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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_한국생활이 너무 행복합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3-26 (목) 22:32 조회 : 1073

 한국생활이 너무 행복합니다.

 

 

 중국에서 시집온 지 13년이 되는 다문화 주부 김애화 입니다. 친정부모를 일찍 여윈 저는 부모님의 사랑이 너무 그리웠기 때문에 남편과 결혼할 때 시아주버님 일가와 함께 시부모를 모시며 한집에서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시 아버님과 어머님의 연세는 모두 일흔이 넘으셨고 시아주버님네는 고등학교3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한명 있었습니다. 남편은 인쇄기계를 고치는 자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한국에 들어올 무렵 일거리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저는 혼자 짐을 싸들고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에 내렸을 때 내가 과연 한국에서 잘 살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시부모님께서 남편과 함께 공항에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나에게도 인제는 부모님이 계시구나 하는 생각에 처음으로 뵙는 시부모님이지만 달려가 꼭  끌어안았습니다.
중국에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고 형제들도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여 중국에서의 결혼식은 생략하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아주버님네 아들이 수능시험을 한달가량
남겨놓은 때라 식구들은 모두 조카애의 시험 때문에 긴장되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윗동서인 형님께서는 시동생이 늦장가 가는 것이 너무도 좋아서 우리 결혼식을 위하여 동분서주 하면서 결혼준비를 하셨습니다. 저를 친 동생처럼 살갑게 대하여 주시면서 어디를 가든 항상  차가운 저의 손을 꼭 잡아주시고 제가 한국음식이 맞지 않을까봐 반찬하실 때도 신경을 엄청 쓰셨습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인 저는 형님이 해주시는 음식을 모두 잘 먹었습니다. 신부가 준비해야 할 예단과 이바지 음식을 형님께서 손수 저를 위하여 준비하셨고 결혼식 날  친정식구와 친구가 한명도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셔서 형님의 친구들을 불러서 사진찍을 때 신부의 친구자리에 서있게 하셨고 울면 화장이 지워져 예쁘지 않다며 사탕을 미리 준비하셨다가 저보고 입에 물고 있게 하였습니다. 결혼사진을 보면 입이 뿌루퉁 해보이는데 슬픈 것도 있었지만 사탕을 입에 물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결혼하여 5개월만에 임신하여 입덧이 심했는데 형님께서는 정말 친정엄마처럼 저의 먹는 것에 신경을 써주셨고 애기를 낳은 후에는 손수 몸조리를 해주시며 애기의 목욕에서부터 천기저기 씻기, 하루 다섯 끼의 저의 밥상 차려주기 등 모든 일을 혼자서 하시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둘째아이를 낳고 역시 형님의 손길이 안 가는 곳이 없었습니다. 애들을 너무 예뻐하고 잘 돌봐주시기에 엄마인 저도 그렇게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애를 낳고 8년 동안은 형님과 함께 가사 일을 배우면서 애를 열심히 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외향적이여서 내성적인 형님과 가끔은 의견충돌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형님의 속을 많이 썩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형님께서는 당시에는 불쾌한 내색을 전혀 내지 않고 계시다가 사후에 저의 잘못을 지적해주시며 저의 소홀함에 대하여 얘기해주십니다. 막내로 자란 저여서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가끔은 철부지처럼 행동합니다. 그럴때마다 형님은 저의 모든 것을 일단 다 받아주십니다. 한번, 두 번 제가 고치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행동할 때면 엄마처럼 조목조목 따지면서 저의 잘못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럴때마다 형님께 미안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2009년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다문화강사양성교육을 받고 어린이집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문화센터, 복지관 등 기관들을 알게 되어 좋은 정보를 많이 얻어 많은 다문화프로그램에 적극 참석하면서 자신의 각 방면의 소질을 제고 시켰습니다. 그때마다 형님께서 애들을 돌봐주셨고 살림도 혼자 하셨습니다. 형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가끔은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으려하면 형님께서는 걱정 말고 배우고 싶은 것은 맘껏 배우라 밀어주셨습니다. 복지관과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배워주는 컴퓨터수업, 요리 수업, 동화 구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저는 컴퓨터한글, 파워포인트, 엑셀, 인터넷 등 네 과목을 모두 A등급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작년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다문화IT방문지도사로 활동하면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컴퓨터를 배워주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초등학교교사로 5년동안 있었고 한국에 와서 다문화지도사양성교육을 받은 저는  어린이집에서 중국어를 배워주고 있는데 지금은 4년경력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대학교의 꿈을 이루고 싶어 2011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중어중문학과에 등록하여 지금은 대학교 3학년생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중국어지도사로 활동하면서 보육교사에도 관심이 생겨 금년 1월에 삼육대학교원격평생교육원에 입학하여 보육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육교사공부를 2년 마친 후에는 한 학기를 더 공부하여 사회복지사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습니다. 2015년 연초에는 방송대학졸업증, 보육교사2급자격증을 취득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애들도 공부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에 성적이 우수합니다.  훌륭하신 “가정교사”형님의 노고덕분에 저도 걱정없이 저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애들도 큰엄마의 가르침 속에서 나날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형님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전 그냥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였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살림을 배워주시고 애들을 챙겨주시고 살림을 거의 하시다 싶이 하시기에 오늘날의 제가 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아버님께서 2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여덟 식구가 크지 않은 집에서 오붓하게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돈 때문에 얼굴을 붉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식구들은 서로 의지하고 이해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님의 연세가 올해 여든 여섯인데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혹 어머니께서 어느날 이 세상에 안 계시더라도 저는 형님네와 분가하지 않고 한집에서 살면서 함께 늙어가고 싶습니다. 형님은 저보다 열 다섯살  위이시지만 저에게 형님은 친구이자 언니이며 엄마입니다.  친정 부모가 다 돌아가셔서 굳이 갈 필요는 없습니다만 한국에 시집와서 13년이 된 오늘까지 중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애를 낳고  부모가 된 저는 그동안 부모님기일을 한 번도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 열심히 일하여서 형님을 모시고 중국 부모님산소에 가서 자랑하고 싶습니다. 형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를 그리고 한국에서 시댁식구들과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에 저 세상에서 불효한 딸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는 다문화에 대하여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고 있습니다. 때문에     결혼이주여성들은 어려움 없이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결혼이주여성중의 한명인 저에게는 작은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받은 만큼 사회에 봉사로서 갚는 것입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기에 꿈을 실천할 수 없지만 언어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공부를 배워주고 컴퓨터를 할줄 모르는 결혼이주여성이나 어르신들에게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워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그분들이 컴퓨터를 실생활에 활용하여 생활이 보다 편해지도록 컴맹에서 탈출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어나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왔지만 한국에서 한국사람 못지 않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열심히 배우며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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