까지 공부방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나는 내심 소라가 반가웠지만 아이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런 소라를 낯설어했다. 같이 쿠키를 만들기로 한 날, 아무도 소라하고 짝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억지로 조를 만들어주자 아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쿠키가 완성되면 다 같이 나눠 먹기로 했는데 소라네 조가 만든 쿠키는 아무도 먹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들과 내가 소라네 쿠키를 먹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소라를 피하거나, 놀려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말리고, 야단을 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돌림은 계속 되었다. 소라는 신경 쓰지 않는 척 무표정했지만 나는 그 애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학창시절 내내 당해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놀이방에 남은 소라의 손을 잡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맞잡고 눈물이 고인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겪은 그 지독한 일들을 소라도 겪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소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소라 못지않은 괴롭힘을 당하던 내가 친구를 만든 건 공부방 덕분이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친구가 생긴 것이다.
 소라에게도 아이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주면 될 것 같았다. 고민하던 나는 시골집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왔다. 잡종이었지만 새하얀 털과 까만 코가 귀여운 강아지였다. 이 녀석이 소라의 친구가 되고, 나아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소라는 내 손에 들린 강아지를 보고 처음으로 눈을 크게 떴다. 강아지는 주인을 알아보는 것처럼 소라의 손을 연신 핥았다. 소라와 나는 강아지에게 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선생님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공부방 한 구석에 콩이의 자리를 마련했다.
 콩이는 예상대로 아이들에게 인기폭발이었다. 그 동안 소라 곁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쭈뼛쭈뼛 소라에게 말을 건넸다. 소라는 더듬더듬 콩이를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콩이를 만져보고 싶어 다가온 아이들이 점차 소라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늘 경직되어 있던 소라의 얼굴에 조금씩 웃음기가 어렸다. 그렇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소라는 점차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소라 어머니 말씀으로는 소라가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훨씬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데 자심감이 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이면 소라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소라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꿈이다. 자신 만큼 그들을 잘 이해할 사람은 없을 거라며 두 눈을 빛내는 소라가 참 대견하다.
 나 역시 그랬다. 지나온 시간들은 끔찍했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소라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고통의 구슬을 굴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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