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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명품 아닌 명품 같은 맛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6:13 조회 : 2432
 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코리안 젤리가 바로 한국의 묵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입맛에 잘 안 맞아 먹기가 힘든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난 주저도 없이 도토리묵을 그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숙사 식당에서 도토리묵이 단골메뉴로 나오곤 하였다. 그때부터인가 색안경을 끼고 묵을 계속 피하기만 하였다. 마치 묵 알레르기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도토리묵에 매력 없는 색깔, 이상한 맛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 이후 가끔 교외 식당에서 몇 번 더 먹을 기회가 있었으나 묵에 대한 나의 인상이 그리 많이 달리지지 않았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할머니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종종 직접 만드신 음식을 내게 건네주셨다. 어떤 때에는 갓 구운 고구마를 주시고 다른 때에는 김치전을 부쳐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나더러 집에 놀러오라고 초대하셨다. 한 골목길에 숨어 있는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 그는 봄꽃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하여 내 손목을 이끌어 바로 식탁에 앉히셨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쭉 훑어봤다. 모든 음식이 나를 유혹하려고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계란말이, 된장국, 김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눈길이 도토리묵 무침에 멈추었다. ‘어라! 또 묵이군!’ 나는 속으로 말하며 예의상 하나씩 집어먹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그 순간부터 다른 반찬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도 모르게 오직 도토리묵 무침에만 자꾸 손이 간 것이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는 좀 오버이지만 전에 내가 먹어봤던 도토리묵과 매우 색다르며 훨씬 더 맛났다. 할머니가 쑤신 묵의 색깔과 맛이 참 독특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의 도토리묵 무침이 내게 더 이상 밑반찬이 아니라 메인 메뉴였다는 것. 할머니께서 몸소 산에서 주워 오신 도토리를 가지고 가루를 내어 묵을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는 그러한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이야기해주셨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 왠지 모든 묵에 사과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잘못 봤다고, 묵이 이렇게 맛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 싶었다.
  개인의 경험으로 묵의 맛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가 만드신 도토리묵은 예상 외였다. 왜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할머니가 주신 음식 속에는 한국의 명품 같은  맛이 들어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명품 맛은 곧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맛인데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한국인이 제일 많이 선호하는 맛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매운 맛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이 질문에 나의 답은 다름이 아닌 ‘손맛’이다. 처음에 손맛은 단순히 손의 맛인 줄 알고 참 이상하게 생각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국어사전에서 손맛은 음식을 만들 때 손으로 이루는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이 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손맛’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엄마의 손맛’, 혹은 ‘할머니의 손맛’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손맛’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엄마의 음식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아니라 덤으로 엄마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한 사랑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손맛’은 몇 십 년 동안 음식을 해왔던 할머니의 솜씨에서 나는 맛이기도 하나 할머니의 따뜻한 애정도 함께 담겨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한국어-베트남어사전을 찾아보면 ‘손맛’을 뜻풀이하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이와 대등할 만한 베트남어 어휘가 없어서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손맛을 번역할 때 그 말의 뜻을 설명할 수 있으나 그 말 속에 듬뿍 담겨 있는 한국인의 정서까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이다. ‘손맛’은 어떻게 보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 사이에 전달되는 사랑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악감정을 품거나 욕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해주는 이가 어디에도 없을 터이다. ‘손맛’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마음을 드러내는 신기한 통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언뜻 볼 때 ‘손맛’은 참으로 추상적인 개념인 것 같지만 늘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음식을 먹어본다면 바로 그 순간 ‘손맛’은 제대로 지각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할 것이다. 미각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마치 내가 도토리묵 무침을 먹었을 때 느낀 할머니의 포근한 마음과 넘치는 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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