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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상작 ]

(특선)고수매_오 나의 파트너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7-04-28 (금) 00:53 조회 : 520

오! 나의 파트너

고수매

  저는 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와서 배우고 쌓아온 경험과 자격으로 2010년부터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 이민통합지원센터 직원으로 근무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민자로서 한국에 정착한 저의 삶이 아닌, 저와 함께 근무해왔던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광주사무소에서 저의 첫 번째 파트너는 마음이 너그러운 김 계장님이었습니다. 처음 공공기관에서 일을 시작한 저는 한국의 직장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상하구분 없이 직원이 직접 상사를 찾아가 본인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인데 반해 한국의 직장문화는 상하관계가 있어 내 의견을 각 부서에 검토 한 후에 비로소 위 분께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면이 있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저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빨리 추진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소장님께 달려가 신나게 말씀드렸고 직설하고 감출 줄 모르는 저의 성격 때문에 직원들이 난감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장님이 직장문화를 알려줘서도 저는 오히려 조선시대도 아니고 거침없이 살아야지 늘 티격태격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계장님의 덕담에 한국직장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직원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사회통합정보망> 이 없던 시절에 사회통합프로그램, 국제결혼안내프로그램, 해피스타트 등 각종 교육신청서를 받아 시스템에 한명씩 직접 입력을 했고 교육 있는 날이면 저는 사무소 1층에서 4층까지 쉴 수 없이 왕복 뛰어 다녔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내게 “뛰어~~~!”라고 말한 계장님은 눈물 나게 얄미웠지만 교육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폭언을 할 때나, 업무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항상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셨습니다. 계장님은 민원업무를 보면서 저한테 “우리가 해야지~ 우리가 도와줘야지”라는 말씀을 수없이 하였고 “공부는 많이 해라 나중에 어떤 사람한테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잖아~~” 란 잔소리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 계장님의 잔소리 덕분에 저는 어느새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자가 되었고 저는 지금 그때 들었던 잔소리를 그대로 결혼이민자 후배들에게 하는 선배가 되었습니다. 김 계장님께서 사통업무 기반을 튼튼하게 만든 후에 다른 부서로 떠나게 되었을 때 저는 계장님이 본인의 사비로 어려운 이민자한테 학비를 도와줬었다는 선행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왜 말씀 안하셨냐는 물음에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건데 뭐......”라며 말씀을 아끼시던 계장님, 48살의 불혹 나이에 멋있게 본인에게 새로운 도전장을 던지면서 지금은 공직을 떠나셨지만, “도움은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나로서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이 되어 남을 돕는 것”을 가르쳐줬던 계장님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부님~ 항상 건강하시길~!


   저의 두 번째 파트너는 신 계장님이었습니다. 그 동안 <세계인의 날> 행사를 여러 방식으로 해왔지만 그 중 신 계장님과 함께 했던 <세계인의 날>이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그 때 모야모야라는 희귀불치병에 걸린 은비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섬에서 사는 결혼이민자 자녀인 은비는 아버지까지 건강이 안 좋아 경제수입도 적어 치료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계인의 날> 준비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신 계장님은 직접 섬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은비의 상황에 마음 아파하며 기부금을 마련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은비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 관중들에게 영상을 보여드리고, 야외 부대행사장에 준비하는 세계음식・명차 공예품 등의 판매 수익을 은비에게 기부로 결정하셨습니다. 보기에 쉬운 것 같은 계획이지만 실행하려하니 참 쉽지 않았습니다. 영상제작부터 저희들이 문외한이다 보니 난관에 부딪쳤고 우리의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계장님은 몇 번씩 섬을 오가며 수없이 편집을 했었습니다.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는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계장님의 그런 수고 끝에 세계인의 날 기념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고, 은비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람들은 천진난만 한 은비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 많은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계장님은 “더 많이 해주고 싶은데... 빨리 나아져 은비가 병원비를 걱정 안했으면 좋겠는데...”란 아쉬움을 남겨 두고 다른 사무소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종종 연락하던 계장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젊은 나이에 어린 자녀를 두고 세상에 떠났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밝게 웃고 계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의 세 번째 파트너는 똑똑하고 예쁜 여동생 같은 고 반장님이었습니다. 명랑한 성격이라 그녀가 온 후에 사무실에 웃음이 많아졌고 저랑 손잡고 점심 먹으러 나가면 다들 우리를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반장님은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었고 이민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저희 이민통합업무에 대해 애정이 정말 남달랐습니다. 그 자그만한 체격에 어디에서 어마어마한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저희는 친구들의 재능을 발굴해 시창착 동아리, 공예품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동아리를 만들었고 조기적응프로그램 강사 및 다른 기관에서 통역 등 친구들의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많은 심혈을 기울었습니다. 반장님은 자원봉사 하러 온 이민자 친구들에게 재테크 및 직업 진로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었고 덕분인지 친구들이 검정고시학원 및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외국인 관련한 단체에 취직한 친구들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저희 사무소의 이민자 네트워크, 멘토링, 자원봉사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이끌며 이민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we are together”는 특별한 행사가 아닌 날마다 작고 사소한 일상들을 우리가 함께 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민자들이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운영기관이 많이 있어야 하지만 이민자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잘 몰라 망설이는 기관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반장님이 만삭한 몸으로 추운 날씨에 직접 기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설명회를 많이 했었습니다. 반장님이 출장을 다녀오면 저는 그녀의 얼음장 같은 손을 녹여주면서 “당신은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위로해줄 때 그녀는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민자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 줘야지, 내가 해야지~” 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주말에 사회통합프로그램 평가시험이 많아 자주 출근해야 했습니다. 어떤 날은  반장님이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시험장 빈 공간에서 재워놓고 정작 본인은 다른 응시생의 아기를 안고 감독하기도 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우는 아기한테 달려가 아기를 꼭 안아주며 “우리 아들~미안해~이제 집에 가자”고 말하는 그녀의 작은 뒷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가끔 “당신은 일밖에 모르는 여자”라고 농담을 던지면 반장님은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힘들 때 내색 하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은 그녀에게 사명감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배웠습니다.
  우리 함께 지냈던 4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어여쁜 반장 아가씨가 사랑한 사람과 결혼해 한 남자의 아내로 또 한 아이의 엄마로 되어가는 모습에 내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저는 어리석게 영화는 감독과 배우 전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은 뒤에서 영화를 빛내는 스태프들이 있었다는 것을 내 파트너들과 <세계인의 날>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장소 확인, 공연팀 섭외, 홍보 심지어 시원한 물 한 병과 작은 장소안내판 하나하나까지 보이지 않은 곳곳에 그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관중들이 무대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저희 직원들은 안전한 행사를 위해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으며 무사히 행사를 끝난 뒤 아픈 팔다리를 주무르며 그제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법무부 장관표창을 받게 되었을 때 “저는 60여명의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을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을 뿐”이라 했던 영화배우 황정민의 말을 생각났습니다. 제가 대중 앞에 플래시 세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밥상을 차려준 제 파트너들 덕분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직원들뿐 아니라 민원상담 잘하시고 친절한 정 계장님과 배려심이 많은 지금의 파트너 고 계장님!
  저희는 오늘도 이민자들의 법률문제 위해 <마을변호사>회의를 개최하였고 찾아오는 민원과 상담하며 다가오는 주말평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입국에서 근무한 7년이란 세월에 <세계인의 날>과 함께 소중한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다른 지역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지만 그동안 제 파트너 분들의 땀과 심혈을 우리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소리 없이 모든 커피를 뒷받침해주는 에스프레소 같은 각 기관 직원들과 현장에 계시는 사회통합 선생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글을 마무리 할까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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