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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한국 드라마 가족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6:12 조회 : 2035

"설마, 김치로 얻어 맞거나 하지는 안겠지요..." 한국어 공부를 위해 시청하고 있던 한국의 드라마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굴거나 해서 서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설정으로 자주 나옵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괜찮다고 해도 "경험 한 적이 없는 것' 과 '다름'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주입시켜 버립니다. 제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에는 행복과 기쁨이 많았습니다만, 어느 때부터 불안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일본을 떠나 남편의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는지...“

남편은 형제가 많고 위로 형 2명 있습니다. 형들도 결혼해서 아이도 있기 때문에 5인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남편의 집은 아이 둘을 포함한 11명인 가족이 됩니다. 그런 가족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특히 고부갈등이 어떨지 고민되고 걱정거리였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부 관계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부모와 사이가 좋은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만 너무 가까이 하는 것도 좋지 않아 어중간하지만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가족 관계라고 생각하는 며느리가 많습니다. 같은 일본인끼리의 며느리 시어머니 관계도 어려운데 저의 시어머니는 한국인인데다가 저는 외국인입니다. 문화의 차이도 더해져 보다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후 지금의 남편과 결혼 얘기가 오갈 때 쯤 남편과 상의를 하고 한국에 가서 어머님을 만나 뵙고 어떤 분인지 알아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처음 만남이라 많이 긴장되고 떨렸지만 막상 어머님과 만나 인사를 나눠보니 정말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웃는 얼굴이 애기같이 귀여운 분이셨고 드라마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런 시어머님은 아닌 것 같아 한시름 놓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남편보다 어머님이 좋은 분이라는 것이 맘이 놓여 시집을 결심하게 된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오빠와 많이 상의를 하고 가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살짝 걱정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한국에 건너가기 전 나름대로 한국 생활에 대한 예비지식을 늘리려고 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 가서 시집 생활하고 있는 일본인의 블로그를 읽고 많이 정보를 찾아 다녔었습니다. "제사 때의 각오" "안부 전화를 일주일에 3,4번 한다", "함께 화투를 친다" 라는 것까지 있었으며, 그렇구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조심 해야겠다고 마음 한켠에 새겨두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4년 11월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가족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10년 전이긴 하지만 1년간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긴장하면서도 어떻게든 한국어로 대화 할 수는 있어서 초면에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한 두개 문화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러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인근에 살고 있는데 왜 전화까지 자주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안부 전화를 일주일에 3,4번 한다" 는 것이 더 좋은 고부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블로그에 써있던 글을 읽은 것을 생각하며 시어머니에게 전화했습니다.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밥은 먹었느냐" "추우니까 조심 하거라",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해라" 고 말하는 것은 항상 변함이 없고, 대화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사투리를 잘 알아 듣지 못하고, 처음 듣는 단어여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전화할 때 마다 “우리강아지 밥 먹었어?” “오냐 우리강아지~ ” 자꾸 강아지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욕을 하시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어서 오빠에게 “어머님이 자꾸 강아지라고 하셔.” 라고 물으니 “귀여워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야.” 라는 말을 듣고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한국에서 욕할 때 많이 나오는 “개” 라서 욕인줄 알았습니다. 어머님은 아직도 통화하면 “우리강아지~” 이러십니다.

평소에 얼굴을 대하고 하는 말보다 전화를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 처음 듣는 말처럼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서로 소통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님은 저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고 잘 이야기 해 주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역시 일이 있어서 전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잊게 되고, 점점 제 연락 횟수가 줄어져 갔습니다.

또한 어머님께서는 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온다는 연락도 밥을 먹으러 오라고 연락도 자주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남편의 식사 준비는 아내의 역할이라고 일본의 어머니에게 배워서 그렇게 알고 있었으므로, 요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만들어서 가져다 주시는 것이 죄송했습니다. 또한 그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부부 둘뿐인 우리는 4~5 인분의 양을 받습니다. 저도 남편도 조금만 주셔도 된다고 항상 말하는데 어머님께서는 손이 크셔서 항상 많이 해주시는 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그것이 적은 양인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시아버지도 제가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아버님이 아니셨습니다. 가족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아버님은 언제나 가만히 있으시지 않으십니다.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시고 볼 때 마다 뭔가를 항상 하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아버님이 과일을 깎고 청소를 하시고 설거지를 하시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우리 일본 집에서는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와 남동생은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대로 일어나 버립니다. 그러나 오빠네 집안은 가장이신 아버님이 어머님의 심부름도 하시고 제사 준비도 이것저것 다 해주시고 어머님을 위해 참 다정다감하게 해주시는 것을 보고 너무 좋게 보였습니다. 그런 행동을 보고자란 오빠여서 그런 건지 우리 남편도 아버님처럼 정말 잘 도와줍니다.

이렇게 남편과 시댁과 저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지만 하나로 묶여진 가족이 되었지만 서로의 다른 점을 틀리게 보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분명 다툴 때에도 있지만 그럴 때 마다 왜 싸워야하는 걸까 라는 후회와 원망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느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자극적인 가족관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믿고 그 믿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우린 언제나 밝고 행복하며 즐겁게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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