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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따뜻하게 녹은 한국의 색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6:08 조회 : 1996
 하늘-블루, 풀-그린, 눈-화이트, 밤-블랙. 이것은 어린 아이조차 쉽게 알고 있는 색깔의 조합이다. 만약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색깔을 가르친다면 이 부분은 보통 아주 쉬운 기초에 포함될 것이다. 보통 아주 쉽게 공부하고 외울 수 있는 화제라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색깔은 여러 테마 가운데 가장 먼저 공부를 하는 테마 중 하나이며 특히 직접번역이 쉬운 관계로 번역가가 번역하기에도 편해서 많은 관심을 받지 않는 언어일 것이다. 노른자는 노랗고 흰자는 희다는 건 아주 간단한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에서 살 때 한동안 어린이집에서 영어선생님으로 3~5세 아이를 가르쳤던 경험이 있다. 학생들이 아직 모국어로 조차도 색깔을 몰랐는데 한 달 동안 공부한 후에 나무로 만드는 문을 가리키며 브라운이라고 하고 귤을 보면 오렌지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국에서 유학할 때 중국어를 배웠는데 제일 먼저 공부했던 것은 색깔이었다. 그리고는 한 달 후 중국시장에서 옷을 사게 되었을 때 자신감 있게 판매원에게 ‘뤼써(녹색),헤이써(검정색)’등등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여러 나라의 책을 통해 배웠다. 러시아책, 한국책, 중국책으로까지 배웠다. 그런데 이들 책에서는 색깔을 마치 다른 테마들을 장식하듯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색깔을 이해시키기 위해 마치 색동저고리의 소매 색깔을 하나씩하나씩 꿰매어 덧대가듯이 다른 한국어 과목에서 미리 하나씩 하나씩 색깔을 넣고 조금씩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오랜 시간 동안 한국어를 배웠고 배우고 있는 언어의 나라에서 살며 매일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과 소통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아직 한국의 눈이 무슨 색깔인지 한국의 바다는 무슨 색깔인지 한국의 나무는 무슨 색깔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한국에 오래 살아서 아이가 있고 한국에 직장까지 있는 친구들에게도 이것은 어떤 색깔이냐고 물어봐도 이상하게 나에게 빨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치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의 공식풀이를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것은 아주 어려운 것이고 모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냥 모르겠다고 대답 하곤 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색깔이 단지 명칭이 아닌 자신의 특별한 감정과 매개되고 취급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똑 같은 성격이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단순하게 똑같은 색깔은 없는 것이며 같은 물건의 똑같은 색깔을 한국 고유의 감정이 담긴 색깔로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색깔은 책만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다. 한국의 색깔들은 생활을 통해 배워야 된다. 한국에서 살아가야 색깔의 명칭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 나는 그린은 초록색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이 확실히 밝은 초록색이었기 때문에 난 이 색깔을 초록색이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남편이랑 산책하러 갔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며 주위의 간판과 건물 등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신호가 바뀐 걸 미처 보지 못했었는데 남편이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파란불이라고 외쳤다. 나는 물론 이 소리를 듣고 남편과 같이 건너갔는데 깜빡거리는 초록신호를 보면서 왜 바다의 색깔 파란색이라고 했을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니 남편은 잘 모르겠다면서 신호등 색깔은 그냥 파란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어서 우리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싶어 남편이 음료를 파는 노점 앞에서 서서 나에게 뭐 마시겠냐고 물어봤다. 시원한 그린티를 마시고 싶은 나는 한국어를 공부했던 기억을 더듬어 “초록차”라고 했다. 남편은 내 말을 알아듣고 내가 자신한 한국어를 본래 한국어로 통역해서 녹차를 달라고 했다. 거듭해서 외워두었던 초록색의 사용이 또 어긋난 것이다. 그리곤 이 사건이 한국의 색깔을 이해하기 시작한 ‘청신호’인지는 모른 채 혼자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갔었다. 초록색 손수건을 잡고 녹차를 마시면서 그리고 파란불 신호등이 있는 길을 건너면서.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과 사귀기 시작할 때 내가 러시아에서 온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것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한 때는 모스크바에 있는 유명한 광장을 다른 언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서 내가 아는 러시아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로 생각한 후 영어로는 ‘레드스퀘어’이고 중국어로는 ‘홍창’이어서 자신 있게 같은 방식으로 직접 번역해서 ‘빨간 광장’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빨간 광장을 붉은 광장이라고 고쳐 주었다. 발음도 비슷한 이 색깔들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구는 붉은색은 빨간색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어서 더 깊고 더 고결한 혹은 더 지혜롭고 진한 색깔이며 인류의 역사라는 큰 범위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의 외국어 같이 한국인들도 러시아의 광장을 빨간 광장이라고 부를 수 도 있는데 그들은 이 단순한 단어에 색깔뿐만 아니라 감정도 넣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는 곳을 높이 평가하고 기념해 주는 듯한 느낌으로 색에 감정이 깃든 기호를 달았다.
 그때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주 즐겁고 기뻤다. 거의 다르지 않은 두 음의 단어에서 제 고향에 있는 곳을 한국인이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생각되어 깊은 감사함과 감동을 느꼈다. 아마도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훈민정음과 경복궁, 석굴암이 깊이 존중 받는 다고 한다면 내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기쁜 마음에 친구에게 맛있는 차를 사고 싶어서 블랙티 즉 ‘까만차’를 주문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까만차 주세요.”
 우리 사는 집 가까이에는 예쁜 공원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는 2년 동안 우리 집에 친구나 가족들이 올 때 꼭 이 공원에 산책하러 손님이랑 같이 가곤 한다. 이 공원이 특히 예쁜 계절은 나무들이 색을 바꾸는 계절, 바로 가을이다. 이런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 여러 가지 색깔로 어른거리는, 제일 예쁜 형용어구로 묘사하고 꾸미고 발명할 수 있는 한국 생활의 가을은, 우리집 가까이 있는 가을은, 한국의 많은 친구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변주가 가능한지! 한가지 노란색 단풍이 노랗고 누렇고 노르스름하고 샛노랗고 누르칙칙하고 노리끼리하게 변주된다. 이 아름다운 변주곡을 듣기 위해서는 이 참으로 다채로운 나라 한국에서 두 번의 가을로는 부족할 것이다.
 열심히 깊은 흥미를 가지고 거의 2년째 한국에서 색깔을 공부하면서 예전보다 더 어느 물건이나 현상의 색깔을 어떻게 부르는지 선택할 때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요즘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처럼 색에 어리석은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색에 빠져 색을 이해하고 즐거워하는 동안 또 다른 이야기에 빠져든 적이 있다.
 한국에 겨울이 왔다. 찬 바람이 매우 부는 시퍼렇게 얼어붙을 듯이 추운, 하지만 소복이 하이얀 1월의 날에 우리 가족이 함께 회 집으로 시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지내러 갔었다. 차에서 내려 맞은 편 식당까지 빨리 도착할 수 있을 줄 알고 장갑을 차에 두고 내렸다. 근데 그날 바람이 정말 세게 분 탓에 처음으로 내 손이 파르라니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여자들이 자기 엄마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이 항상 부러워하곤 했다. 그리고 아이처럼 엄마와 같이 산책하거나 쇼핑하거나 이야기 나누면서 옷을 고르는 걸 서로 봐주는 모습이 아주 부러웠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내가 성장할 때 엄마와 같이 손을 잡고 산책하는 걸 경험할 수 없었다.
 그 추운 날, 시어머니께서는 내 얼음장 같은 손을 보고 일 초도 생각 안하시고,
 “우리 딸 손이 얼었네.”
라고 말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자기 옷 주머니에 넣으셨다.
그때 세계에 있는 모든 물감들이 하나로 모여서 일순간에 나를 휩싸는 느낌이었다.
 “딸? 왜 저를 딸이라고 부르셨어요?”
내 손을 힘껏 잡으시면서 어머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리사는 엄마가 없고, 엄마는 딸이 없고, 우리가 엄마와 딸이야.”
발갛게 녹은 손을 잡고 이렇게 횟집 문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다들 음식을 주문할 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에 어머니라는 색이 있다면, 혹시 나를 감싼 방금 전 그 색깔들이 아니었을까...’
 한국어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이다. 하지만 한국어의 극히 일부, 바로 색깔을 통해서 나는 이 언어는 살아 있는 언어, 혼이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이기에 습득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친숙해 지는 것처럼, 한국어와 친해진다면 그 혼의 모든 색깔을 펼쳐서 보여줄 것이고 믿는다.
 그리고 한국이 앞으로 또 어떤 색깔을 보여줄지 즐겁고 기쁘게 기다릴 것이다.
어머니의 손을 맞잡은 발갛게 녹은 내 손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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