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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작 ]

나의 좌충우돌 한국생활 24년

글쓴이 : togetherday 날짜 : 2016-05-19 (목) 16:05 조회 : 1915

대학 시절에 세계의 스포츠 역사를 공부하면서 88서울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은 저는 아시아 국가의 역사와 경제 발전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시달리던 네팔도 1992년에 서서히 민주화 꽃을 피우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해외로 나갈 꿈을 키우고 아시아에서는 선진국에 속하는 일본으로 가볼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남북으로 분단된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본보다는 한국에 가면 뭔가 더 배울 점이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국행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4년 전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하여 사람들 모두가 매우 역동적이고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인들을 바라보며 느리게 살아가는 네팔과 문화적으로 너무 다른 차이를 느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생활 적응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문화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생활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그 나라에 적응을 잘 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가 우선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한국어 최우선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서점에 가서 한국어 교재를 한권 사서 독학을 해보기로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2시간을 한국어 공부에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네팔어보다 글자가 훨씬 적어 단시간에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갈수록 어렵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언어가 한국어였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자를 빨리 익히기 위해 시간이 나면 시내버스를 타고 한 두 시간씩 간판 등 표지판을 읽고 다니면서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간판을 읽는 방법은 저만의 독특한 공부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이 되면 한국 드라마를 보던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거나 같이 활동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몇 년을 공부하고 나니 눈과 귀에 점점 한국어가 하나 둘 익숙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생활도 점점 편해지고 한국 문화와 역사를 좀 더 알게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아픈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경제 발전을 보면서 저의 좌우명도 ‘하면 된다’ 로 바꾸고 한국생활 적응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주변사람들의 추천으로 1999년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말글 큰잔치’에 연속 3년 참가하면서 3회째 ‘으뜸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우리말 큰잔치’의 도전은 저에게는 상을 타는 기쁨보다는 독학으로 배웠던 한글을 좀 더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짧고 부족한 점은 많지만 아름답고 완벽한 뜻을 가진 것이 한글의 매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입니다. 네팔어나 영어에서는 이 두 단어를 한 가지로만 표현합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고맙습니다’가 가지고 있는 뜻은 ‘감사합니다’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만의 느낌일지는 모르겠습니다. 2002년 ‘한국어능력시험’ 4급에 합격하였으며, 2013년에 실시된 ‘사회통합프로그램’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를 하면서 한국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좀 더 깊게 한국을 알게 되었고, 한국의 정서와 한국이 가지고 있는 힘, 한국인들의 애국심을 배우면서 양국의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데까지 활동범위를 조금씩 넓힐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 무었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한국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섬유사업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섬유사업을 배우고 본국에 돌아가 섬유사업을 한다면, 한국처럼 일자리도 창출하면서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1996년부터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2000년 졸업 후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제가 꿈꾸었던 본국의 섬유사업 분야는 현실적으로 제가 한국에서 배웠던 섬유기술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거기에다 저에게 기술과 투자를 지원해 주기로 했던  한 한국 기업이 그 당시에 네팔이 겪고 있는 10여 년 간의 내전과 안전 문제로 투자를  다른 나라로 돌리는 바람에 제가 그동안 키우고 있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절망 하지 않고 “시작이 반이다” 라는 한국 속담처럼 그동안 제가 배웠던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활용하여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습니다. 네팔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려온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하여 8000미터 히말라야 설산이 8개나 있는 천혜의 자연의 보고. 그리고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120여개의 소수민족과 100여개의 언어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다양한 세계문화유산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한국에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네팔은 한국인들에게 무척 생소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시작을 한 직업을 한국에 네팔을 알리는 관광업을 선택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익혀왔던 한국어 덕분에 네팔항공 한국지사에 취직을 할 수 있었고, 몇 년 후에는 <네팔투어>란 여행사를 설립하여 독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관광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2002년부터는 민간인 자격으로 네팔관광청한국사무소를 설립하고 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네팔 정부 기관으로는 명예 총영사관만 있었기에 네팔정부의 대변인 역할로 공식적으로 많은 양국 간 장·차관급 면담이나,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등 주요 행사를 맡아 왔습니다.
네팔투어와 관광청 업무를 하면서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네팔 전문가로 알려지자 활동범위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재한네팔인 공동체 활동가로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한 단편 인권 영화 ‘여섯 개의 시선’ 네팔 편(박찬욱 감독)의 시나리오 작성 지원 등 직접 출현을 했으며, 관광청사무소를 통해 서울시가 주체한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 여러 해 참여하여 나라별 평가 중에 ‘네팔행사’가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할 행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네팔 이주민들의 한국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양국 문화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고 인정받아 2009년에는 네팔인 최초로 ‘서울시명예시민’으로 선정 되어 서울시 명예시민이 되었습니다. 또한 관광청사무소를 자비로 운영 해 오면서 2006년에 대한항공 직항노선 설립을 성공 시키는 데 기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네팔인 들은 현재 약 500만 명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03년부터 ‘해외거주 네팔인 협회(Non-Resident Nepali Association)’를 조직하여 세계 70여국에서 공식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2006년도에는 주한네팔인협회한국지부(NRN Korea)를 설립하여 초대회장 직을 역임하고, 현재 국제협력위원 한국대표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한 네팔인 들의 한국생활을 돕고, 한국인들에게 네팔의 언어와 문화 등을 교류하기 위해 네팔문화원격인 ‘네팔하우스’를 확장하여 어려운 교민들에게 쉼터 제공은 물론 세미나, 소모임 활동, 생활 기본법, 언어 등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한 네팔에 관심이 많은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네팔어 및 네팔문화를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여러 가지로 열악하지만 향후 공식 문화원 설립을 위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이 바탕이 되어 2007년도에는 한국거주 네팔인의 희망이었던 주한네팔대사관이 설립되었습니다.
네팔 인으로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인정을 받아 한국 정부 간 공식회의 통역과 중앙법원, 대법원, 검찰청, 각 방송사에 주요 다큐멘터리 등 공식 네팔어 통역인으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성공한 외국인으로 선발이 되어 아리랑 TV가 제작한 휴먼다큐 ‘win win’ 방영에 이여 모든 지상파 및 디지털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이주민의 이야기와 한·네팔 문화 교류 등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어로 된 최초 네팔가이드북 중앙 M&B 제작 ‘세계로간다’ 네팔 편을 번역·감수했으며, 한국 문화관광부가 지원 제작한 ‘한국 이주 노동자 문화 가이드 북’ 네팔어를 번역·감수를 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번역 및 동시통역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건강협회 이사와 한국자비공덕회 국제협력 코디네이터로 2010년부터 네팔 오지 농촌지역에 장학금 지원과 컴퓨터교실 운영, 낙후된 칠판을 교체 하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인 24년 동안 한국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 온 저한테는 모국이 저를 키워주었다면, 한국은 저를 사회인으로 성장시켜 준 제2의 고향입니다. 한국은 저에게 있어 더 이상의 남의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결혼을 저에게는 이젠 두 아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 은혜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양국의 활발한 교류와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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